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작가로서의 자존심과 글에 대한 긍지를 적었으니 이번엔 주제에 대해서 적어 보겠습니다.쓰다 보니 시리즈물처럼 되었지만 좋은 글을 대가 없이 읽는 독자로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적어 봅니다.
저는 SF물을 좋아합니다. 이런 저런 작가의 생각을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표출시키기 좋은 환경 조차도 내가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른바 작가에게만 허용된 전지적 능력이랄까요. 내가 입는 옷, 집, 동네, 주변의 나무 하나까지 다 내가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 영화세트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안에는 작가의 세상을 바라 보는 시선, 취향, 가치순위 등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배경으로 놓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냅니다.
예전에 보았던 SF만화중에(아마 원작가가 있었으리라 생각 됩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메이드로봇이 주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인은 인간이지요. 애인도 있고. 메이드로봇은 주인의 맘에 들기 위해 주인이 원하는 바를 해주려 합니다. 주인의 애인이 와서 포옹을 합니다. 주인이 기뻐합니다. 애인이 간 후 메이드 로봇은 주인을 껴안습니다. 꼬옥. 주인은 압사합니다.
간단한 스토리입니다. 주제도 간단하죠. 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사랑을 얘기하기에 더 없이 좋은 상황설정입니다. SF는 이런 점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그중에 작가가 문명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메이드가 보는 인간애인과 주인들의 사랑의 관점은 어떠한지, 그 외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작가의 여러 관점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글은 작가의 모든 부분을 드러나게 합니다. 그림을 보아도, 음악을 들어도, 아니 옷 입는 것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작가가 세상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없다면 글도 역시 독특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다면 독자 역시 명확하게 글을 파악하기 힘듭니다. 저는 이 청준님의 소설들을 좋아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 하신게 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뜻은 “나는 내가 그 단어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될때에야 그 단어를 쓴다”라고 하셨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정도의 깊이가 있었거든요.
세상에 대한 작가의 다른 시점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게 하구요. 요즘 한담글에 자주 올라오는 OO물 좀 추천해 주세요. 또는 OO가 XX해서 YY되는 거 추천해 주세요. 이런 글들… 사실 정말 어이 없습니다. 글을 올리신 분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장르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독자가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키는 것과 같죠. 이미 어떤 맛인지 알고 단지 더 맛있는지 덜 맛있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더 다양한 시점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재해석하고 새 시점이 생기고 하고픈 말이 생겼다면 그 범위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단편에 어울리는 주제인지, 장편에 어울릴 소재인지. 그에 곁들여 가는 작은 주제들은 얼마나 할지. 그 작은 주제들은 메인 주제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조를 할지, 초반에 정말 재미있다가 후반에 아주 지리멸렬하는 글들 많습니다. 처음 잡았던 주제가 그 길이의 글을 소화 못 시키는 경우입니다. 장편은 어렵습니다. 독자에게 끝없는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 소재들이 나와야 합니다. 소뼈 하나로 한 솥을 끓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점에서 견마지로님의 글을 추천합니다. 간이 딱 맞거든요. 장르소설은 양념이 좀 많은 것이 특색이긴 합니다. 대중적이라는 것은 결국 그렇게 갈 수 밖에 없거든요. 이 주제에 대해 몇 년을 생각한 작가와 단 십분도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독자가 만나는데 당연한 겁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양념을 넣습니다. 독자가 좀 더 접근하기 쉽게요. 하지만 양념만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구조와 형식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신다면 양념만으로도 가능 하겠습니다만 이 글은 작가를 염두에 두신 초보작가님을 위한 거니까요. 독자가 원하는 건 강한 양념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단지 그것을 자신의 주제로 독자를 끌어 들이기 위한 미끼로 써야 합니다. 자칫 자신이 양념에 매몰되어 버리면 독자와 수준이 같아지게 되고 결국은 독자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판타지,무협은 어떤 제약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기 좋은 공간입니다. 그만큼 스스로 제약을 만들어야 하니 더욱 힘들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 또한 작가의 즐거움 아닐까요? 내가 만든 내 세상. 그것은 작가의 특권입니다. 거기에 더불어 그 세상에 와서 어울려 주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내가 만든 세상을 경탄의 눈으로 봅니다. 그것이 작가의 보람입니다. 이 멋진 작업을 하시;는 작가분들께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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