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정규/판타지)인연살해

작성자
Lv.23 구선달
작성
11.12.26 20:01
조회
581

신화시대, 영웅시대, 인간시대를 표류하는 노병 '미친 빌'의 무장상선대 이야기.

1부: 미친 빌과 귀신늑대(완결)

"이렇게 두꺼운 성벽과 많은 인간들이 있는 곳에서 어떤 원수가 그렇게 두려운 걸까?"

"성벽과 대중이 나와 너 사이에 있지는 못하더군."

"어라, 그러네?"

2부: 미친 빌과 황금의 딸(완결)

"어머, 짐작 못하셨나요? 왕은 탄생할 거예요. 북부재단의 지지를 받는 서 파롤의 왕이라면, 충분하잖아요? 그리고 죽은 자의 왕도 그를 지지하겠죠. 중부를 향한 대반격이 시작될 테고. 즉 북부재단은 돈으로 북부를 사고, 죽은 자의 왕을 매수하는 거예요. 지금 저는 그것보다 작지만 비슷한 사건을 시도할 뿐이죠."

"계집애치곤 날카롭군."

"상인의 감각이라고 해주실 수 없나요?"

"유치한 애새끼가 검을 든 꼴이라고 해줄 순 있다. 북부재단이 죽은 자의 왕에게서 뭘 매수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떠들다니. 돌아가서 금화나 갖고 놀아라."

3부: 미친 빌과 졸업논문(연재 중)

-----------------------

서 파롤의 수도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돌로 벽을 만들었다간 추위를 버틸 수 없으니까. 돌은 나무보다 3배는 더 두꺼워야 같은 난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왕궁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평범한 건축물들보다 훨씬 압도적인 크기와 세심함을 갖추어, 궁성으로서의 위엄을 보이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타향 사람들은 북부의 궁성을 보고 경외심을 갖는다.

못 하나 없이 완공된 궁성.

통째로 불 타버려도 단 몇 주만에 복원이 가능한 도시.

중부 태양궁의 신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동토의 위엄!

그 왕궁의 알현실은 작은 창문들 때문에 빛이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호화롭게 치장된 장식물들과 중무장한 근위병들, 그리고 새어들어온 햇빛들은 암울하면서도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물론 그 분위기의 최소한 절반 이상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었다.

"빌은 아직도 오지 않았나?"

옥좌에 앉아있던 기드 왕이 말했다. 주변에선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기드 왕은 붉은 수염과 능글 맞은 성격을 가진 호쾌한 군주였지만, 이 질문에 한해서는 그 누구도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어하진 않았다. 그동안 왕이 부린 짜증은 평소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 신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곧 올 것입니다. 정 오지 않는다면 다른 인물을 보내시는 것이……."

"다시 말하지만, 빌이 아니면 안 돼."

왕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러자 주변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신하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 왕이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왕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광분해서는 학자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왕이 꺼내는 질문에 올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장로회조차! 장로회의 수호자들은 거듭되는 학자들의 하소연에 직접 왕궁을 찾아왔다가, 왕이 꺼내는 질문을 듣자마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조차 질문의 답을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올바르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왕은 더욱 화를 내고는 옛 선왕의 병사들을 소환했다. 그러나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노 에릭슨은 당황해버렸고, 침몰선주 프론홈은 침묵했으며, 흑선 시다크와 미친 빌은 대놓고 빈정거렸다. "나의 왕이여,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였습니까?"

중요한 문제였다. 적어도 귀띔 받은 왕에게는. 주변 사람들은 참다 못해 왕에게 그가 들었다는 이야기를 온전히 전해줄 것을 간청했으나, 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이들이 포기할 때쯤, 왕은 갑자기 한 대학생을 소환했다. 그 대학생이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왕의 기행이 또 시작된 줄 알았다.

대학생은 여자였다.

전공은 법학도, 의학도, 신학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이디아 대륙의 인간이 아니었다.

왕은 그녀에게 약속했다. 파격적인 대우와 지원을. 그 중 하나가 그녀의 호위였다. 그녀는 옛 유물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었고, 그녀가 관심을 갖는 유물들은 태양궁이나 저 남부에 있지 않았다. 유서 깊은 곳만 찾는 도굴꾼들이 좋아할만한 곳이 아닌, 약탈자들이 뒤지는 땅이 그녀의 목적지였다.

죽은 자의 영토, 즉 죽은 자의 왕이 지배하는 땅.

그곳을 자주 들락거리는, 수완 좋은 용병이 필요했다. 게다가 왕은 자신만이 아는 목적을 위해 가급적 선왕의 추종자들 중 인물을 고르려 했다. 신하들은 왕의 질문과 죽은 자의 영토가 대체 무슨 상관인지 짐작도 못했지만.

왕의 노 에릭슨? 안 된다. 그는 이제 정규군에 더 가깝다. 게다가 왕의 곁에 있어야 하는 중요인물이다.

침몰선주 프론홈? 안 된다. 그 치매 걸린 폭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떤 군주도 물 속을 가는 배를 연구한다고 연락두절된 인간과 오래 있고 싶진 않을 것이다.

