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허담
작품명 : 고검추산 - 황금선 上 下 -
출판사 : 청어람
1.
매번 나올 때마다 읽고 있기는 하지만... 고검추산만의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것 같다. 굳이 꼽자면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에피소드마다 완결성을 지닌다는 것 정도인데, 그조차도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청부가 들어오고, 해결한다. 이 해결과정을 그려내는 것이 바로 고검추산이다. 강호의 일이다보니 드러난 것과 속사정은 다르고, 그러한 비밀을 벗겨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런 류의 스토리에 필수적인 게 뭘까. 바로 '긴장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 흩어져있는 단서,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음모, 한걸음씩 진실에 가까워지는 주인공과 그들을 덮치는 위기, 기지와 무공을 통한 극복, 어느순간 드러나는 충격적인 전모.... 이런 것 아닐까.
과연 고검추산에 이런 맛이 있는가. 없다. 없으니까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2.
분명 사건의 배후에 음모는 존재하지만 <독자들이 추리하기도 전에 이미 다 밝혀진다.> 사건 중간쯤에 흉수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전면에 나서서 사건해결에 힘쓰는 이들은 사패四覇와 사건 당사자들이고, 무불장의 청부사들은 오히려 '아웃사이더인양' 뒤에서 기회를 노리며 가끔 조언을 해줄 뿐이다. 전투는 끊없이 이어지지만 긴박감은 없다. 싸우고 도망치고, 싸우고 도망치는... 의미없는 전투의 연속.
그나마 황금충으로써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은 추산이 적의 은신처를 추리해내는 부분 정도이고, 그것조차 중요한 반전이라 할 수는 없다. (애초에 추산이 밝혀내기 전에 독자들에게 다 알려주기 때문에 답을 알고 시험을 치르는 격이다)
이번 황금선 에피소드를 요약해보면 배가 실종되었고, 청부를 받아 해결했고, 그 와중에 A와 B가 꾸민 음모가 드러났고, C라는 암중세력의 존재가 밝혀졌다 정도다. 겨우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 밖에 안된단 거다.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쥘 부분도 없었고 감탄하지도 않았다. 아 그런 내용이구나 하면서 읽을 뿐.
3.
고검추산은 분명 옴니버스식이고 표면적으로 에피소드마다 완결성을 갖는다. 하지만 내가 볼 때, 허담님은 각 에피소드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마음속에 그려놓은 커다란 밑그림을 조금씩 내보이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다.
각각의 사건해결과정에 기승전결을 넣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큰 줄기의 일부로만 취급하기에 이같은 모습이 나오는 거라 본다. 황금선 사건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면 지금처럼 미리 흉수의 입을 통해서 반전이란 반전은 다 까발리는 식의 전개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숨기고, 미묘하게 복선을 깔고, 살짝 독자의 시선을 흐트리면서 깜짝효과를 노렸겠지.
강호전체의 정세변화, 특히 사패四覇가 지배하는 현 체제에 큰 격변이 있을 것을 암시하는 역할이 더 컸기에 지금같은 밋밋한 전개가 된 것이다. 안정되어 있던 사패체제에 변화가 오며 미묘하게 흔들리는 강호의 모습도 좋긴 하다. 하지만 기껏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여 에피소드를 짜면서, 실제로는 장편소설 쓰듯이 진행하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4.
그 외에 지적하고 싶은 점은, 촛점 분산이 심하다는 것. 장르소설 독자 대부분이 한사람만 미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멀티 주인공 체제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고검과 추산이라는 2명의 주인공을 내세운데 이어서, 이번에는 사건에 투입된 무불장 고수들 거의 전부가 각자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조호연이..)
이번 에피소드에서 고검은 거의 활약이 없었고, 추산은 한두번 기지를 발휘하는 것이 다이다. 그렇다고 다른 무불장 고수들이 크게 부각되는 것도 아니니, 막상 다 읽고 나면 사건의 흐름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촛점이 분산된 만큼 개개인은 희미해진다는 거다. 장르소설에 있어 이건 커다란 약점이 아닐까.
그리고 [작가 스스로 네타하는 듯한 전개]는 정말 고쳐야 할 점이라 본다. 난 궁금해 하면서 글을 읽고 싶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손에 땀을 쥐며 읽고 싶다. 어떤 음흉한 계략이 숨어있는지 추리해가며 읽고 싶다. 뻔한 내용일지라도 어쨌든 알기 전까지는 즐겁지 않은가.
암옥의 제왕도, 백일검 이야기도, 이번 황금선도... 지나치게 친절하고 단선적인 구조라 반전이랄 것이 전혀 없다. 특히 황금선에선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중요한 부분마다 반전이 미리 까발려질 뿐 아니라, 제목부터가 심각한 네타나 다름없다. 독자 머리 위엔 항상 물음표(?)나 느낌표(!)가 떠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검추산을 읽을 때는 말줄임표(...)가 뜬다.
5.
독립된 에피소드 속에 일관된 흐름을 숨겨넣는 기법은 라이트노벨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성방식이다. 하지만 라노벨은 각각의 에피소드에도 힘을 쏟는다. 고검추산도 그러한 모습을 갖추어야 할 거라 본다. 부디 다음 이야기는 내 머리 위에 수십 개의 물음표, 느낌표가 뜨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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