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글이라는 게 써다보면 애초에 구상한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작가의 말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인물이 튀어나와 글의 흐름을 바꿔 놓는다던가 처음에는 애정이 없었던 인물에게 새로 애착을 갖게 된다던지.
즉 글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작가가 아니라 인물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그 인물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는 작가 본인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 구상한대로 글을 쓰면 될 것이지, 하고 이해를 못했던 저도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무협소설을 처음 시작하면서 대충 큰 줄기는 구상을 끝내둔 상태였고 그에 걸맞는 주요 인물들도 이미 정해져 있었씁니다.
제 소설 첫 부분에 등장하는 젊은 승려는 그야말로 행인1 정도의 역할밖에 가지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역할을 줄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등장 장면이 많지도 않았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젊은 승려가 살인 장면을 목격하고 누명을 쓴 뒤에 천하를 방랑하는 설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씁니다.
어라, 이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이렇게 되면 소설의 상당한 부분을 이 인물에게 할애해야 하잖아. 머리가 아피지겠는데.
당황하여 이 인물의 역할을 애초 구상처럼 축소시켜야 하나 고민하는데, 어렵소? 나도 모르게 이 인물에게 애착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중요 인물이 아니어서 처음에 다소 경박하고 은근히 돈을 밝히는 속물로 그려 뒀는데 [그나마 많은 묘사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의 처지에 은근히 동정심이 생기고[내가 그리 만들어 놓고서는 이건 또 뭔 감정?]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더군요[내가 정해줘야 할 일인데? 그래도 궁금해!]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이 경박하고 평범한 젊은 승려가 제 갈길을 가는 걸 두고 보자 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다른 작가 여러분은 이런 경험을 한 적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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