흑선 시다크? 안 된다. 그와 그의 동생에겐 왕이 바라는 충직함이 없었다. 왕이 바랄 만한 교활함은 있었지만.

남는 건 빌뿐이다. 왕에겐 그가 필요했다.

"지그하우스에서 좀 튕긴 것이 그렇게 섭섭했나? 대신 벤담에게 밀령을 줬잖아?"

"빌이 전하의 은혜를 실감하지 못한 듯 합니다."

한 신하가 말했다. 그렇게 급했으면 순순히 몸값을 내지 그랬냐는 비난도 섞인 말이었다. 물론 순순히, 빠르게 돈을 지불할 수 없었던 것은 돈 문제만이 아니었지만. 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팽팽해진 그때였다. 한 근위병이 알현실로 들어와 보고했다.

"전하, 선왕의 정예병이었던 빌 사이커가 부름 받아 뵙기를 청합니다."

그제야 신하들 가운데서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리곤 약간의 웃음소리도 나왔다. 이젠 빌이 한바탕 깨질 차례다. 왕은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말했다.

"허락한다."

잠시 뒤 쩔그렁거리는 사슬갑옷소리와 함께 건장한 체구의 노병이 나타났다. 허리엔 보검을 차고 어깨엔 검은 개가죽 망토를 걸친 모습으로. 녹색과 노란색의 줄무늬 바지와 자루까지 쇠로 만든 도끼가 그가 누군지 명백히 드러냈다.

거침 없이 알현실로 들어온 빌은 그 한가운데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의 왕이여! 당신께서 부르셨기에 이 노구, 다난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이 자리에 출두했나이다. 명하소서, 당신 원하신대로 이루어지리이다."

의역하면, 댁 때문에 고생하고 와서 성깔 좀 더러워졌다. 닥치고 용건이나 말해.

성격이 급한 왕이라면 당장 화를 냈을 것이다. 능글 맞은 왕이라면 되받아쳤을 것이다. 그러나 우회적인 빈정거림에도 왕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하지 않았다. 빌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마찬가지인 신하들이 마른 침을 삼킬 때쯤에야 왕은 입을 열었다.

"빌 빼고 모두 나가 있도록. 근위병은 귀머거리만 남도록 하라."

왕의 명령대로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알현실의 문이 닫히자, 왕은 그전보다 훨씬 성량이 줄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선왕의 충직한 신하이자,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내게 돌아온 노병이여. 그대에게 임무를 맡기고자 하네."

"제가 들은 대로, 신대륙의 대학생을 수행하는 일이 맞습니까?"

"그렇소."

빌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겨우 그런 일 때문에 오라가라 하다니, 하면서.

"행선지를 말해주십시오. 제가 그것만은 듣지 못했습니다."

왕은 간단히 답해주었다.

"연옥 입구."

빌은 눈을 껌뻑거렸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명령이기 때문이었다.

"대륙 북쪽 끝의 그 연옥 입구가 맞습니까?"

"맞소."

빌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성한 수염 밑에서도 그 표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나의 왕이여, 신화시대가 종언을 고한 이래 아무도 그 밑바닥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왕이여, 걸러 들으소서. 그 양년이 죽자고 환장한 것은 아닙니까?"

그제야 왕은 웃음을 내보였다.

"오직 학문을 위하여 호수 하나, 강 한 줄기를 찾고자 사막과 밀림을 거쳐가는 사람들이 있잖소.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탐험가라고 부르지. 그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오.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한."

"제게 모험심은 있을지 모르나, 얼굴도 못 본 양년과 같이 자살할 만한 연심은 없습니다."

"밑에 같이 내려가줄 필요는 없소. 그저 연옥입구까지 오가는 동안 지켜주기만 하시오. 그녀 홀로 보냈다간 해골 병사부터 실낙원기사단까지 온갖 놈들이 덤빌 테니."

빌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학구적인 신대륙 연놈들은 어떤 위험부담을 무릅쓰더라도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의 영토는 다르다. 그곳만은 그들도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 죽은 자의 왕이 허락해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허락을 받고도 죽어나가는 자가 드물지 않은 곳이다.

"그것만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습니다만, 혹 다른 목적을 갖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있소. 전에 그대에게 한 질문 그대로요."

"나의 왕이여, 이 노물은 도통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해할 필요 없소. 대답만 하시오. 당신은 기억하는 거요?"

빌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나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떠올리지 못하겠습니다."

왕은 앓는 소리를 냈다.

"왜 아무도 그걸 기억 못하는 거요? 선왕의 가장 가까운 군신들은 물론이고 북부의 장로들조차!"

"그걸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궁색하지만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장로는 왕의 질문에 대해 30년 전의 꿈을 묻는 것과 비슷하다며 난색을 드러냈다 한다. 꿈을 기억하는 것은 손으로 물을 막으려는 것과 같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억해내기도 어렵다. 간혹 단면이나마 오래 기억에 남는 꿈도 있지만, 왕의 질문은 그 경우에 속하지 않았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한참 동안 옥좌를 맴돌면서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중얼거렸다. 대여섯바퀴를 돈 다음 그는 다시 빌에게 말했다.

