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도 일본과 비슷한 것 같아서...
이 기사를 강호정담란에 올렸습니다.
"취직은 짧고 자격증은 길다" …커리어 쌓기 '붐'
정부는 '근로자 교육받을 권리' 법제화 검토
제조업 붕괴위기, 출산율 저하, 학력저하, 사회와 관계를 끊고 사는 ‘은둔형 외톨이’ 문제, 자살 신드롬, 늘어나는 청년실업….
한국과 놀랄 만큼 닮은 여러 가지 문제를 품고 있는 이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한국사회가 고민하는 많은 문제들, 사회병리 현상들을 일본 역시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보다 한발 앞서갔기에, 또 10년 이상 장기불황을 겪기에 사회병리 현상 역시 더 깊다. 일본인들은 이 난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을까를 5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
“파이낸셜 플래닝(재테크)으로는 안됩니다. ‘커리어 플래닝’을 해야죠.”
10년 동안 이어지는 불황, 1년에 0.001%의 초저금리, 늘어나는 실업, 믿을 수 없는 연금, 줄어드는 임금…. 도대체 일본인들은 어떻게 노후를 대비할까. 이토 고이치(伊藤宏一) 일본 파이낸셜 플래너 협회 이사는 서슴지 않고 ‘정년 후에도 일할 수 있도록 커리어를 쌓으라’고 얘기한다. 궁극의 재테크는 ‘자기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얘기다.
오랜 불황의 터널을 달리는 일본에서 ‘커리어(경력)’라는 새로운 화두가 등장하고 있다.
현재의 일본인들은 국가의 연금, 기업 퇴직금에 의존하는 노후보장은 거의 포기한 상태다. 일본의 국민연금은 미납률이 약 40%에 이른다. “지금 내도 나중에 돌려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라는 것이 이유다.
대신 일본인들은 ‘커리어’를 쌓아 노후의 제 2 직업을 노린다. 또 현 직장에서는 좀 더 많은 급료를 주는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정규직원이 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은 정규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가 전 사회의 관심사다. 정부는 커리어를 쌓기 위해 연수나 교육휴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커리어권’으로 법제화할 것을 검토 중이다.
◆ 한번 ‘취직’ 대신 평생 ‘경력’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은 최근 ‘취직부’를 폐지하고 대신 ‘커리어 센터’를 만들었다. 단순히 한번의 취직만으로 정년이 보장되던 ‘종신고용’의 시대가 끝나고 전직을 감안한 평생의 설계도를 짜는 ‘커리어 플래닝’이 필요해지며 생긴 현상이다. 아예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이 어떤 경력으로 평생을 살아갈지를 설계한 후 그에 따라 역량을 집중하도록 지도한다.
일본 도쿄 가메이도(龜井)의 한 ‘홈 헬퍼’(간병인) 양성소.
3부제 40명씩 총 120명 정원이 기수마다 꽉 찬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부터 정년퇴직을 앞둔 직장인까지 다양한 수강생들이 몸을 움직이기 힘든 고령자나 환자를 휠체어로 옮기는 법, 부축하는 법, 목욕시키는 법, 식사시키는 법 등을 약 3개월간 공부한다. 홈 헬퍼에는 연령제한이 없다. 일본이 고령사회인 데다, 최근 국가가 사회보험으로 간병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갈수록 수요가 늘 전망이다. 병원에서 용역업무 등을 하던 다니(谷)씨는 60세로 정년퇴직이 가까워오자, 다음
직업을 찾기 위한 ‘커리어’의 일환으로 홈 헬퍼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 대전직(大轉職)시대
일본의 경제전문가들은 일본경제가 결국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개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현재 실업률은 5.3~5.4%. 일정한 직업없이 아르바이트로 먹고 사는 이른바 ‘프리터’의 수는 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황으로 기업사정이 어려워지고 임금수준이 낮은 중국 상품이 부상하면서 작년 이후로 일본 기업들 중에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깎는 추세가 뚜렷하다. 그러나 이런 임금 경쟁력은 일시적인 것이며, 장기적으로 제조업은 중국 현지생산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일본 경제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原英資) 게이오대 교수는 “결국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기업은 살아남되 공장은 중국으로 옮겨갈 것이고, 국내 산업은 관광 등 서비스 위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후생성은 이런 산업구조재편 과정에서 기업 구조조정·도산·신산업 출현 등으로 앞으로 5년간 2000만명이 직장을 옮기는 ‘대전직(大轉職)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오랫동안 회사가 보장해 주는 종신고용의 틀 안에서 안주하던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가치를 자기가 증명해야 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셈. 회사의 보호막 밖으로 나온 개인을 지탱해주는 것은 개인의 ‘커리어’뿐이라는 얘기다.
◆ 커리어권 부상
커리어 관리를 상담해주는 ‘커리어 컨설턴트’가 생겨나고 있다. 나이 제한이 없는 ‘자격증 획득’에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커리어 패스포트’ 도입을 검토 중이다. IT(정보기술)능력이나 기타 기술능력 등 폭넓은 분야를 상정, 평가한 뒤 패스포트에 기록, 취업자료로 쓰게 해주겠다는 발상이다. 정부가 개인의 ‘커리어’를 보증해주는 셈이다.
후생노동성의 ‘커리어형성을 지원하는 노동시장정책연구회’는 작년 ‘커리어권’을 제창했다. 직업선택과 사내에서의 유리한 대우를 위해 노동자 자신의 능력을 높이고 경력을 쌓을 것을 법률상 권리로 인정하자는 것. 전직을 할 경우 자신이 그동안 해온 전문분야에 관련되는 직책을 맡을 수 있도록 요구할 권리, 사내 부서이동 때도 자신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자리에 배치될 것을 요구할 권리 등을 입법화하자는 주장이다. 물론, 기업의 인사권은 경영진에 있지만, 노사가 최선을 다한다는 선언적인 의미의 법률로서도 중요하다는 평가였다.
미쓰비시 종합연구소 기무라 후미카쓰(木村文勝) 산업·시장전략연구부장은 “고용보장이 불가능해지면서 개인의 커리어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대기업의 경우 여러부서를 돌면서 오히려 전문성 쌓기에서는 멀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경우 ‘커리어권’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