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협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을 보고 있으면 청소년권장도서라도 읽는 듯한 기분입니다. 무협소설이 어른들의 동화라는 소리는 대체 어디로 간 건지...
그렇다고 와룡강씨처럼 전체 분량의 1/3이 '그짓'하는 묘사로 채우라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고 시기적절하게 감칠맛 나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작가분들이 요즘은 보이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시는건지는 몰라도, 그래서 이재일의 쟁선계를 보면 '참 맛깔나게 글을 쓰는구나'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으음......"
곁에 누워 있던 천심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자기처럼 아리따운 어깨선이 알에서 갓 나온 애벌레처럼 부드럽게 꿈틀거렸다. 아마도 잠에서 깨어나려는 모양이었다.
역의관은 그녀의 몸뚱이를 덮고 있는 얇은 홑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사타구니는 건조했고,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거웃에는 지난밤 정사의 흔적들이 실비듬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여인의 은밀한 부위를 만지는 것은 매우 음란하면서도 자극적인 일이었다. 그의 입가에 음충맞은 웃음이 맺혔다.
쟁선계 6권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음란하다면 음란한 장면이지만 절제된 표현과 기가막힌 비유로 멋들어진 문장들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밥 먹고 똥 싸는 것만큼 중요한 게 성생활인데, 어째서 사람 죽이는 건 칼로 어딜 어떻게 베었는지 칼은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피는 얼마나 나오는지, 아프긴 또 얼마나 아픈지 등을 그야말로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남녀사이의 애정행각은 달랑 한 줄로 그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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