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음이 일어나는 현장.
엄청난 불길과 함께 삽시간에 레스토랑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지고 있다.
[이..이런.. 어서 119에 신고를!!]
[맙소사!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서 로봇들 보내서 사람들을 구해야..!]
인근 주민들은 경악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119에 신고를 하는 사람. 자신의 로봇에게 소화기를 쥐어주며 현장투입을 명령하는 사람,
친했던 이가 식당에 있었던지 울부짖는 사람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불길이 너무 거세 그 누구도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어서 구조대가 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모두들 비통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도로 건너편 버스승강장 구석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있는 남자.
[스읍...후~... 그라티에스... 소녀여 그곳에선 평안하길...]
남자는 잠시 명상에 빠진 듯 멍하니 화재현장을 바라보더니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트렁크 문을 열었다.
-철컥 드르륵-
남자는 두 번째 가방인 여행가방 을 꺼내들고 조심히 가방 문을 열었다.
가방 문을 열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은색의 보온병 같은 물건이 3개 들어있었다.
보온병 하단에는 아날로그 식 숫자패드가 있었고 사내는 30:00 으로 타이머를 맞췄다.
-츠르륵.
기계음과 함께 보온병앞면이 개방되었고 그 안에는 초록색 액체가 유리관 안에 담겨있었다.
-29:58 29:57...
카운트가 정상작동 하는 걸 확인한 남자는 가방뚜껑을 열고 가방은 쓰레기통위에 올려 둔 채 차량에 올라탔다.
정신없는 현장에 아무도 그 남자를 보지 못했고 남자는 유유히 차를 몰아 현장을 빠져나간다.
-삐리리리릭- 삐이-
-애애앵--
요란한 사이렌소리.
신고를 받은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오...신이시여...이럴 수가..!!]
시골에선 좀처럼 볼 수없는 참혹한 모습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괴로워했다.
[뭐하는 거야!! 다들 정신 차리고 어서 진압해!!]
-예..! 예!!
얼빠진 표정으로 지켜보던 동료들을 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지휘한다.
-뻥-콰쾅--
마치 성을 내듯 폭발음을 내는 불길은 누구도 접근하지 마라는 듯 이 더 크게 울부짖는다.
정신을 차린 구조대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구조안드로이드를 앞세워 진압을 시작한다.
-드드드득--
눈길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경찰한명이 내린다.
좀 전에 폭발음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온 유성이었다.
[이런...!어쩌다가..]
당황한 유성은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소방팀장에게 달려간다.
[형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 유성아 잘 왔다! 나도 정확한 상황은 아직 모르니까 일단 너도 본부에 연락해서 주변 통제 좀 해주고 너희 안드로이드 지원 좀 해줘 어서 빨리!]
[아..예! 알겠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유성은 즉시 무전을 치러 차량으로 달려간다.
-후..괜찮아 오늘 유진이 는 쉬는 날 이니까...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무전을 한다.
-치직—칙-송신..-- 지원바람! 지원바람! 테디 레스토랑 화재현장 인명 피해가 큽니다! 모든 인원 지원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무전을 마친 유성은 차를 몰고 급히 현장을 빠져 나간다.
스마트폰을 확인한 유성은 동생에게 부재중 전화가 한통 와 있는 걸 확인한다.
[도대체 언제...]
바로 전화를 걸었고 들리는 건 좀 전의 통화연결 음. 기다리던 목소리와 달리 야속하게 음악만 흘러나온다.
[젠장!! 이 계집애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제발..제발...!]
-끼이익— 부앙—붕--
불안한 마음에 유성은 거칠게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유성은 곧 자신의 집인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고 그때 어떻게 알고 왔는지 홍순경도 마침 유성의 집에 도착.
[선배!! 혹시나 해서 와 봤더니..]
[후..우.. 홍순경 본부에 있으라니까.. 아무튼 내가지금 좀 바빠!]
둘은 곧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고 마음이 급한 유성은 급하게 버튼을 누른다.
-스응-스응-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씨팔!! 안돼! 제발 집에 있어라 유진아 제발!! 신이시여! 제발!! 헉헉..]
엘리베이터가 20층에 있었고 유성의 집은 12층 이었다.
마음이 급한 유성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비상구로 달려간다.
-탁탁탁탁 후-웁 후웁--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드디어 12층에 도착한 유성.
