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전동조
작품명 : 묵향
출판사 : 명상->스카이미디어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은 그분들을 사랑하실 겁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세상 누구보다 존경받는 위인도 아니고, 가장 외모가 뛰어난 사람도 아니며, 그 누구보다도 돈을 많이 가진 것도, 제일 힘이 센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여러분 각자의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이자, 훌륭한 어머니이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연인이며,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아주는 친구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우리 가족과 친구를 사랑합니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있나요?
분명 잘 만든 작품도 아니고, 어딘가 엉성하기까지 한데 뭔가 나의 빈 구석에 제대로 스트라이크를 꽂아준 작품.
남들은 다 별로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나한테는 최고였던 작품.
제게는 '묵향'이 그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쓴 작품도 아니고,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모든 단점을 포함해 '묵향'이란 소설을 사랑하며, 제게는 그 어떤 것보다 최고인 소설입니다.
묵향은 장르소설의 한 분류가 돼버린 일명 '퓨전'의 붐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왜 묵향은 그렇게 인기를 많이 끌었을까요?
사실 많은 분이 차원이동의 선구자적 작품으로 많이 이야기를 하시지만, 단지 그것만이 묵향의 장점 전부는 아닙니다.
묵향은,
매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묵향은 제목에서 나타나듯 묵향으로 시작해 묵향으로 끝나는 작품입니다.
사실 묵향을 접한, 또는 접했던 많은 독자가 묵향의 캐릭터성에 반했다고 생각합니다.
묵향은
수십 년의 고된 수련 끝에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며, 무림에서는 그 적수가 거의 없는 최강자입니다.
그는 고상한 척하지 않으며, 스스로 비열하다고 말하는 자유분방한 인물입니다.
그는 적이면 여자건 남자건 가리지 않으며, 자신의 앞을 방해하는 인물은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냉정함을 지녔습니다.
그러면서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해지고 강자에게는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정에 상당히 약한, 외강내유적 성격을 지녔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수하의 이름인 국화를 무척 좋아하며, 사부를 무척 그리워하고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다른 사람임을 알고 있음에도) 눈물을 흘립니다.
게다가 이성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재물과 권력 또한 돌보듯 합니다.
그는 여자가 되기도 하고, 수십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합니다.
그 외 많은 성향이 혼합된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가 '묵향'입니다.
1권에서부터 24권까지 근 수십 년을 거치면서,
아르티어스와의 만남 덕분에 장난기가 심해졌고,
나이아드때문에 가학적 취미가 생겼으며,
수많은 책략에 시달리다 보니 머리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성향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매력적입니다.
묵향은 그 강한 캐릭터성을 앞세운 일종의 원맨쇼소설입니다.
약간 캐릭터소설 같은 경향도 있는데, 보통 몇 명이 등장하는 캐릭터소설과 달리 혼자서도 충분할 만큼 묵향의 매력은 강력합니다.
물론 스토리의 큰 줄기가 있지만, 묵향의 재미는 묵향에 의해 결정 납니다.
묵향은 초반부에 묵향의 캐릭터성을 만드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인물로 스토리를 진행했습니다. 묵향의 특징을 만들어지고 성격이 형성되는 부분은 다른 소설의 무공수련부분과 같은 재미를 줍니다. 주인공이 하나하나 완성되어가는 장면이죠.
이후의 전개는 큰 줄기는 따라가면서 묵향이란 인물을 살리는 사건 장치를 많이 사용합니다. 사실 1부의 내용은 단지 묵향을 부각시키는 데 사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다른 묵향의 캐릭터는, 보통의 사람들과 많은 마찰을 일으키며 그것에서 독자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부와 외전 초반부, 그리고 3부의 몇몇 권에서 많이 보이는 이러한 내용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묵향의 또 다른 강점입니다.
묵향에서는 중요사건 외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습니다. 묵향을 부각시키는데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건너뛰고 다음 장면 상황으로 넘어갔습니다. 거기에 자잘한 것을 모조리 생략하는 간결한 문체까지 합쳐져 소설의 속도를 빠르게 했습니다.
묵향의 또 하나의 강점. 그것은 속도감이었습니다.
보통 소설이라면 샛길로 빠질만한 자잘한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바로 중요장면으로 넘어갑니다. 그 중요장면에서 묵향은 그 매력을 한껏 발산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묵향은 장면 장면이 큰 만족을 주었고 각 권이 많은 사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액션묘사 등 몇 가지 좋은 점이 많지만, 묵향의 가장 큰 강점은, 묵향의 강한 캐릭터성과 그것을 부각시키는 사건들, 그리고 빠른 속도감의 세 가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정) 그리고 미처 쓰지 못했던 두가지 중요한 장점입니다.
묵향의 장점, 정말 중요한건데 미처 잊고 언급하지 못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측불허의 스토리 입니다.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가 거의 없죠. 이야기는 항상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곳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흥미진진하죠.
그리고 또하나, 바로 사실성입니다.
그것은 진짜로 일어날법한, 말그대로 소설의 허구를 현실감있게 풀어헤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묵향은 그것을 갖추었습니다.
이 중요한 두가지를 빠뜨리는 실수를 하여 감상문의 질이 많이 낮아졌던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하지만, 후반부에, 특히 묵향이 납치되었을 때부터 몇 권이 위의 강점을 배신하여 참혹한 결과를 만들었고, 워스트5에 꼽히며, 질질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실수만으로 작품 전체적인 질을 떨어뜨리게 되었습니다.
