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신력의 회전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신력을 감싼 봉인이 깨졌다.
짧고 통쾌한 파열음과 함께 단정히 정좌해있던 카이미르의 몸이 거대한 본체로 돌아가고 있었다. 폴리모프 마법이 강제로 해제된 것이다.
“…….”
신력에 모든 의식을 집중한 카이미르는 자신이 본체로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이제까지 신력을 단단히 감싸 준 봉인이 깨질 때, 그저 회전속도에만 휩쓸린 신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찌지직-
어떻게 된 일인지, 푸른색으로 빛나야 할 붉은 비늘이 점점 하얗게 굳어가고 있었다. 마치 죽은 뱀의 비늘같이 생기가 없는 그것이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
실패일까. 하얗게 굳어진 카이미르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투둑.
죽은 듯이 꼼짝도 않던 카이미르가 크게 고개를 휘저었다. 긴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노숙자의 머리에 쌓인 비듬처럼 잘게 바스러진 비늘이 으스스 떨어져 내렸다.
“하아.”
하얗게 바스러진 가루가 사방에 날릴수록 카이미르의 몸은 더욱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새로운 비늘. 한층 더 날렵하고 늘씬하게 변한 동체가 청룡과 흡사했다.
‘해냈다.’
“켁?”
그렇게 허물을 벗어낸 카이미르가 자신의 모습을 확인 할 새도 없이,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훽 일그러뜨리는 것이었다.
“푸에취! 콜록!”
뭔가 사래라도 들린 것처럼 고통스럽게 기침을 내뱉은 카이미르의 입에서 뭔가 쏘아져 나갔다.
툭.
“에?”
그제야 속 시원한 표정으로 한숨을 돌리던 카이미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침 대신 입에서 튀어나온 구슬이 동굴바닥을 또르륵 뒹구는 것이었다.
‘원래 처음은 이런 방식으로 꺼내는 거였나.’
바닥을 뒹구는 구슬을 멍하니 응시하던 카이미르는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팔을 뻗어 구슬을 주워들었다. 이것을 몰라볼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작은 구슬이 그토록 염원해 오던 여의주다.
“이것이 내 여의주…. 근데 이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손에 들린 여의주를 찬찬히 관찰하던 카이미르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잘못 봤나 싶어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확인해 보아도 여의주 앞면의 색과 뒤쪽의 색이 서로 달랐다.
‘뭔가 이상하다.’
본래 청룡의 여의주는 푸른색. 이 여의주가 그저 신력을 단단하게 뭉쳐낸 편법으로 만들어 낸 것인 이상, 순수한 푸른색은 못 되더라도 푸른색 비슷한 거라도 뗘야 했다. 헌데 두 가지 색깔을 가진 여의주라니,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이다.
‘혹시 불량품….’
붉은색과 푸른색이 물결처럼 어우러진 태극형상의 구슬을 뚫어지게 관찰하던 카이미르가 온 몸을 엄습하는 불길함에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도무지 말로 표현 못할 찝찝함에 미간을 잔뜩 찡그러뜨리던 카이미르가 더 이상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색깔이 단정치 못한 이 여의주를 당장 시험해 볼 작정이다. 그래, 색깔 따윈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여의주가 갖고 있는 성능이지 않은가.
“운(雲)!”
이윽고 동굴 앞 공터에 선 카이미르가 짧게 외쳤다. 어릴 때부터 여의주를 만들면 가장 처음 해보고 싶었던 것, 아버지처럼 구름을 타고 넓은 하늘을 유유자적 날아다니는 것이다.
“…….”
헌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수 초간이나 고개를 길게 빼놓고 기다려 보아도 구름은커녕 구름친척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운(雲)!”
“운(雲)!”
“운(雲)!”
혹시 발음이 잘못 되었나 싶어, 여러 번 외쳐 불러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뢰(雷)!”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름을 기다리다 지친 카이미르가 이번엔 다른 음을 외쳐 불렀다. 그래, 튼튼한 날개도 있는데 구름 까짓 거 안타면 그만이다. 하지만 번개 정도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이 반쪽짜리 여의주도 체면이 설게 아닌가.
“…….”
헌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사태인가. 역시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려 보아도 우람한 소리와 함께 눈이 부시도록 번쩍거려야 할 번개는커녕, 탁 트인 공간은 어디서 오거 트림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뢰(雷)!”
“뢰(雷)!”
“뢰(雷)!”
“제기랄!”
온몸에 엄습하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며, 피가 터지도록 재차 외치던 카이미르가 여의주를 한 손에 움켜쥐고 용솟음쳤다. 이것이 진정 여의주라면 최소한 비라도 내릴 수 있어야 했다.
“…….”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언젠가 아버지에게 들은 방식대로 하늘 높이 솟은 구름 위를 휘젓고 다녀도 시커먼 먹구름이 모여 들기는커녕, 눈이 시리도록 하얀 구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대체 왜….”
까마득한 창공에서 절망에 휩싸인 카이미르는 가슴이 울컥했다. 그렇게도 어렵게 만들어낸 여의주이건만 기대해 왔던 것과 너무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굉장한 여의주를 만들어내길 기대하던 아버지에게는…. 천계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나에게는…. 이제까지 조력을 아끼지 않은 이카르트에게는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제목이 여의주라고 여의주만 만들면 끝나는 것이 아닌 이야기.
주인공 무한정 굴리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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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연재 + 완결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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