자신의 집 앞에 다가선 유성은 깜깜한 창문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듯 멈춰 섰다.
무언가 두려운 마음에 쉽사리 문을 열지 못한다.
혹시나 동생이 없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제발...유진아 제발...]
-띵동—띵동--
........
[제발...유진아...오빠왔어... 문좀 열어봐...유진아...]
-띵동- 띵동띵동띵동— 쾅쾅쾅--
[야...!!김유진!!! 장난하지 말고 당장 문 열란 말이야...!!!]
{12층에 도착했습니다.}
-스르륵
[서...선배...왜.. ]
홍순경은 직접 문을 열지 않고 애꿎은 초인종만 누르던 유성이 의아 했지만 땅바닥에 털썩 앉은 채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유성의 모습에 똑같이 두려워 졌다.
[크...흑...흡...유진아....]
[서..선배......제가...제가 열어 볼게요.]
-띠띠띠띠-띠 삐리리-
끼익-
종종 반찬과 과일 등을 가지고 놀러오던 홍순경은 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기에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르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유성은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도 벗지 않고 집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둘만 살던 집이고 애초에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집안에 별다른 가구도 없었기에 문을 열자 방문을 빼고는 집안이 훤히 보인다.
불길하게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벌칵-
유진의 방문을 열어본 유성은 잠시 그대로 서있다.
[선배...혹시 다른데 ..아.. 친구 만나러 갔을 수도 있잖아요. 그쵸?]
잠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애써 평정심을 찾는 유성.
[아... 그래.. 그렇지? 내가... 오버 한 거야. 그래 후후...]
[난... 일단 현장으로 갈게.]
[저.. 저도 갈게요 같이 가요.]
유성은 또다시 급하게 집을 나서고 불안한 홍순경도 뒤따른다.
애써 괜찮은 척 하지만 역시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유성.
다시 화재 현장으로 가는 유성은 머리가 복잡하다.
cut.
-00:02 00:01- 00:00-띠리딧- 츠으--
쓰레기통위에 놓여있던 여행용 트렁크에서 무색무취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빠른 속도로 공기 중에 섞인 아지랑이는 조용히 은밀하게 화재현장의 사람들에게 스며들어간다. 그리고 점점 퍼져 마을의 곳곳으로 스며들어간다.
-츠르르- 츠르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벌 모양의 드론이 트렁크를 향해 날아가고 보온병에 앉은 벌은 붉은 불빛을 내며 폭발한다.
-퍼벅— 치이익—부글부글--
내용물 분출이 끝난 보온병은 작은 불빛을 내며 서서히 녹아 형체를 지우며 사라져간다.
그리고는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 쓰레기들과 같이 녹아내린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유성.
언제 그랬냐는 듯 불길은 사라지고 그 곳엔 새까맣게 타버린 참혹한 현장이 남아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현장에 도착한 유성을 보고 지원 왔던 동료들이 달려온다.
[아...오셨습니까.. 저기..]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 후배경찰을 본 유성은 레스토랑 안으로 뛰어든다.
[저...경장님...!아..]
[야! 야! 뭐하냐! 어서 경장님 막아...!]
동료들의 만류를 뒤로한 채 폐허의 중심으로 들어간 유성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단번에 유진임을 알아챈 유성.
유진은 두 손으로 휴대폰을 꼭 쥐고 폭발로 인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진 안드로이드의 품에 웅크린 채 안겨있는 모습이었다.
[유...유진아..!!!!끄아악!!!유진아!!!!!!! 크헉..!]
유성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차마 부서질까, 동생의 시신을 만지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휴대폰을 쥐고 있는 두 손을 잡고 절규했다.
[오빠가...오빠가..미안해...크흡...전화도 못바..꼬..옥..빠..가..늦어..석 미..]
[으아!!!!!으아악!!!]
[선배...끄..흡..]
주위는 순간 침묵에 잠기고 홍순경은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을 참고 있다.
모두들 유진의 죽음에 고개를 숙이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가만히 눈물만 훔칠 뿐이다.
cut.
잔인한 하루.
도시의 출구로 차 한 대가 빠져나간다.
하룻밤 새에 조그마한 도시에 지옥을 선물한 남자는 눈이 쌓인 하얀 도로 위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자신이 왔다간 흔적을 남기듯이 도시의 출구방향 차선에는 두 개의 바퀴자국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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