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운 혹은 정구 작가 같은 좀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캐릭터들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감성적으로는 로드워리어 작가와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특유의 무미건조한 정서 때문인지 읽다보면 많이 지치게 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야말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나왔네요.
사건이 시계열상으로 배치되어있지 않고 특정한 주제나 소재를 기준으로 모아져있는 옴니버스식 소설입니다. 시간 순서가 아닌 것만으로 이미 못읽겠다는 분들도 계시던데, 소설보다는 마치 수필을 읽는 듯한 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해줘서 저는 좋더군요. 주인공과 동화하지 않고 객체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 주인공의 주변에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비현실 속을 현실적으로 살고있는 모습이 마치 블라인드 썰을 읽고있는 것 같이, 주작 같기도 안같기도 한 미묘한 리얼함이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블랙코미디에 가깝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우스움이 증폭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점도 그렇네요.
아무래도 주인공의 통쾌한 행보를 중심으로 줄줄이 사건이 일어나는 소설들과는 좀 다른 종류의 쾌감을 줍니다. 로드워리어님이 잘 그려내시는 너무 현실적이라 더 부담스러운 캐릭터들을, 조금 먼 곳에서 조망하다보니 덜 부담스러워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스카이림이 아니고 심즈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는 이런 부분이 취향에 딱 맞았기에 아포칼립스의 수필 같은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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