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다지 베테랑은 아닙니다만... 일단 글 쓰기에 미쳐서 살아온지 몇 년이 흘렀고, 무협작가이신 아버지나 여러 선생님들에게 들은 얘기와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느낀 점들이 많습니다.
하여 이제 글 쓰기를 막 시작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하여서 몇 가지 팁을 적어보려 합니다.
(이건 제가 다른 카페에도 올렸던 글이며, 그걸 그대로 복사해서 올리는 관계로 글꼴이나 크기가 좀 다를 수도 있습니다.)
1. 물 속에 들어가더라도 종이와 펜은 챙겨라
어디에 있든 바로 적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라는 것입니다. 정말 종이와 펜을 갖고 다녀도, 스마트폰의 어플을 이용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나 생활에서 얻은 지식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니까요.
사람의 뇌는 의외로 멍청합니다. 평생토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도 조금만 정신을 팔면 잊어버리죠. 소설가에게 있어 이런 일은 길을 가면서 돈을 줄줄줄 흘리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 생각했을 때 기발한 것이라면 더더욱, 정말 보잘것없는 아이디어라도 일단 적어두십시오. 그게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판단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지만, 그걸 적지 않고 잊어버렸을 땐 후회해도 늦은 때입니다.
2. 일단 앉아라. 뭘 하든 이게 먼저다.
일단 책상에 앉아서 자신이 글 쓰기에 이용하는 도구를 잡으십시오. 그것이 컴퓨터라면 컴퓨터를 키시고, 공책이라면 책을 펼치십시오.
만약 게임을 하게 된다면 '아, 내가 또 게임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게임을 지우시고, 인터넷을 무료하게 들락거리고 있다면 인터넷 선을 뽑아버리십시오. 저는 글을 가장 처음 배울 때 '사전을 봐야 되니까 인터넷은 켜놔야지.'라고 생각했다가 계속 쓸 데 없는 걸 보게 돼서 인터넷선을 연결하는 접촉부를 망가트려 버렸습니다. 그렇게 글을 썼습니다.
3. 방금 막 생각난 아이디어는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고, 적어 놓은 아이디어는 솜사탕이다. 솜사탕으로 뭔가를 만들려고 무작정 달려들면 손만 끈적끈적해진다.
아이디어를 적는 것 다음은 구체적인 구상입니다. 구상하는 요령에 대해 모를 때는 너무 힘들고 따분해서 이를 수행하지 않고 바로 글을 전개해나가는데, 이러면 베테랑이라도 글이 무너집니다.
구상을 하면서 가장 첫 번째로 생각할 건 '내 글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읽히게 할 것인가.'입니다. 그 어떠한 글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는 관계로 특정 성별, 연령, 혹은 어느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람에게 맞출 것이란 걸 확립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 부류의 사람들이 어떤 요소를 원하는가.'입니다. 장르소설이든 일반문학이든, 독자는 자신이 읽고 싶은 것만 읽습니다. 그 중에서도 장르소설은 자신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흐름과 조합이 있으며, 그에 따라 각 장르에는 나름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 법칙을 무시하고 '난 특별하고 새로운 걸 쓰겠어!!'라고 말하는 초보는 영영 초보로 지내게 됩니다. 저도 그 시기를 거쳤고, 장르의 법칙을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순간 주변 반응은 폭발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절대로 법칙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는 '독자들이 원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입니다. 위에서 이미 법칙을 이해했다면 이제 세세한 부분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남았습니다. 로맨스로 따지자면 등장인물들의 외형 묘사에도 큰 관심을 갖고, 다른 장르의 독자에 비해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한 편에 특별한 변화를 나타내는 문장 하나만 넣어주고 전부 남녀의 소소한 대화만 적어도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판타지는 다릅니다. 대부분이 웅장한 스케일의 전투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하고 막강한 힘을 표현해주는 걸 좋아합니다. 사람을 표현해줄 때도 그 분위기를 많이 설명해주죠. 쉽게 말하자면 로맨스독자는 나무 보기를 좋아하고, 판타지독자는 숲 보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분석한 것과 아이디어를 합쳐라.'입니다. 말 그대로. 위의 세 공정에서 알아낸 걸 토대로 구상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내 글이 젊은 여성의 초점에 맞춘 작품이라면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키, 몸무게, 체형, 성격, 헤어스타일, 옷스타일, 취미, 특기 등을 적어주고, 추가적으로 '과거'를 설정해줍니다. 과거는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신념을 확립해주고 그에 의한 성격이 나타나며, 감정을 잡아주기가 수월하죠. 더불어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을 만들어주기도 쉽습니다.
등장인물 설정이 끝났다면 세계관을 설정해줍니다.(순서를 달리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로맨스는 등장인물을 먼저 해주는 게 더 편하고, 판타지는 세계관을 먼저 잡아주는 게 편합니다.) 로맨스도 세계관은 잡아줘야 됩니다. 여러 가지가 있죠. '29살 아홉수가 힘든 직장생활을 보내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랑 이야기'라거나, '말단 사원과 사장 아들의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대략적인 스토리만 적어도 좋습니다. 일단 글로 남겨 놔서 자신의 머릿속에라도 확립하면 흔들릴 확률이 적으니까요.
4.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이기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이긴다지만... 노력 없이 즐기기만 하는 범인(凡人)은 아무 것도 아니다.
