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
어느날 본 테레비에서는 사람이 아닌, 울퉁불퉁하고 각진 무언가가 나와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싸우고 있는 저들의 이름도 정체도 몰랐지만 딱 하나 기억이 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경찰차가 멋있는 음악과 함께 이렇게 저렇게 마구마구 꺾이고 빛나고 합체하더니 울퉁불퉁하고 각진 무언가가 되는 모습을요.
그 날. ‘멋있다!’ 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경찰차가 뭔가로 바뀌는 만화를 봤다고 하니, 친구들이 제가 보았던 것.
그 울퉁불퉁하고 각진 것의 이름은 로보트 라며 만화에서 나오던 것을 따라하며 놀았던 기억도 납니다.
움직이는 로보트 장난감을 사달라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고, 정 안되면 로보트가 그려진 공책이나 필통이라도 갖고 다녔습니다.
반 친구들 모두가 로보트를 좋아했고, 쉬는 시간에 로보트 놀이를 했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 로보트 만화를 같이 보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곤 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참으로 ‘멋있는 세상’ 이었던 것 같습니다.
IMF 라는게 터지기 전 까지는요..
로보트 만화 속 악당들은, 주인공 로보트들에게 맨날 싸우면 지기 바빴지만,
우리 가족은 그 IMF 라는 악당에게 맨날 지기만 했습니다.
현관 앞에 아무리 로보트를 많이 세워놓아도 압류 딱지를 붙이러 온 사람을 막을수는 없더군요.
그 날 이후 로보트는 제게 더 이상 멋있는 친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늘,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고 10분 정도 짬이 있어 이런 저런 글을 읽다가 이 소설을 발견했습니다.
읽다가 보니 왜 로보트가 강호에 있는지, 왜 무공을 로보트가 쓰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차는 뭐가 있어서 로보트로 변신했던가요.
단지 그 10분동안, 전에 경찰차 로보트 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멋있다 라는 감정을 정말 오랫만에 받았다는게, 옛날 그 멋있었던 시절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었다는게 참 감사했습니다.
아침 회의가 있어 얼른 들어가야 한다는게 아쉬웠고. 오전 내내 꾹 참다가, 점심에 편의점에 가서 삼각 김밥 하나 사 놓고 이 소설을 보았습니다.
삼각김밥은 전혀 손 대지 않았지만, 정말이지 너무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제 당분간 이 소설이 점심밥 친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경찰차 로보트 만화를 보면서 저녁밥을 먹었던 그 때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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