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토요일 한시간 늦게 출근해도 된다는 (원래 주 5일이지만 프로젝트 중에는 휴일이 없음) 한가한 마음에 책을 좀 읽고 이제 자려합니다. 그러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어서 말씀 좀 드리고 자야겠다는 생각에 컴터를 켰네요.
에~ 참고로 전 전혀 문학과는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왔고 전공 및 지금의 삶도 철저하게 이과입니다. 그런 저에게도 보이는 것을 말씀드려 보고 싶을 뿐이지 당연히 강요나 잘난 척은 아닙니다. 전 글 쓰는 재주는 여러분의 발끝에도 못 미쳐요. 단지 보는 눈이 좀 있고 문제점을 찾아내면 빠르게 분석하고 그 상황에 적합한 해결책을 설계하는 쪽으론 좀 능력이 있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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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비평요청을 받아서 글쓰는 것에 입문하신 여러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중견작가들의 글과 달리 몹시 읽기 거북한 점들을 느낍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있다 이다 한다 하다 말한다 말했다 걸었다 웃었다 놀랐다 느꼈다 등등의 동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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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동사입니다.
(자야 하니 짧게 이야기 하려 합니다. 나름 없는 시간을 쪼개는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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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컴터를 켜기 전에도 문피아 습작들을 보다가 글이 많이 어색해 보여서 "에라이 옛날 명작이나 읽자"하고 소장하고 있는 예전 책들을 하나 꺼내서 읽어 봤습니다. 역시나 돈 주고 잘 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잘 읽히고 잼나는 거에요. 그러다 또 제 병이 도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 분석하는거죠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왜지? 왜 자연스럽지? 글을 잘 써서? 필력이 좋아서? 알아!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수려한 문장 자잘한 굴곡과 강력한 임팩트 있는 문장력, 이런것들이 초보와 다르다는 건 이미 첨 부터 알았잖아 다른 뭔가가 있어 뭐지? 뭣 때문에 이렇게 잘 읽히지........?"
그렇게 한 십여분간 고민한 끝에 답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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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동사 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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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를 해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영어로 말 하거나 문장을 쓸 때 [같은 동사를 써주지 않는다] 라는 것. 같은 듣다라는 동사도 리쓴과 히러를 번갈아 쓴다던지 달린다는 표현도 런과 무브를 섞어 써 준다던지.......갑자기 왠 영어냐라고 하시겠지만 잼있는 것이 중견작가의 동사를 씀에서는 저런 것들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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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에서 몇가지 표현을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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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잔에도 ㅇㅇ는 웃기만 한다.
둘의 얼굴에 다시금 웃음기가 도졌다.
웃음은 다시 전염처럼 번진다.
캬~
아름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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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이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대화내용에 웃는 내용을 담는데 핀잔에 대한 웃음을 말하고는
"웃음기가 도졌다"는 표현...좋지 않나요? 도졌다는 표현 장난기가 도졌다 웃음기가 도졌다. 뭔가 치기어린 생각을 하고 있거나 젊은층의 감성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아요. 아마 웃음짓는 사람이 중년이상이면 미소가 어렸다 정도로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전염처럼 번진다" 이 부분도 '차례차례 다들 웃었다 또는 다들 웃었다' 라고 표현할 것을 번진다는 표현으로 물감이 번지듯이 차례로 또는 웃음의 종류가 큰 웃음,작음 웃음으로 정적인 것이 아닌 무표정한 얼굴에서 입꼬리가 살살 말아져 올라가는 듯한 동적인 웃음을 적합한 동사하나를 써 줌으로서 살려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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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인기 작가지 하는 생가이 들더군요,
이런 표현들이 제가 지적한 한 부분이 아닌 책 전반에 걸쳐서 깔려있을테니 제가 불편하게 읽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게 당연한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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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초보습작들을 읽으면 말했다 앉았다 뛰었다 느꼈다 떠올랐다 등등 작은 행동이나 생각들을 말로 설명하는게 너무나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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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것들이 많다보면 문장이 늘어지고 서술이 길어지고 그렇다고 저런걸 다 빼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이 어색해 지니 뭘 어쩌라고 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었죠. 그런데 저것의 답도 중견작가의 장르소설 안에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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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웃음에 대한 표현이 있는 전후 페이지에서 몇가지 표현을 또 따 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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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의 얼굴은 ㅇㅇ에게 보기만 해도 즐거움을 선사했다.
