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 게 있는데, 풀 플레이트 아머같은 판때기는 중세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시대를 당겨 봤자 르네상스 전후입니다.
그리고 중무장 갑옷의 최전성기는 17세기였고, 이후로 급속하게 갑옷이 쇠퇴합니다. 왜냐 하면 아무리 두꺼운 걸 입어도 총알의 운동에너지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들이 아시는 중세기사의 갑옷은 체인메일이나 스케일아머, 그리고 우리나라 두정갑 같은 브리건딘 이 정도 입니다.
이 갑옷들의 공통점이 뭔가 하면 베는 공격에는 강한데 찌르는 공격에는 약하다는 겁니다.
특히 고리로 이뤄진 체인메일의 경우는 훨신 취약했죠.
고리 사이로 칼날이나 화살촉이 파고들면 제 아무리 리벳으로 고리를 고정시켜놔도 풀립니다. 그리고 뚫린다음에 사람은 어떻게 되냐구요?
글쎄요, 중세 의학 수준을 생각하면 10명에 9명은 죽었을 겁니다.(제대로 꼬매고 때운다 해도 2차 감염 때문에 죽습니다. 오늘의 부상자는 내일의 전사자였고,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군의관은 고통을 줄여주고, 전사자의 미망인을 다독여 주는 존재였을 뿐이었습니다.)
레이피어, 분명 중세에 등장했으면 상당한 위험한 무기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중세에는 '그보다 치명적인 무기'들이 많았으며, 레이피어보다 '훨씬 수월하게 적을 때려잡는 무기'들도 있었습니다.
로마나 그리스에서 야만족들의 무기로 일컬어진 메이스나 프레일만 해도 훈련 기간은 도검류 보다 훨씬 짧습니다. 특히 프레일의 경우는 농민들이 쓰는 도리깨와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농민 징집병들이나 민병들에겐 아주 쓸만한 무기였죠.
한국엔 '편곤'이란 이름으로 임진왜란때 도입되었는데, 이후에 창과 함께 기보병의 주력 무기가 됩니다.(드라마에서 삼지창 들고 설치죠? 쌩구라입니다. 조선 후기 군영들이 보유한 무기만 해도 대다수가 조총이고 삼지창은 겨우 2~3자루 밖에 안 됩니다.)
아무튼 이야기가 샜는데, 레이피어는 중세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무기입니다.(뭐 귀족들 폼나게 차고 다니는 데는 좋겠죠.) 더구나 중세의 제련기술을 생각하면... 이건 뭐 2차대전때 랩터가 등장하길 바래야죠.
사실 레이피어는 그리 주류무기도 아닙니다. 고급 사병들이나 장교, 귀족들이 주로 썼고 일반병들은 커틀러스나 세이버, 그밖에 전통의 민중무기들을 썼습니다.
그리고 화약무기 등장 부터 도검은 보조병기로 전환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선방은 총으로 갈기고 그 다음은 칼들고 설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 총들은 장전속도가 안습이거든요.
그러다가 18세기에 총검 나오고, 19세기에 연발총 나오면서 도검은 쇠퇴합니다. 장교들이 여전히 차고다니긴 했지만, 권위적인 목적 때문이었습니다.(이 시기는 귀족들의 칼도 매우 짧아져 숏소드보다 더 짧은 스몰소드라는 안습한 물건이 나옵니다.)
현대에 자리잡은 펜싱같은 것을 보십시오. 그야말로 스포츠용이나 일신의 호신에 적당하지 전쟁에서 실전용도는 아닙니다.
레이피어로 풀 플레이트 갑옷을 상대해야만 하는 배경의 세계라면 차라리 레이피어 만들 강철기술로 총포를 만들기를 권하겠습니다. 암만 두꺼워 봤자 한 방에 사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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