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의 욱욱대는 운무를 뚫고 초영은 서서히 신독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녹의에......어울리지 않게도 가슴에 새긴 핏빛 붉은 꽃 한송이. 호접몽 군사가 말해준 인상과
꼭 들어 맞는다. 이변마왕 초영을 보며 신독의 눈은 절망으로 암울해져 갔다.
'결국 여기서 최후를 맞는가....이 상태에서 초영이라.....만겁사(萬劫絲)를 쓸 수 있을까...'
신독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른쪽 어깨가 반넘어 갈라지고 왼쪽 허벅지도 푸들푸들 살
이 떨리고 있었지만 이대로 앉은 채 당할 순 없다. 마지막 한 수....공력이 따라줄지 알 수
없으나 아직 신독에겐 한 수가 남아 있었다.
피투성이 몸을 일으키는 신독을 보며 초영의 눈은 잠시 감탄으로 물들었으나 이내 싸늘해졌
다. 수족과도 같이 초절정의 살객으로 키워 온 암영칠살 중 오살이 저 한 놈에게 당했다. 감
탄할 만한 지략과 지형을 이용한 공격이 대단했지만 적은 적. 사로잡아 사공운의 행방을 물
을 것인지, 죽일 것인지 잠시 갈등했으나 쉽게 결단을 내렸다. 마왕이긴 하지만, 초영은 자
기 수하는 아낄 줄 아는 인물이었다. 수하들의 혈채는 받아야 한다.
"사공운이야 봉성으로 가는 길이니, 북쪽으로 추적을 하면 곧 꼬리가 밟히겠지. 네 녀석은
용서할 수가 없구나......이름이나 말해 보거라. 기억해 두겠다."
"산서의......신독(愼獨)......이다."
아무래도 부러진 갈비가 폐를 건드린 모양이다. 호흡이 불편하다. 후읍. 한모금의 진기도 끌
어올려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공력이 모여야 만겁수를 시도할 수 있건만......
시간을 끌어야......한다.
"물어볼......게 있다."
"네 신위(神威)에 대한 예의로 답해주마. 말하라."
초영은 신독이 한 수만 더해도 죽을 만큼 상세가 위중함을 알아보고 여유가 생겼다. 아무래
도 이제 약관 정도 되보이는 애숭이 아닌가.
"사......대협을 쫓는 이......유가 뭐냐?"
"그녀석은 분수에 넘치는 물건을 갖고 있다. 그건 본좌에게나 어울리는 물건이지."
"그......게 뭔......가?"
"곧 죽을 녀석이니, 알려주마. 크크크."
- 그건, 초우지보(草羽之寶)다.
전음성과 동시에 초영은 살아남은 두 살객에게 명령했다.
" 무존, 자존, 저 놈의 수급을 가져오라. "
공격명령을 받은 암영일살 무존과 삼살 자존은 서서히 신독에게 다가갔다.
호흡과 살기도 감춘 자신들을 안개를 이용해 찾아낸 놀라운 자였다. 이제 저항할 능력이 없
어보이지만 대뜸 몸을 날려 수급을 취하지는 못했다.
신독은 한모금의 진기를 가까스로 끌어올렸다. 거리를 재 보았다. 이 정도면 잘하면 초영까
지도 저승길에 동반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공운은 잘 갔을까? 조금 기다리겠지? 대세를 모를 사람이 아니니 지금쯤 고사목 군락에
가 있을 것이다. 결국 풍백 형님에게 한 약속은 지켰다. 사공운과 용설아를 지켰다. 내 목숨
이 남아 있는 한은. 우흐흐흐.
그 때였다.
암영일살 무존과 삼살 자존의 목이 비스듬히 땅에 떨어졌다. 걸어오던 중 그들의 목은 잘려
졌고 몸은 그대로 걷고 있었다. 비명도 없었다. 자신들의 목이 잘린지 죽는 순간에도 몰랐던
것이다.
도르르르.....
무존과 자존의 목이 구르고 잘린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몸뚱이도 차례로 쓰러졌다.
초영은 자신의 가슴께에 삐죽 고개를 내민 검을 내려다 보았다.
기막힌 살수......저 애숭이에게 정신을 뺏기긴 했지만, 한 올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
했거늘......
"네가......사......공......운......?"
말을 뱉을 때 마다 입가에서 핏물이 솟구쳐 나온다. 폐를 통해 심장을 꿰뚫린 것일까. 이제
검을 뽑으면 죽겠군.
"운이 없었소......당신은 너무 방심했소이다."
"그렇군......내가......사혼유령......검을 너무......얕보았어."
초영의 녹안이 점점 잦아지고, 사공운은 검을 뽑았다. 초영은 앞으로 털썩 쓰러져 고개를 자
개봉 정상에 처박았다.
푸들푸들 볼이 떨리며 눈을 부릅떠 자개봉 너머 운무를 노려보던 초영의 움직임이 멈추었
다.
사공운은 잠시 숨을 멈춘 초영을 내려 보다 긴장이 빠져 주저 앉은 신독을 옆에 끼고 몸을
날렸다.
- 용......용소저는요......?
- 걱정말게. 지금 진식으로 보호하고 있으니......초영도 해치웠으니, 자네 상세부터 걱정하
게......이번에 자네 희생이 너무 컸네.
사공운과 신독의 몸이 사라진 자개봉 정상.
서서히 운무가 걷히고 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암영칠살의 피보라 아래......초영의 손가락이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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