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유령이 대체역사물계를 떠돌고 있다. 회귀, 빙의, 환생이라는 유령이.
대체역사물에 라면에 스프처럼 들어가는 소재가 바로 타임슬립, 시간여행입니다. 미래의 지식을 가진 인물이 과거로 돌아가서 역사를 바꾼다는 건, 너무나 흔해빠졌죠. 여기에 근래 웹 소설계의 주류는 회귀, 빙의, 환생, 곧 회빙환이니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유령들이 대체역사물계에 떠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쓰지 않는 대체역사물도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추천하는 이 소설, 『수양대군, 코끼리를 만나다!』도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이 없는데도 원래 역사의 흐름과 틀어지게 만드는 변곡점은 대체 무엇인가?
이 소설에서 제시한 역사의 변곡점은 진양대군 이유와 코끼리의 만남입니다. 역사상에서는 훗날 세조가 되는 왕자 이유가 북경에서 마침 황제가 키우던 코끼리를 만나고, 그 크고 아름다운 자태에 뻑 가서 성격 순한 수컷 코끼리 한 마리를 분양받아 조선에 돌아간다는 거죠.
이거 가지고 역사가 바뀌기는 하는 건지 의문이 들 만한 엉뚱한 변수입니다만, 그런 의문이 무색하게도 차근차근 변화의 주춧돌을 쌓아 올리는 작가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사실 코끼리는 오늘날까지 가축화되지 않은 동물입니다. 그러나 극중에서 진양대군이 분양받은 수컷 코끼리는 모종의 사유로 가축화에 용이한 개체였습니다. 이 한 가지 소설적 장치 덕에 코끼리라는 강력한 축력(畜力)을 얻은 조선 사회는 기기묘묘하게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참 재미있단 말이죠.
아니 이게 진짜 재미있단 말입니다.
대체역사물 볼 때마다 갈증을 느끼는 게, 신 문물과 제도로 변화하는 사회상…… 그러니까 미시사를 볼 수가 없다는 점인데, 그런 갈증을 완벽하게 채워줍니다. 정치나 권력 다툼도 나오는데 그게 오히려 곁가지 같을 만큼 듬뿍 말이죠.
요컨대, 기존의 대체역사물이 식상해졌다면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을 만큼 이 소설은 유니크하단 얘기예요.
추천합니다. 재미있는 소설이에요. 사실 위에서 말한 것 외에도 독특한 인물 묘사 등 매력적인 점은 더 있습니다만, 그건 보고 난 뒤에 즐기시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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