외전 11~12권에서 묵향은 납치되고, 권당 수십 페이지 정도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많은 묵향의 독자분들이 이곳에서 실망하였고 수많은 비평을 받았습니다.
묵향의 재미는 묵향이 나오는 데 있는데 전쟁 얘기만 나오니 많은 독자는 지쳤고 결국 손을 떼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권 자체가 묵향인지 크라레스전기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묵향은 납치되었고, 크라레스는 거의 멸망위기까지 몰렸으며, 나오는 것은 외교전의 너무 길어서 읽기도 귀찮은 대사들과 우왕좌왕하며 당황하는 주변인물들뿐이었습니다.
당연히 묵향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묵향을 부각시킬 수도 없었으며, 긴 대사가 생략 없이 열거되었기 때문에 속도감은 없었습니다.
독자들이 보고 싶은 것은 묵향과 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 그 상황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 등이었는데, 관심도 별로 없는 뚱뚱이와 홀쭉이의 대사를 읽고 있으려니 잠밖에 오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23권도 똑같이 그러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인공을 악진 대장군으로 착각할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르티어스 때문에 묵향을 그만 읽은 분들도 꽤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아르티어스는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묵향과의 소소한 첫 만남에서 보여준 소박하지만 순수한 애정, 다른 인간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압도적인 강함이, 묵향이 납치되었을 때 보여준 절박함, 그리고 아르티엔이 죽었을 때 흘리는 눈물 등 알고 보면 이분도 꽤나 순정파인 분이죠.
하지만, 3부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막무가내이고 인간을 개미만도 못하게 보며 묵향의 주변인물을 괴롭히는 골칫덩이가 되었습니다. 이건 2부에서도 보여준 특징인데, 그의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건을 만들어 일을 꼬이게 하고, 따라서 독자의 분노를 한몸에 받습니다. 그것은 도라에몽에서 어떤 도움이 되는 도구를 꺼내도 제대로 쓰지 못해서 이야기가 펼쳐지게 하는 진구에게서 볼 수 있는 짜증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건 그가 플롯 제네레이터 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가로서는 이러한 사고뭉치를 만드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손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분노는 어느 한 인물에게 집중됩니다.
결과적으로 사고뭉치역의 아르티어스가 작품을 그만 보게 하는 계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이러한 성향은 별로라서, 아르티어스는 좋아하지만, 그가 하는 일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인간적인(드래곤이지만)내면을 묘사하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즉, 묵향과의 첫 만남 같은 아르티어스의 애정 등 캐릭터적 매력을 발산하는 부분이 나온다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거기에 실수라고 할까, 15권에서의 내용전개는 엉성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읽었고 좋았지만, 문제라면 문제랄까. 복선의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반전이 엉성하던지.
13권부터 14권까지 내용에서 마왕을 물리치는 영웅은 묵향인 것처럼 복선을 깔고서, 결국엔 뒤로 밀려나 버린 것 말이죠.
사실성 면에서는 오히려 이쪽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15권 내 묘사에서 보면 묵향이 마왕을 퇴치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처럼 보일 정도죠. 그렇기에 최강의 드래곤이 마무리를 지은 것은 그런대로 복선과도 맞아떨어지고 현실성이랄까 사실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독자의 기대를 배반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앞의 두권에서부터 독자들은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죠. 최소한 묵향이 끝장은 못 낼지언정, 마왕과 시원하게 한판 붙고 나가떨어졌다면 어땠을까요? 차라리 이 부분에서도 묵향의 캐릭터성을 살리는 내용 전개를 했다면, 결과가 어찌 되었든 독자들은 만족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정적 역할은커녕 근위기사단 엑스트라1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물론 전형적인 결말보다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많은 독자들이 여기에서 실망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지금에 이르게 되었지만, 저는 그 문제점들마저 좋아합니다.
납치된 묵향을 두고 펼쳐지는 외교전에서 저 또한 크라레스의 인물들과 같이 위기감을 느꼈으며, 납치된 묵향이 어떻게 될지 긴장감에 조마조마하며 그 긴장감을 즐겼습니다. 크라레스가 박살 날 때마다 저도 안타까움을 느꼈고, 등장하는 전략과 전술에 감탄사를 흘렸습니다.
최근 간인 24권에서는 비교적 초반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묵향이 아주 많이 나오고, 그러한 매력을 살리는 장면들이 많았으며, 속도감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자간격이나 빈 페이지 등은 별도로 그러려니 합니다.
분명 묵향은
철학과 주제의식이 뛰어나지도 않고, 섬세한 심리묘사도, 가슴 저린 아름다운 로맨스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끔가다 비문도 보이고, 다른 작품과 소재가 흡사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며, 질질 끄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기도 하고, 워스트 5에 모 작품과 쌍벽을 이루며, 권당 글자 수는 줄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저는 묵향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심지어 저는 묵향이 3부 이후로 4부, 5부... 30권을 넘어 40권, 아니 끝도 없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출판주기가 1년을 넘어 1년 반이 넘으면, 다시 한번 정독할 것입니다.
저는 묵향을 읽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이 힘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은 제각각이고, 세상의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에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고 아끼는 작품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쯤 나는 왜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돌아본다면, 어쩌면 유익한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제가 이 감상문을 쓰면서 가장 바라는것은, 작가이신 전동조님께서 보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전동조님이 보셔서 이렇게나 당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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