"혹, 본다면 기억해낼 수 있소?"

빌은 다시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야, 기억해낼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럼 됐소. 가시오. 대학생과 그 일행은 곧 그쪽 숙소로 보내겠소."

혼란스러워진 빌은 당장 일어서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꺼냈다.

"어떻게 다시 볼 수 있단 말입니까?"

왕은 다시 옥좌에 앉았다. 지쳐 보이는 표정이었다.

"가시오. 가면 알게 될 거요."

------------------------------------

http://www.munpia.com/bbs/zboard.php?id=bn_551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연재한담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10291 홍보 골든베스트 입성! 정규 연재, 폭풍의 기사 홍보합... +8 Lv.67 달필공자 12.01.16 1,491 0
10290 홍보 [자연/게임]그리드(GREED)홍보합니다. +3 Lv.9 죽이는농담 12.01.16 1,847 0
10289 홍보 [정연/게임/브라이트월드] 잔잔한 게임의 일상을 ... +4 Personacon 메릿사 12.01.15 1,410 0
10288 홍보 [정연]곤충의 세상 홍보합니다! +19 Lv.51 신광호 12.01.15 1,435 0
10287 홍보 정규/판타지)인연살해: 소드맛스타 싫은 분? +7 Lv.23 구선달 12.01.15 778 0
10286 홍보 [정연/판타지]비인외도 +5 Personacon 큰불 12.01.14 1,058 0
10285 홍보 토요일 밤에 읽을 만한 삼국지 팬픽! '일엽편주' 1... +7 Lv.19 모루우 12.01.14 1,357 0
10284 홍보 홍보가 힘들어요 함분축원 정연 일반 +1 Lv.1 기억하나 12.01.14 665 0
10283 홍보 골든베스트 15위의 그 작품!! (정연/역사) 삼국지 ... +5 Personacon 윤가람 12.01.14 1,329 0
10282 홍보 [정연/판타지] 연극과 동화 사이. 황금 호밀 +5 Lv.1 밀가루백작 12.01.13 1,375 0
10281 홍보 [현대물]지구를 침식하는 자와 낙원을 바라는 자 ... +2 Lv.4 찬트 12.01.13 1,185 0
10280 홍보 [정연/판타지] 라이언 전기입니다. +2 Personacon 무명선생 12.01.13 1,089 0
10279 홍보 [자연/뉴웨이브] 차원의 지배자 쟌스 Lv.1 곰덩치 12.01.13 989 0
10278 홍보 [정연/판타지] 기억을 찾기 위한 싸움, 세번째 황태자 +3 Lv.41 백락白樂 12.01.12 737 0
10277 홍보 [정연/버려진자의낙원] 나는 만든다 영지를 +6 오르네우 12.01.12 1,191 0
10276 홍보 일월쌍마도 홍보합니다. Lv.10 세종 12.01.12 1,232 0
10275 홍보 [정연/일반] 신년맞이 <안개 도시 모음곡> 홍보 +8 Personacon RALL 12.01.12 740 0
10274 홍보 [정연/판타지]강화 마스터 홍보합니다 +12 Lv.5 나독 12.01.11 1,519 0
10273 홍보 [정연/판타지] 희귀한 판타지 BeautifulWorld +5 Lv.38 퀘이사T 12.01.11 1,185 0
10272 홍보 [정연/선악과] '정규연재' 입성하였습니다! +2 Lv.1 [탈퇴계정] 12.01.11 422 0
10271 홍보 세상 모든 사기를 파헤친다 [정연/현대/메모리 리... +4 Lv.77 바이월드 12.01.11 862 0
10270 홍보 [정연/판타지] 이곳을 벗어나라! 방랑자들의 '낙원... +6 Lv.1 [탈퇴계정] 12.01.10 641 0
10269 홍보 [자연/판타지]목표는 세상이랄까홍보합니다~ Lv.2 아쿡 12.01.10 516 0
10268 홍보 [정연/무협]본격 추리무협 소리향신전! +2 Lv.1 古龍生 12.01.10 1,338 0
10267 홍보 [자연/일반] 다 덤벼! 홍보합니다. +4 Lv.4 꿈있는자유 12.01.10 989 0
10266 홍보 정편/판타지 언데드 요한 홍보합니다. Lv.19 과니 12.01.10 415 0
10265 홍보 [정연/ 게임판타지] 사격의 명수 홍보합니다. +8 Lv.15 가리오 12.01.09 2,351 0
10264 홍보 정규연재 무협/ 충혼좌도와 다른 몇 무협작품!!! +1 곽산 12.01.09 1,503 0
10263 홍보 진정한 난세의 시작, 정규연재란 폭풍의 기사! 홍... +7 Lv.67 달필공자 12.01.09 1,789 0
10262 홍보 무협/화산지검 +2 Lv.43 개벽S 12.01.09 1,919 0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