즐겁게 쓰는 걸 완전 부정하진 않습니다. 취미로 그냥 쓰는 것 자체를 즐기는 분들은 그냥 즐겁게 쓰시면 됩니다. 하지만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고, 프로를 목표로 하면서 노력을 안 하는 건 '나는 그냥 이렇게 살래.'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 얼른 잘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기에 자연스레 노력을 하게 된 것이고, 그만큼 시간도 많아서 하루에 열 몇 시간이나 글을 썼던 것이니 '나 만큼 하는 게 아니라면 노력한다고 말하지도 마!'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잘 쓰고 싶다면, 프로가 되고 싶다면 '정말로 어쩔 수 없이 해야 된는 일' 외에는 글 쓰기에 투자해야 된다는 것이죠. 뭐, 본인이 '난 게임을 못 하면 죽어!'라는 분들은 게임을 하셔도 됩니다. 그 만큼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뿐이죠.
5. 연재 전에는 반 권 이상의 분량 확보 + 최소 한 번 이상의 퇴고를 하라.
글을 쓰다 보면, 특히나 배우는 시기에는 분명 막혀서 잘 풀리지 않는 순간이 옵니다. 정말 하루에 한 줄 쓰기도 벅찰 때가 있죠. 그런데 이걸 '연재를 해야 돼!'라는 이상한 사명감 때문에 마구 짜내서 쓰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비축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퇴고를 하라는 건 무엇이냐. 그야 글을 막 쓸 때는 필연적으로 눈썹 휘날리며 달려가는 상태이기 때문에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죠. 그런데 퇴고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작품을 보는 것보다 느리게 흘러갑니다. 자신의 글을 보는 게 지루해서 한 장면 자체를 안 읽고 넘겨버리거나 하는 일이 없다면 말이죠.
이렇게 천천히 보면 꽤나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고, 이 중에는 굉장히 치명적인 것도 있습니다.
비유를 좀 하자면, 새하얀 생크림이 하나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무슨 맛일 것 같나요? 저는 바닐라향이 사르르 들어오는 폭신폭신한 제누아즈(케이크시트, 빵)와 부드러운 우유생크림. 딱 두 가지만 사용한 심플한 맛이 떠오르네요. 그래서 이 케이크를 팔 때 고객 분들에게 그렇게 설명해서 막~ 팔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손님들이 이렇게 항의를 하죠.
"이게 제누와즈에요~ 쿠키에요! 칼로 자를 수가 없을 정도구만!", "부드러운 우유크림? 그래 부드럽긴 하더이다. 그런데 무슨 버터에다 비린내 에센스 뿌렸어요? 비리고 느끼하고. 으휴~!"
왜 항의를 했을까요? 맛이 엄청 좋은데 이 사람들이 괜히 심술을 부리는 걸까요? 아니요. 이 케이크를 처음 만들어보고선 본인이 시식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여차 작품들과 다를 바가 없이 훌륭해 보여도 그 속은 직접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퇴고가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왜 미리 그럴 필요가 있느냐. 항의를 하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이 돼있고, 그렇게 시간이 한정된 여러 사람들이 이어질 순간은 더 짧으며, 그 짧은 순간이 이어진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퇴고이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중간에 퇴고를 한다면 그만큼 다음 편을 쓰는데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비틀려 있었던 앞부분을 풀어주면 필시 뒤에가 비틀립니다. 작품은 하나의 줄과 같으니까요.
6. 여러 곳을 두루 아는 철새가 되어라. 철새는 각 지역에서 최적화된 생활 방식을 안다.
사실 이건 제가 깨달은 것입니다.
어차피 저도 아직까지는 무료연재를 하고 있지만, 무료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올려야 됩니다. 내가 쓰는 게 판타지니까 조아라에만 올리지 말고, 내가 쓰는 게 로맨스니까 로***에만 올리지 말고. 그 어떤 것이든. 자신이 쓰고자하는 장르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곳이라면 다 올리십시오. 네**, 북**, 문피아, 조**, 로***, 신****, 리***, 북*, 아***, 다*, 등등. 연재 사이트는 많습니다.
그리고 이 많은 사이트 중에서 자신의 글이 가장 잘 통하는 곳, 자신의 글과 같은 성향의 작품을 보는 독자가 가장 많은 곳의 포맷에 맞춰서 작업환경을 조성하십시오. 프로그램마다 한 줄에 들어가는 내용이 다르고, 이는 사이트마다 또 달라집니다. 저의 경우에는 아래한글로 글을 쓰며 네** 웹소설의 독자 성향에 가장 잘 맞는 글을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글프로그램에서 용지 여백을 조정하여 네** 웹소설 PC버전과 같은 크기로 맞췄습니다. 왜냐? 그래야지만 독자들이 보기 편해하는 문장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요즘은 지문이 긴 걸 읽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장르소설은 킬링타임이 목적이기 때문에 지루하다 싶으면 손이 안 가죠. 그렇기 때문에 문장이 2줄, 3줄이 넘어가면 그냥 넘겨버리죠. 만약 작가가 여기에 아주 중요한 떡밥을 깔아뒀는데 나중에 가서 "이게 뭐야. 갑자기 왜 이래."라고 독자들이 말을 하면 이건 그냥 작가 잘못입니다. 작가는 독자가 재미 있게 읽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1번으로 둬야 되니까요. 교훈? 센세이션? 독자는 그런 것보다 지금 당장 보기에 재미 있는 작품을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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