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고 평화로웠던 밤, 배런의 평야에는 느닷없이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강렬한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든클록!"
"배런을 위하여!"
보리와 밀이 그려진 롤프가(家)의 깃발과 나무와 도끼가 새겨진 우든클록가(家)의 기치가 서로 뒤엉키며 바닥에 나뒹굴었고, 수십명정도 되는 병사들이 각자 장비하고 있던 무기들을 꺼내 서로를 향해 찌르고 휘둘렀다.
"우든클록의 개자식들! 니네들은 매일밤마다 영주한테 엉덩이나 대준다며? 어디 내 방망이도 한번 맛 보시지!"
"니 동생은 내가 따먹었다 좆만아!"
모욕적인 단어와 욕설이 여기저기에서 난무했다 비명섞인 고함소리와 광기어린 웃음소리가 평야의 하늘을 뒤덮었고 잔인하고도 처참한 살육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보리스경은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방패 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고선 단단한 철퇴를 왼손으로 꽉 쥔채 전방의 적을 향해 풀스윙으로 낮게 베었다. 다리를 노려 넘어트릴 목적이었지만 적은 풋내기 농민병이 아닌 노련한 기사였고 전투의 베테랑이었다, 우든클록의 기사는 자신의 검으로 세차게 철퇴를 내쳐버리고선 틈을 놓치지 않고 휘청거리던 보리스의 얼굴을 향해 퍼멀*을 날렸다.
우든클록 기사의 검광이 보름달빛에 번뜩였다 보리스는 날려오는 퍼멀을 황급히 방패로 막고선 자세를 바로잡아 적을 노려보며 걸음을 맞추었다,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둘은 서로의 빈틈과 약점을 찾기 위해 열심히 눈을 굴렸다.
"늙은 사자도 명성에 비례하면 별거 없구만 그래! 당신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나 보군."
우든클록 기사가 도발하는 목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단단히 밀폐된 철투구에 묻혀 웅얼거릴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보리스경은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너같은 애송이에게 죽을 내가 아니다, 와라! 언제든지 상대해 주지."
보리스경은 철퇴로 원형방패를 두들기며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우든클록 기사는 사슬갑옷이 흔들리는 철커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장검으로 힘껏 내리쳤다.
퍽!
장검이 방패와 맞부딪히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보리스는 자연스럽게 원형방패로 적의 공격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우든클록 기사는 무방비인 상태로 빈틈을 내어주었고 여태 기회를 노리던 그는 얼른 철퇴를 휘둘러 우든클록 기사의 옆구리를 향해 강렬한 한방을 선사해주었다.
"우욱..젠장할."
뼈가 부서지는 고약한 소리가 나더니 우든클록의 기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장검을 떨어트렸다, 챙그렁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그는 연신 옆구리를 잡더니 주춤거렸고 한쪽 손을 들어 패배를 인정하였다.
기사간의 전투는 순식간에 끝나버렸고 그제서야 긴장이 풀려진 보리스는 방패와 철퇴를 내려놓고선 경계를 풀었다. 우든클록 기사와의 싸움이 끝남과 동시에 양측의 비명소리와 고함소리도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