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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
09.11.10 20:45
조회
1,401

작가명 : 마이조 오타로

작품명 : 연기, 흙, 혹은 먹이

출판사 : 학산문화사 파우스트 노벨

발행일 : 2006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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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의 구명외과의 나츠카와 시로는 어느 날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고향 후쿠이로 돌아온 시로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연쇄 주부 구타 생매장'이라는 충격적인 범행과 그 사건으로 의식불명이 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범인을 잡기로 결심한 시로는 경찰이 된 어릴 적 친구들을 끌어들이며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교보문고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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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예고했던대로 마이조 오타로의 데뷔작 '연기, 흙 혹은 먹이'입니다. 대학교 도서관에 마이조 오타로의 현재 정발된 모든 작품을 신청했고, 최근에 도착했기에 아직 정리중이던 책을 대여해서 읽었지요.

니시오 이신은 헛소리꾼 시리즈를 2권까지 읽었고, 사토 유야는 카가미가 연작 세권을 읽었고, 타키모토 타츠히코는 NHK에 어서오세요와 네거티브 해피 체인 소 에지를 읽었습니다. 타키모토의 경우는 한국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책은 다 읽었군요. 나스 키노코의 경우야 공의 경계를 비롯, 어지간한 건 다 접했고...

하여간 '파우스트 계열'의 작가 중, 적어도 '한국에 들어온 작가' 중에서는 이 마이조 오타로를 읽은걸로 대부분 조금이나마 읽어 본 게 됩니다.

1. 메피스토 상과 마이조 오타로

이 '연기, 흙, 혹은 먹이'는 제 19회 메피스토상 수상작입니다. 메피스토상에 대해서는 이전 '플리커 스타일' 감상문에서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잡지 '메피스토'에서 수여하는 이 신인상은, 연중무휴로 작품을 받으며, 출판사로 직접 원고를 가져와 즉석해서 심사받고 그 자리에서 수상 여부를 결정한다는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요.

교고쿠 나츠히코가 '우부메의 여름'의 원고를 출판사에 직접 들고가 데뷔하여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것이 계기라는 말도 있고, 메피스토상 1회 수상자인 "모든것이 F가 된다"의 작가 모리 히로시를 좀 더 화제성 있게 데뷔시키기 위한 것이란 말도 있습니다만, 뭐 그건 독자 시점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겠고.

하여간 이 메피스토 상은 그 수상 방식의 특이함과 편집부의 성향 자체의 특이함이 겹쳐 상당히 특이한 작가를 많이 배출하곤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라이트노벨 성향이 강한 니시오 이신, 오타쿠적 문학의 사토 유야를 비롯, '이과 추리'를 선보인 모리 히로시와 '코스믹'이라는 희대의 괴작을 내놓은 세이료인 류스이 등등...

이 메피스토상 중 일부, 오타쿠적 성향이 강한 작가들은 잡지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다른 계파를 생성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인 '마이조 오타로'의 경우, 상과 작풍의 특이함에 겹쳐 인물 자체도 상당히 기묘합니다.

소설의 글은 물론 삽화까지 직접 그리며(저 표지도 직접 그린 겁니다), 무엇보다 "모든 신상이 비밀에 쌓여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지요.

'아수라 걸'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했을때도, 메피스토상을 수상했을때도, "글로써만 독자에게 다가가고 싶다"라는 이유로 수상식장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으며, 평소에도 모든 연락은 편집자와의 이메일로만 이루어지며, 담당 편집자조차 그의 신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모른다고 합니다. 완벽한 '가면 작가'인 셈이지요.

2. 작품 개요

주인공 나츠카와 시로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센디에이고의 한 병원 ER(응급의료실)의 에이스 외과의입니다.

어느날 어머니가 '연쇄 주부 구타사건'에 휘말려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일본에 귀국하게 되고, 자신의 몸 속에 잠재한 막대한 폭력성이 어머니의 복수를 결의하게 합니다.

고위 경찰, 현직 검사, 평범한 공무원 등 친구들의 도움(일부는 협박으로 얻어낸 협력)과,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수리적 감각으로 범인이 남긴 각종 메세지를 발견하며 범인에게 다가가는 시로.

그리고 귀국한 시로를 기다리던 가족들. 폭력적이던 아버지 마루오와, 아버지를 따라 정치가의 길을 걷고 있는 장남 이치로, 추리 소설가 삼남 사부로. '가족'을 버리고 미국땅으로 뛰쳐나갔던 사남 시로는 이들과 충돌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옛날에 아버지와 사사껀껀 대립하다가 마침내 언제나 갖히던 '삼각창고'에서 탈출하여 사라져버린 차남 '지로'가 이 사건에 관여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형과 아버지의 의견을 듣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편집증적이고 혼란스러운 범인의 메세지, 짙어가는 의혹, 계속해서 시로를 괴롭히는 불면증과 신경불안, 아버지와 지로의 폭력과 대립으로 물들었던 복잡한 가족사,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와 다양한 이야기들...

