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 이야기는 픽션 속의 픽션이며 현실에 존재하는 사건, 인물, 단체, 소설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늘 그러듯 텅 빈 버스 뒷좌석으로 냉큼 달려가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고장 난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고 시원하지만 매연 섞인 바람을 만끽하려는데, 한 녀석이 눈에 거슬립니다.
앞자리에 앉아 학생주제에 무려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한 소년.
우리 반 녀석입니다.
‘구질구질하게 아직도 저런 컴퓨터 쓰는 놈이 있나.’
소년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왼 손을 바라봅니다. 얼마 전에 부모님을 졸라 구입한 최신형 멀티미디어 단말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겉보기에는 시계 같지만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하얀 배경이면 어디든지 TV화면으로 만들어주는 녀석입니다.
잠 잘 때 무선 이어폰을 끼고 천장에 투영해 보는 영화가 또 제 맛인 거거든요.
아무튼 저런 구식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녀석을 잠시 애도합니다.
시선을 돌리고 영화나 한 편 보려는데 이번에는 녀석의 말소리가 귀에 거슬립니다.
아, 짜증나라.
사실 이 녀석은 존재감도 없고,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편도 아니라 평소에 반에서 겉돌던 녀석이었거든요. 당연히 친하지도 않습니다. 일 년이 지나도록 말 몇 마디 나눠본 것이 다입니다.
“그게 뭐야!”
“ㅋㅋㅋ 차라리 개그맨 해라 그냥.”
“그래서 숙제는 다 했어?”
이야. 듣고 있자니 아주 끝내줍니다. 이상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또 미친놈인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통화용 핸즈프리도 아닌 마이크도 없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혼잣말을 하다니요.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 분명합니다. 앞으로 절대 이 녀석과 얽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네요.
“미친놈.”
낮게 그 녀석을 비웃어주며 단말기를 조작하여 녀석의 뒷머리에 ‘미친놈’이라는 글자를 투영해봅니다. 물론 그것도 얼마안가 질려서 그냥 하얀 공책 하나를 꺼내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죠.
버스는 얼마안가 집 앞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건은 그 때 일어났습니다. 멀쩡히 잘 돌아가던 시계가 난데없이 폭발한 겁니다.
“앗뜨뜨.”
얼른 벗어던지고 일단 버스에서 내린 후 망연자실 새까매진 단말기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망했다.”
이건 뭐 딱 봐도 고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대체 왜 갑자기! 옛날과는 달리 이온전지가 탑재된 것도 아닌데 난데없이 폭발이 웬 말입니까?!
엉엉 울며 집으로 들어가 고객센터에 항의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습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설정된 대로 컴퓨터가 부팅되기 시작해서 자리에 앉으니 이미 바탕화면이 떠 있습니다.
당장 인터넷 전화를 실행해서 고객센터에 항의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아놔지금내가안녕하게생겼어지금시계가터져서내손이탈뻔했다고이게대체무슨시베리아벌판에서얼어죽을시츄에이션이란말이냐고.”
고객님 침착하시고 차근차근―.
“아 놔 그러니까!”
펑!
난데없이 컴퓨터가 폭발합니다.
으악 이건 또 뭐야.
두꺼비집이 내려가 집 안의 모든 전자제품이 잠시 죽습니다. 곧 자동으로 복구되긴 했지만 난 아직도 사태파악이 안 됩니다.
“으악$#%&*@$&*@#^$*&”
온갖 육두문자와 함께 책가방이 허공을 갈랐지만 역시 달라질리 없는 현실에 소년은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런일이!!! 으ㅎㅓㅎ으ㅎㅓㅎ.”
같은 시각. 그 소년의 모습을 첩보위성의 갖가지 관측기구들로 응시하던 한 존재가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꼴 좋군.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조롱했냐고.
그랬습니다. 모든 일은 인과응보인 법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어느 소년은 오늘도 어김없이 소녀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시리아, 그럼 오늘은 뭘 하며 놀까?”
“음… 드래곤 타고 놀아요!”
드래곤이 무슨 애 이름은 아니었지만 이 귀엽고 앙증맞으면서도 무시무시한 소녀는 한없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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