이 제목 맞나 모르겠네요.
부활의 노래였을 겁니다,
처음에 나오는 리드기타의 장중한 좌앙장~! 하는
(좌우지 장지지~ 가 아니고!)
소리에 반했는데 그뒤에 나오던 재수 옴팡지게 없던 이승철의 허스키와
허밍의 변주곡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리는 노래 였습니다.
최근의 모군에 대한 거의 폭력적인 안티투쟁기를 보면서
칼댄 흔적이 역력한 눈과 콧잔등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형수술이란 단어 보다는 칼을 댄.. 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군시절을 잠시 회상 해 보겠습니다.
(엉뚱한 얘기 왜 하냐고 하신다면 그냥 참으세요.)
강릉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뭐되었다 는 느낌이... 필이... 팍 꽂혔다.
35개월의 끔찍한 복무기간....
나는 그걸 떠올릴때 마다... 6개월 그것도 교련2년 수료자의 특혜를 받아
5개월 남짓의 기간만 보냈던 내 친구녀석에게 불같은 질투를 느꼈다.
하여간 자대의 고참중에 한국의 롹을 책임지겠다는 엉뚱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고 기억이 아주우 생생하다,.
야근을 하고 내려와서 오전취침을 하면서도 플레이어를 이른바 '입빠이'
틀어 놓고 이어폰을 낀채 코를 골아가며 자는 그 냥반의 모습에 참으로
인간은 오묘한 존재라는것을 실감하기도 했다.
'인간이 어찌 저런 자세와 소리에도 잠을 잘수 있는가?'
그에게 환경은 중요한것이 아니란것을 나중에 알았다.
제대후 속초의 한 업소에 취직한 기타리스트 지망생 고참 한사람과
내무반에서 한국롹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던 그분은 내무반회식때도
맛조니에 섞은 얼마간의 소주에도 기분이 동해..그것도 비가 올때는
더욱더 기분이 엎(UP)! 되어서인지 주구장창 이 노래만을 불러제꼈다.
그러나 이승철의 허밍보이스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아주 저음으로 첫음을 잡고 나오는 한국롹의 고민은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변방인 강릉이라고는 해도 말이다.
잠시 말문을 다른곳으로 돌려
'소양강 처녀'를 회식자리에서 불렀더니 광적인 후폭풍이 불어와
오히려 내가 어리둥절했다는 기억이 난다.
글쎄 소양강 처녀를 들어본적이 없다잖은가?
이럴수가!
아무튼 그 고참의 한국롹 고민은 밑도 끝도 없이 이후 제대 할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휴게실에서 개잡듯이 쫄따구를 패는 모습을 보면서도
구석에서 이어폰에 두손을 대고 한국롹의 앞날을 고민하면서 따라부르던
모습이 선하다고....
그래서 나는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에 폭력적인 연상을 하게되면
비지스의 할리데이 보다는 비와 당신이 떠오른다.
안성기가 비록 비오는 후암동계단을 내려오는 노란우산과
흐드러진 은행잎사이로 '붉은 피'를 게워내게 만들었다 해도
내게는 짬밥의 주먹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얘기지..
오! 잇쪄 할러데이!~~
:
:
:
:
:
아이가.. 누니 오기일... 바라드시이.이~
=====================================
태그를 할줄 알면 아니면 어디선가라도 노래를 끌어올줄 알면
링크라도 시킬텐데... 으음....
이렇듯 군생활의 기억은
비와 섞여 새록거리며 기억이 납니다.
아앗! 내가 왜 이 연병장에 서있지?
내가 관제하던 전투기가 떨어지고 있다!!
깨어나면 식은땀이 겨드랑이를 물들이고 있었지요.
그 시절은 제겐 나쁜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넌 체질이야! 하면서 저를 시껍하게 했던 모상사분...
개패듯 저를 두들겨 대던 모준위분..
강릉의 낭만어린 은하수를 보며 같이 막걸리를 마시던 또다른 모상사분..
누구는 깡통들과는 상종도 말라고 했지만 저는 좋은 분들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나지막한 저음으로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불러대던 그분의 기억이 자꾸 납니다.
모군도 몇옥타브 하지 말고 차라리 저음으로 겸손했으면
안티들의 폭풍같은 질타를 비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마 쏘주를 못마셔서 더욱 그리워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짜로 마셔야 할텐데....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