모든것이 신경질적일 정도로 급박하게 흘러가고, 마침내 닥쳐온 파국에서 시로는 '가족'에 얽힌 자신의 복잡한 심경과 자신의 일가에 얽힌 비밀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결단을 내립니다.

3. 감상

정말로 재밌는 책을 읽은 뒤에는 기묘한 고양감이 끊임없이 가슴을 두드리곤 합니다. 묘하게 행동 하나하나가 커지고, 눈이 불안하게 떨리며 숨이 짧아져 머리속에 휘몰아치는 그 감회를 어떻게든 크게 외치고 싶은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지요.

지금 제 상태가 그렇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2시간이 지났습니다만, 감상글을 쓰는 제 손은 지금 마구 떨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합니다. 첫 장부터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말과 말과 말의 문장의 폭풍에 휩쓸려, 숨 쉬는 것 조차 잊어버린 그 상태에서 작가의 손에 억지로 멱살을 잡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속도감 넘치는 '글' 자체에 압도당합니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밀도높은 문장을 구사하며, 결코 망설이지 않고 행동과 서술로 보여주며, 독자에게 결코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첫 몇 페이지에서 주인공의 '특이함'을 파악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범인의 특이함'으로 넘어갑니다. 복잡한 함수로 그려진 범행현장의 배치, 의미를 알수 없는, 심지어 해석 한 후에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각종 암호,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징적 단서, 사건 자체의 편집증적, 정신병적인 성향. 거기에서 벗어나면 이번에는 '나츠카와 가'의 특이함으로 넘어갑니다. 사라진 독일인 증조부. 자택의 '삼각창고'에서 목을 매 자살한 할아버지. 온 몸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폭력적이며 권위적인 정치가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애정을 갈구하였으나 '질책'만을 받고, 거기에 의지하다 마침내 '폭력'조차 받아들이며 비뚤어진 길로 들어서게 된 지로. 아버지와 지로의 대립의 과정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했던 형제의 노력, 할머니의 노력, 어머니의 행위와 지로가 사라지던 날의 이야기, 그리고 지로의 편이고 싶었던 주인공의 그 당시 심정과, 그 가족이 어떻게 하여 자신을 만들었는지까지가 나열됩니다.

사건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느닷없는 폭력으로 들이닥치기도 합니다. 사부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명탐정'에게 수사를 의뢰하고, 시로는 추적 끝에 협력하던 친구를 범인으로 의심하나, 그 친구가 사고로 죽어버리고 자신또한 큰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단서와 확신적인 추측 속에 범인을 몰아붙이고...

모든 것의 비밀이 밝혀지던 순간, 그 비밀을 넘은 '현실'에서 그 자신에게 주어진 구원과, 이때까지 상실되었던 '가족'을 진정한 의미에서 회복하고 인정하는 그 필사적인 결말까지.

어설픈 억지 눈물짜기가 아닌, 숨가쁘게 달려온 급박함을 그대로 유지한 체 고밀도의 심리 묘사와 상황 묘사를 통해 그야말로 강렬하게(아까부터 많이 쓰는 표현입니다만 딱히 다른 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네요) 독자에게 내리 꽂아줍니다.

단순한 자극적, 폭력적, 정신병적인 '자극'의 단계를 넘어, 그 회복에 이르는 '감동'의 영역까지 확실하고 능숙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 이 책은 환장하도록 재밌습니다. 진짜로요.

4. 마치며

메피스토 수상작가 중에서는 니시오 이신이나 사토 유야 정도만 읽은 상태라, 솔직히 말해 "메피스토상은 병신(결코 부정적이 아닌, 여러가지 의미로)들한테 상을 준다"라는 인상이었습니다만, 이 책을 읽고 "그냥 무진장 잘 쓰는 사람한테도 주는구나"라는 뭔가 신선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몇페이지동안 줄 바꾸기가 단 한번도 없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빽빽한 글 속에 정신없이 몰아치는 문장속을 해엄치며 참으로 멋진 독서 경험을 했습니다. 이 감상글을 올리는 걸로 이 떨림을 해소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Comment ' 1

  • 작성자
    무영신마괴
    작성일
    09.11.10 21:09
    No. 1

    항상 감상평 잘보고 있습니다. 책 살때 도움많이 받아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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