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대장정
작품명 : 반왕
출판사 : 영상노트
대장정님의 반론을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아무런 근거없이 비하되고 있다면 그건 분명 분노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건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니까요. 그래서 제 감상(제 의사와는 관계없이 비평이 되버렸지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역사적 사실은 이미 공유되고 있으니까 그것을 차용하거나 인용하는 것은 표절이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분명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간과하고 계시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창작물에 기존의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을 인용하거나 차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는 점입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인용하거나 차용할 때는 표절이 됩니다.
예를 들어 SF 작가인 알프레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의 경우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를 모티브로 가져오되 인물의 성격이나 배경을 완전히 재창조 해냄으로써 사실 그 소설이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모티브로 쓴 소설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소설의 모티브를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앞서서 시인하고 밝히고 있습니다. 비록 전개나 결말이 완전히 다르다고 할지라도 소설속 인물의 행보를 결정하는 중요 모티브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반왕의 녹스요새가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연상시킨다고 제 감상문에 썼습니다. 녹스요새가 하드리아누스 방벽과 생김새가 비슷하거나 활용도가 비슷해서가 아닙니다. 그건 녹스요새가 갖고 있는 존재의미가 하드리아누스 방벽과 같기 때문입니다.
반왕에서는 녹스요새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녹스요새는 지어진지가 400년이 넘었고, 제국의 재정이 궁핍해진 이후로 제대로 보수조차 되어있지 않다. 이처럼 허술한 장벽을 끼고 있는 요새가 어떻게 사납고 용맹하기로 이름난 북방 야만족을 막아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여름에는 미칠 듯이 덥고 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곳이다.
사실 하드리아누스방벽은 로마 도미티아누스 황제시대에 건설된 게르마니아방벽을 브리타니아까지 연장시킴으로써 이른바 로마제국의 방위선을 구축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도미티아누스황제 때 건설된 게르마니아 방벽은 정말 여름에는 찌는 듯이 더웠고 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곳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에서 빈부의 차가 커지고 시민계급이 몰락하는 제국 말기가 되면 재정의 파탄으로 더이상 로마제국의 방위선이 되어주던 게르마니아 방벽과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존속시킬 수 없게 됩니다.그 이후 게르만인의 로마 제국 영토내로의 대규모 이동과 약탈을 로마는 더이상 방어할 수 없게 됩니다.
반왕에 나오는 마시족은 또 어떻습니까?
마시족을 살펴보면 북방 야만족(게르만인, 혹은 노르만인)의 압박에 결국 더 살기 좋은 로마 영토내로의 진입을 갈구하는 갈리아 족속 중 하나인 헬베티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둘다 기마부족이었고,부족중심의 공동체였습니다.
두 가지 요소를 따로 떼어놓고 보아선 유사할 수는 있지만 표절이라고는 보기 힘듭니다. 유사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표절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요소가 함께 결합하여 갖는 존재의 의미까지 유사하다면 그것을 고유한 창작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대장정님은 카이스 대제가 차라리 카이사르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피아에 올려져 있는 4권의 초입의 전개를 두고 말씀하셨으리라 봅니다. 아드리안 강이 갖는 의미! 무장병력이 강을 건너는 순간 그 무장병력은 반역자가 되고 반란군이 된다는 설정. 바로 로마의 루비콘 강이 갖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문제는 그런 역사적 배경을 차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레미 앙쥬가 그 아드리안 강을 건넘으로써 갖게 되는 의미. 즉 반왕이라고 불리워지는 그 의미가 그러합니다. 단순히 영웅이 강을 건너 제국 수도로 진격해 황제가 된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웅이 강을 건넘으로써 반역자가 되고 그가 이끄는 무장병력이 반란군이 되어버린다는 그 설정의 의미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건 결코 창작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가문이 몰락하고 기연을 얻고, 뛰어난 부하를 얻어 결국에 복수에 성공한다는 무협소설 또한 다 표절이겠네 라고 어떤 분이 지적하셨습니다.
모든 소설에는 원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신화의 원형이 분명 존재합니다. 신화 속 영웅은 항상 버림받고, 상처입으며, 방랑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로마의 건국영웅이었던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부모에게 버림받아 방랑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제가 일전에 올린 감상문에서 완벽한 창작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런 신화적 원형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판타지든 무협이든 기사문학 혹은 모험소설에서 영웅이 갖는 이미지는 그런 신화적 원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건 작가와 독자간의 어떤 의미에선 묵약 같은 것입니다. 영웅이 갑자기 마왕과 싸우다 배탈이 나 갑자기 죽어버린다라는 소설이 있다면 그건 작가가 독자와의 묵약을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깨어버림으로써 좋은 소설로 남기 어려운 것과 같은 것이다 하겠습니다.
즉 작가와 독자사이에는 원형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습니다. 창작은 그 암묵적 합의를 바탕으로 작가의 Originality를 가미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영웅이 야만족을 정벌하고, 그로 인한 명성과 부를 얻고, 이를 시기하고 질투한 제국의 무능력한 귀족들과 왕들이 영웅을 위협하고, 내전을 겪고 결국엔 위대한 황제가 된다라는 그런 신화의 원형과도 같은 이야기가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영웅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구체적의 배경과 의식, 주인공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갖게 되는 의미가 창조적인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녹스요새와 마시족이 로마의 하드리아누스방벽과 헬베티족(갈리아인)과 구체적인 묘사가 같으냐 아니냐가 아닌 마시족이 왜 제국을 침략해야 하며, 마시족이 왜 북방야만족으로부터 제국의 영토내로 들어오려 하는가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창조적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입니다.
작가분이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는 엘프도, 오크도, 마법사도 나오지 않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시면 전 거기에 대한 그 어떤 반론도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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