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요.
그 중에서 인물의 개성을 많이 요구합니다.
소설의 절반은 인물의 개성에 좌지우지됩니다.
그럼 인물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누구는 정의롭고,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했다라고 쓴다면,
수긍은 하겠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면 사건으로 개성을 표시해야 독자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게 됩니다.
포도알갱이를 다닥다닥 붙여서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만드는 과정과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이가 그 인물이 될 수 있어
야만 하지요.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여자든, 남자든, 지나가는 행인
이든, 주인공 펀치에 쓰러지는 폭력배든. 거부감없고 변화무쌍하게
변신할 줄 알아야만 소설 속 인물의 개성을 부각시킬 수가 있습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느끼고, 많이 겪어야만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기능입니다. 원래는 직접 경험해야 하지만,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직접 경험을 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
들이 독서를 하고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합니다.
근데 무조건 글을 많이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은 그닥
높지가 않습니다. 글을 쓰는 게 농사를 짓는 것과 같아서, 무작정
심는다고 쑥쑥 자라지 않는 답니다. 오히려 무작정 심게 되면,
토지력이 약해져서, 작물이 전혀 나올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어
버리고 말죠.
글을 쓰기에 앞서 사고와 감성을 살찌워야 합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많이 겪으면서, 이 사람 입장에서 생각
해보고 저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렇게 성숙한 상상의
토지를 만든 후에 펜을 잡는 것이 사실 맞습니다.
다른 쪽의 경험은 전무한 상태에서, 판타지나 무협쪽에 편협하게
독서를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동일한
소설입니다. 십대에게 이고깽 소설은 너무나 즐거운 글인데,
그런 글에 심취해서 글을 쓴다면, 어쩔 수 없이 이고깽밖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콩 심은 데에 콩이 나고, 팥 심은 데에 팥이 나는 것이죠.
유아틱한 주인공, 깽판치는 주인공, 초딩수준의 사고력을 가진
주인공, 그런 주인공보다 더 찌질한 악역들...... 돈 때문에 10대를
타겟으로 그런 식으로 일부러 쓴 작가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직 사고와 감성의 토지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나온 글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시험 공부 할 때, 문제집을 많이 푸는 이유는
그런 풀이 방법에 익숙해지기 위해서고, 고시 공부하면서
판례를 그대로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런 식의 글쓰기를 습득하기
위해서이죠. 편협한 독서 습관은 작문에 그대로 반영되어 버립니다.
열심히 썼는데, 그 수준을 벗어나기가 참 힘들죠.
나 초딩 슈퍼맨, 너 찌질한 유딩 바보.
이 같은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독서를 하고,
미디어를 보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때론 악역이 되어 주인공을 어떻게 괴롭힐까 고민도 해보고,
내가 남자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여자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도 해보고, 해답이 잘
안 떠오르면 그런 분야에 대해 진지하고 고찰한 사회인문서를 탐독
하고......글을 쓰기보다는 배우는 데 더 열중을 해야, 제대로 된
인물들의 개성을 그려나갈 수 있답니다.
어떤 작가들은 400쪽 1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5년 동안 세계 방방
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살기도 하고.....
개성적인 인물을 그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글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작물을 수확할 때가 아니라, 영양분을 충분히 갖춘 땅을 만들어야
할 때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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