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망회회 소이불급(天網恢恢疏而不及)...
하늘의 그물은 크고 엉성해서, 그 그물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희소가 출판됩니다. 약 1년전 불같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그 글이 드디어 출판됩니다. 다시 한번 돌이켜 볼때 거기에 대하여 적었던 글들은 최소한 그 땐 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있게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疏而不失)이라 적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하늘이 있는줄 알았기에 문체의 비평이니 작가의 내면고찰이니 하는, 지금보면 가당치도 않은 말을 뱉었습니다. 웃기는 소리죠. 장르문학에 하늘이 어디있다고...
그 논쟁이 있고 나서 사실 저는 연재를 그 이후 연재를 관심깊게 지켜보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의 전개만 하더라도 '그 표현'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줄 만한 사고의 깊이는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가소님의 그 치밀한 표현 하나는 주목할만 했습니다. 표현으로 또 다른 표현을 덮어 가리는 것이 가능했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 정도의 표현은 이미 둔감해질 대로 둔감해진 독자들에겐 그리 별 볼거리도 아니기에, 오히려 희소의 글 자체의 맛은 지금의 글 중에서는 윗선에 있기에 이번의 출판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작가의 표현에는 생각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마교수의 작품이 그렇게 비난받았어도 지금에는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은 성적 표현의 굴레의 타파를 내심 마음먹었던 것이 충분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희소에 나타난 잔인한 표현은 주인공의 옷에 색을 입히는 수식어에 가깝습니다. 표현을 변호해 줄만한 어떠한 주제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불만스러운건 인육먹은 주인공에게 어떤 고뇌도 였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행위가 있었다면 내적이든, 외적이든 고통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런 유치한 인과응보에 집착하는 제가 바보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저는 인간이기에 그 것에 민감합니다. 그 표현이 어떠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더해서 무림에 집착합니다. 살육이 빈번하고 피가 튀기는 무림이기에 더 따스하고, 온정이 살아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희소를 잡고 늘어집니다. 무지막지한 이기심이죠. 하지만 이런걸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전까지 무협중에서 인육을 다룬 무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당한 쓴웃음과 그저 그런 인과율 속에 덮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희소는 다릅니다. 작가는 인육덩어리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냉철함이 두려워서라도 저는 희소를 민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하늘이 없다는 건 밝혀 졌습니다. 동시에 그 그물을 뚫고 올라선 것은 작가 자신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하늘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건 작가 자신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무딜대로 무뎌져 있습니다. 시퍼런 칼로 사람을 썰어내든, 웃으며 기백명을 학살하든 우리는 그런 것에 무관심합니다. 역시 희소에 대해서도 인육보다는 놀라운 표현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희소가 전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작가의 표현은 자유로울지언정 금기에 대한 도전은 치열해야 합니다. 그 치열함이 사라질 때가 저는 두렵습니다. 우리는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쾌락을 느낍니다. 하지만 금기를 극복하지 못한 이탈은 쾌락의 끄트머리에서 껄적지근한 불쾌감을 남길뿐이죠. 더 나아가서는 상처만이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작가 자신의 하늘에 기대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작품에서는 상처를 감싸안아줄 표현을 기대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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