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은빛어비스(잃어버린이름-은빛어비스-세개의 권좌)
작가 : 카이첼
출판사 : 북큐브
편의상 반말로 감상을 전개함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상임을 알려드립니다.
대학교 1학년 후반쯤으로 기억한다. 문피아에서 연재되던 고검환정록이 북큐브로 넘어가서 유료연재를 시작했고 유료연재의 퀄리티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더 읽을 소설을 찾던 중 은빛어비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요즘이나 지금이나 어떤사이트든 간에 한권정도 분량의 소설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아포칼립스물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황량한 사막의 마을에서 시작되는 은빛어비스의 도입부부터 빠져들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위버가 은빛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은빛어비스란 작품에 깊게 빠져들었다.
은빛어비스를 읽고 같이 연결되는 작품인 ‘잃어버린 이름’도 읽었으며 은빛어비스에서
이어지는 ‘세개의 권좌’ 또한 읽게되었다. 몇년이란 시간동안 은빛시리즈와 함께했고
마침내 결말을 맞았을때는 아쉬움이 강하게 밀려들어왔다.
잃어버린이름에서, 은빛어비스에서, 세개의 권좌에서 위버는 꾸준히 성장해 나간다.
재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적으로 설정한 대공이란 존재는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에 한없이 자신의 한계를 부수는 성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열세인 위버의 성장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바보같고 몇권만에 성장한 주인공의 앞에서 허무하게 스러지는 다른 적들과는 달랐다. 그런점에서 은빛시리즈가 호흡을 엄청 길게 가져갈 수 있을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악마의 시대로부터 인간의 시대로의 전환을 이루어 낸다.
작가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3이란 숫자는 은빛어비스의 세계관과 많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시리즈 또한 3부작이고 삼좌, 뒤파루스 칼기아 에켈 의 3대공. 물질계의 3문명 그리고 위버의 3명의 xx들까지... 전체적으론 델시테리아의 영향아래 있던 용의 시대(과거) , 뒤파루스의 영향아래 있던 악마의 시대(현재) 마지막으로 악마의 시대를 끝내고 인간의 시대를 열게된 위버의 이야기까지. 은빛시리즈는 악마와 인간의 시대 사이의 과도기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힘을 잃은 위버, 전제군주제에서 의회에 손에 정치를 맡김으로서 절대권력을 포기한 노아. 유일한 대공으로서의 직위를 포기하고 위버의 부인이 된 에위나, 악마의 힘을 빌었지만 인간으로서 대공과의 전투까지 참여한 투리에. 이러한 주요 인물들을 보며 악마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욕망의 아버지인 인간들은 이제 다시한번 옛 테크니아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종족출산율이 형편없는 용족을 누르고, 구심점을 잃어버린 악마를 누르고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오만함또한 답습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건 먼 훗날의 일이 아닐까
은빛어비스 시리즈는 분명 단점도 있는 소설이다. 내가 싫어하는 일본틱한 클리세도 있으며 잃어버린 이름과 은빛어비스 세개의 권좌의 파워인플레는 명확하며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 같은 조연들조차 존재한다. 부에나, 일검일도.. 그리고 모용유라는 존재감과 필요성에 비해 집중도가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 잊혀진 인물들도 많다. 아그니&에반이 그러하고 은빛어비스에서 주연급 존재감을 뿜던 모리아가 그렇다. 위버는 마지막엔 행복해졌다. 그때 모리아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주는게 좋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를 상쇄하는건 다른 조연들의 존재감이다. 처음 마을의 에린부터 시작해 어비스의 수많은 조연들은 소설을 아름답게 했다. 특히 돼지치기 테이던의 이야기는 은빛시리즈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챕터중의 하나였다.
확실한건 은빛시리즈는 판타지계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작가 또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고, 은빛시리즈 같은 이어지는 작품을 쓰는 것은 더 많은 열정과 섬세함을 요구한다. 카이첼 작가는 유료연재 태동기에 흐름을 타고 자신의 생각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한국 판타지에 이정도 길이의 장편은 몇 나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독자들이 불만이 많던 철학의 깊이를 줄였다. 은빛시리즈를 읽으면서 카이첼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클라우스,희망찬 두 작품또한 읽어보았는데 크게 와닿지 않았다. 특히 희망찬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은빛어비스는 다르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인 ‘승리하는 것은 욕망이다’가 작품 전체를 관통할 뿐이다. 기존 소설에 불만을 가지셨던 분들이라도 제대로 읽어본다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북큐브 에르나크 댓글 게시판을 들렀다 흥미로운 댓글을 보았다. 카이첼 작가가 교조적이라는 댓글이었다. 동의할수밖에 없었다. 내가 읽은 카이첼의 전 작품에는 작가의 주장이 명확히 드러나있다. 이번 에르나크에서조차 그러하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식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가끔 강할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소설의 내용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너무 단순한 글을 읽다보면 이 글이 전에 읽었던 글 같고 다음 내용이 뻔히 생각될때가 있다. 깊게 생각을 하지않고 쓰여졌기 때문에 인물들간의 관계도 단순하고, 현실도 단순하고, 적들도 단순하고 주인공조차 단순하다. 그러나 카이첼 작가의 글은 최소한 이렇지는 않다. 박수를 보낼만하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문피아의 유료연재가 시작된 후 내심 많은 기대를 했다. 대여점시장의 암흑기를 벗어나고 골드들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시장의 파이가 커진다면 실력있는 작가들이 유입되거나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미치는 것 같다. 많은 작품들을 구매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들은 몇 없다. 경쟁과 각박한 현실에 지친분들이 많은지 갑의 소설, 편하게 갈등이 해소되는 소설들만 판을 치는것 같다. 던전과 신들의 세상이다. 과거의 추억을 미화한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카이레스,라딘,정각,명경,진산월,왕일,보리스,엘시,분뢰수 등등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운건 어쩔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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