(낄낄거리며 웃다) ㅇㅇ은 입맛을 다졌다
"ㅇㅇ야 ㅇㅇ야"
사적인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대사"
ㅇㅇ이 눈을 빛낸다
"대사"
인기척이 들렸다
"ㅇㅇㅇ,누가 누가 뵙겠다고 왔습니다"
한숨을 내쉬고는 탁자를 두번 두드렸다
"들어오라고 하게" 드르륵(문여는 소리)
셋에게 자리를 권했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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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자 보시면서 느끼셨나요? [말했다] 요 표현이 적어요 꼭 써야 할 곳에선 물론 써 주지만 입맛을 다시는 행동,눈빛에 대한 묘사 등을 그려주고는 바로 대사로 넘어가요. 이미 독자는 그 묘사를 한 대상이나 앞뒤 문맥상 누가 대사를 했는지 말 안 해줘도 알거든요. 그걸 작가가 "알까? 모르나?" 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그 대답으로 판단을 내려서 글을 쓰는거죠.
즉 독자와 작가의 소통이 작가 안에서 이루어 지기에 저렇게 쓸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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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표현도 봐 봅시다
[인기척을 냈다]고 하지 인기척을 냈다 아마도 문 앞을 지키는 3대 제자가 누군가가 찾아왔음을 알리려 온 모양이다. 역시나 문 밖에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딴 식으로 길게 서술 안 합니다 (제 지론상 저렇게 길게 설명했으면 그 3대 제자는 주인공이던지 암살자던지 사건이 터지고 뭔가 애증의 대상이 되는 요소이어야 저렇게 비중을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탁자를 두번 두드렸다.] 여기서도 두드린 표현으로 뭔가 탐탁지 않은 심리를 묘사했고 말했다는 표현없이 바로 대사로 들어 갑니다. 이래도 독자는 모든 것을 그리며 책을 볼 수 있죠. 이걸 불편한 심기를 보이려는 듯 찌프린 표정으로 책상을 두어번 두둘기며 밖의 3대 제자에게 말했다 "들어오라고 하게" 이런식으로 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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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김태원님의 말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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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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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비평 요청에 따라 비평해 드렸던 글 중에 [개연성 등의 다른 요소는 떨어지지만 특이하게도 귀하의 글은 읽기가 참 편합니다] 라고 말씀을 드린적이 있었죠. 그분의 글은 저런식으로 사족이 없었어요. 같은 맥락이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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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동사에 대해서 말 하겠다는 처음의 의도와 달리 !!!~~~~~~~~~~~~~~~~~~~~~~~~~~말이 또 삼천포로 빠져가는군요, 뭐 두서 없었지만 제가 말 하고자 하는 바가 어느 정도는 전달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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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야기는 쉽게 말 하면 "공부 좀 하고 글써라, 공부할 방법이 없으면 필력있다고 유명한 작가들 책 좀 읽고, 읽어도 그냥 읽지 말고 글로서 소주제로서 문단으로서 문장으로서 단어로서 어떤 점에서 좋고 내가 빼먹을 수 있는 요소를 재주것 차용해서 잘 좀 써봐라" 입니다. 돌직구라 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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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것은 학문 처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특히 저의 이런 지적질이 자유로운 작가의 영혼을 핍박하고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하라는 바 대로 한다면 자유가 형식에 얽매일 수 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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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심하면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을 쓰는 짜집기 작가란 소릴 들을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자기만의 색깔을 살리는 건 살리는 거고 배울점이 있을 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같은 길을 가고 있고 먼저 성공을 한 선구자와 같은 중견작가의 필력을 배우는 것도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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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란 것에만 몇가지 끄적거린다는 것이 또 말이 길어졌네요. 제가 좀 흥분도 잘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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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또 50분 가량의 시간을 할애해서 몇자 긁적이고 갑니다. 원래 서재에 차분하게 하나씩 주제를 가지고 써 볼까 했는데. 성격상 그런걸 모아 놓거나 그런걸로 서재홍보하고 방문자 수 보고 웃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거 하느니 직장에 전념한다는 생각에 손이 잘 안 가네요.
그럼 여기엔 왜 쓰는데?
하고 물으신다면 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제가 좀 오지랖이 넓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내가 뭔가를 하면 저 사람이 편해질텐데, 이야 내가 도와서 저 사람이 웃는다 고맙단 말을 못 들어도 니가 웃으면 나도 행복하다. "하는 그런 성격입니다.
시험기간에 남들 시험 돕다가 자기 시험 망치고는 성적 올라서 기뻐하는 친구보고 즐거워 하고 내 성적표 보고 슬퍼하는 부모님 보고 다시 공부하는,,,,,,, 뭐 그런 넘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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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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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 끝도 없을거 같으니 전 이만 자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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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아침 출근길에 확인 할 겁니다
딴 건 모르겠고 욕만 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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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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