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를 제외한 무협, 판타지, 게임, 현대 소설 등등. 옛날에는 익숙했고 또 익숙한 패턴이고, 뭐 그런가보다 하면서 읽었던 수많은 작품들의 대부분엔 끝내주게 예쁘고 아름다운 히로인이 나온다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거기서 그치면 다행일텐데, 주인공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 혹은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계기, 그 외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는 첫 단추가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도 깨닫고 말았어요.
참 이상한 것이, 예전에는 그게 뭐 대수냐 싶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요즘엔 유독 눈에 거슬리더라고요. 왜 하필이면 여자일까. 왜 대부분의 계기는 '여자'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하물며 그 계기가 아이일때도 그 아이의 성은 여자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습지만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어째서 늘 여자일까요? 여자아이가 더 불쌍해보이니까? 가련해보이니까? 납득하기가 좀 더 쉬워서?
무슨 이유가 되었든 간에 '여자'로 인하여 스토리가 이어져나가고 '여자'로 인하여 주인공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여성인 제 입장에서 볼 땐 좀 질리는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왜 대부분의 계기는 여자가 되는 것이죠? 가족이 될 순 없나요? 친한 친구가 될 순 없습니까? 혹은 지나가던 이름모를 사내자식이 될 순 없는 거에요? 왜 이름모를 여자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서 이름모를 남자는 계기가 될 수 없는지, 서글픕니다. 이젠 아름다운 여자만 등장해도 한숨을 쉬면서 그 작품 읽기를 포기해버립니다. 작가의 필력이나 스토리의 신선함과는 무관하게, 이미 보편타당한 계기가 되어버린 '여자'가 나옴으로써 작품을 읽는 것이 무기력해지는 것이죠.
저는 이것의 대해서 비판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젠 여자만 나와도 지긋지긋해진 이 놈의 까다로운 식성이 언제쯤 다시 먹성 좋게 변할 것인가가 궁금할 뿐입니다.
이러다간 제 유일한 취미인 독서조차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정말이지, 글을 읽고 싶어요. 제가 읽은 작품 중 여자가 이유나 계기가 되지 않는 유일한 작품은 월야환담 시리즈 뿐입니다. 사실 이런 글이나 분위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딱히 이 작품과 비슷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은 아니나, 그래도 이렇게 변명 하나 하지 않고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구 돌진하는 글은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쩝. 주절거리다 보니 푸념만 잔뜩 늘어놨네요. 아, 이젠 정말이지 여자는 지긋지긋해요. 제가 여잔데 왜 자꾸 아름다운 여자히로인에게 제 아까운 시간을 보태야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로맨스는 동생이 퍼다주는 재벌2세 로맨스소설만으로도 충분하다구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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