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 사실 어제 9시쯤에 집을 나가서 새벽 3시까지 버스 정류소 야광 광고판에 달라붙어 언 손으로 글 쓰다가 (집안 사정이 안 좋습니다 24시 맥도날드나 롯데리아로 안 들어간 건 제 썩어빠진 정신 상태에 벌을 주려고 안 간 거임) 더 이상 글이 안 써지자 그때부터 미친 듯이 걸어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늘 10시쯤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래서 좀 제정신이 아니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집안의 반대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군요, 글을 쓰고 싶으면 역시 돈을 벌어야합니다. 옳은 말이라서 늘 죄인처럼 입 다물고 삽니다.
아무튼 그렇게 욕 들어가며 쓰는 소설입니다. 사람들이 안 봐준다고 징징 될 의도로 이 글을 쓰는 건 아닙니다. 음, 자신의 글의 독자라면 누구나 그런 말 하겠지만, 제 글의 독자들 역시 "재미있다" "웃기다"라는 리플을 남겨주십니다.
예예, 독자들이여. 당신들이 웃기 위해 보는 소설을 나는 울며 쓰고 있다는 걸 아나요. 리플 구걸은 하지 않지만 웃었다는 흔적은 좀 남겨주세요, 울며 쓴 소설이지만 당신들이 웃으면 나도 기뻐서 웃습니다.
아아, 위는 잡설이고요. 하고 싶은 말은 소제목입니다. 가끔 어떤 소제목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 모르겠다고 질문을 던져오는 독자들이 있어서요. 멍~ 그렇게 내가 못 썼나 싶어서 좌절합니다.
글 쓰시는 분들 대부분 그렇겠지만 소제목을 결정하는데 쉽게든 어렵게든 그 챕터를 나타낼 수 있는 제목을 선정하실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챕터에 심리적인 부분을 많이 넣습니다.
챕터1인 "나는 너의 누님" 언뜻 보기엔 츤데레 누님이 연하남에게 껄떡대는 제목인 거 같지요? 예, 맞습니다. 그런 요소도 있지만 다른 의도도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너'라는 존재의 '누님'인 것은 '누나'는 아니란 말입니다. 제 소설은 이계진입 판타지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새 육체를 얻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육체의 이름을 쓰기는 거부합니다. 그 육체의 남동생이 부르는 '누나'는 자신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누나'가 아닌 '누님'이란 호칭으로 현재의 자신과 예전의 육체 주인을 구분해 주길 바라는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챕터1 제목이 "나는 너의 누님"인 겁니다.
결코 가볍게 쓴 것이 아닙니다.
챕터2의 제목은 더 가관입니다. "주인공은 먼치킨의 길을 걸어야 한다"입니다. 이 무슨 양판소다운 제목이랍니까. 네, 그런데 양판소 맞습니다. 주인공 먼치킨이고 소다맛스타 나오고 엘프 나오고 드워프 나오고 나올 거 다 나옵니다. 예, 얼핏 보기엔 가벼운 제목이지요? 여기도 심리적인 요소가 담겨 있냐고요? 네, 담겨 있습니다.
제 소설 주인공은 살짝 맛이 갔습니다. 지가 꿈을 꾸거나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누군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닌가 의심합니다. 자신이 만약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 소설은 이계진입물이므로 주인공은 판타지 소설을 잘 꿰고 있습니다.
여기서 챕터2의 제목이 '주인공은' 운운하는 것부터 소설속의 주인공 심리가 들어납니다. 주인공이 아직 이계로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게 꿈은 아닐까, 자신이 미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는 걸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란 말입니다. 먼치킨 운운하는 건 주인공이 이계를 현실로 여기기 보단 꿈이나 게임처럼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확정 지어줍니다.
가벼워 보이는 제목이지만 그런 거 하나하나 생각하며 소제목을 짓고 있습니다. 챕터3인 공주님의 백한 번째 사람은 소설상에서 백한 번째가 무엇인지 해설되어 나오니 독자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뒤로 갈수록 제 제목은 직설적이고 가벼움에서 은유적으로 바뀝니다.
한 검 내지를 수 있도록, 이라든가 사슬에 묶이여 벗어날 수 없도록이라든가. 꽤 많은 것을 생각해 지은 소제목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뒤로 갈수록 소제목을 해설해주길 원하더군요.
좌절스럽습니다, 소제목이 내용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 글은 그렇지 못한 모양입니다. 한 검 내지를 수 있도록은, 비단 주인공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챕터의 준주인공인 녀석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다 마음의 검, 길을 선택해 가는 장면을 그렸습니다만 독자들은 그렇게 안 느껴지나 봅니다.
제가 못 써서 그런 거겠지요, 그래서 좌절하는 겁니다. 으음, 이래저래 생각하다가 이 긴 글을 읽은 당신께 묻습니다.
여러분은 작가시라면 소제목을 어떻게 지으시나요? 직설적으로 밝히는 사람도 있겠고 굉장히 독특한 제목을 쓰는 사람도 있겠고 저처럼 심리적인 면을 빗대어 놓는 사람도 있겠지요. 궁금합니다, 소제목을 짓는 타인의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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