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소림쌍괴 - 좌가시로 악명높은 좌백이 오랜만에 완결작을 냈습니다. 진짜 오랜만의 완결입니다. 4권 정도라 좀 아쉽습니다만 매우 깔끔하고 뛰어납니다. 근래 읽은 무협 가운데는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역시 좌백이란 말이 나올만한 필력이지요. 다만 엔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좀 애매합니다. 그냥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려나 아니면 어처구니없게 인간적이라고 해야 하려나. 주인공이 중이니 말이지요. 그리고 세계관을 연결하려는 기미가 보이던데 걱정스럽습니다. 애당초 세계관을 서로 연결할걸 생각하고 쓰여진 글들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글들을 하나로 통합하면 역시 문제가 생기기 쉬우니 말입니다. 그래도 잘 되면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지요.
2.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장르소설 가운데 가장 문학적 성취가 높은 장르는 sf라 하겠지만 현재는 믿을만한 작가가 별로 없습니다. 휴고니 네블러니 탄 것들도 만족스럽게 읽은 건 손에 꼽을 정도고 마이틀 클라이튼조차 공포의 제국이라고 하는 쓰레기같은 선전용 소설을 써서 커다란 실망을 안겨줬을 정도입니다. 그랜드 마스터로부터 로저 젤라즈니와 르귄으로 이어지던 그 화려한 영광은 다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어쩌면 소아온 같은 과학적 고증이나 사회적 개연성 모두 낙제점인 양판소 게임 소설에 훌륭한 sf라는 설명을 하는 이들이 있는 건 sf가 얼마나 지금 불황인지 알려주는 징조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정상급 작가가 있다면 그게 바로 테드 창입니다. 그의 단편들은 어느 것 하나 걸작이 아니다 싶은게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줄곧 단편만 쭉 적어서 sf를 좋아하는 이들을 실망스럽게 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독자는 장편이 읽고 싶단 말이지요. 이번 번역된 이 소설은 장편은 아닙니다만 중편 정도로 충분히 장편의 밀도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퀄리티는 테드 창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만족스럽습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 작품은 항상 그의 소설이 가져다주었던 새로움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공지능이란 자체가 너무 많이 우려먹혀서 여기서 새로움을 더한다는건 거의 불가능 하기도 하겠죠. 그래도 이 오래된 소재를 능숙하게 조리해서 인간과 인간지능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은 정말 드뭅니다.
3.무림사계 - 한상운식 무협의 절정. 블랙 코메디이면서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을 담고, 무협으로서의 복잡한 쟁투도 유감없이 담고 있습니다. 빵터지는 개그가 죽지 않은게 가장 좋았습니다. 밤꽃 에피소드가 정말 멋졌음. ㅋㅋㅋ 그리고 한상운은 이후 쭉 하락세. 그다지 재미도 없는 시시한 대중 소설 보다는 다시 무협을 적어줬으면 합니다.
4.은빛어비스 - 챕터 하나가 끝났습니다. 은빛어비스 무협판이라고 할까요.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무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들을 끌어다가 재배치해서 사용하는데 퀄리티가 대단히 우수합니다. 한 챕터에만 사용될 캐릭터들도 묘사가 출중해 생동감과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위버는 칼질을 단 한 번하는데, 그 한번이 끝내주게 멋입니다. 하긴 이 작가분의 구성과 연출력은 정평이 나 있지요.
5.크로스파이어 - 미야베 미유키는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데 의외로 초능력이나 마법 같은 환타지 영역도 많이 다룹니다. 그런 소설 중 하난데 나쁘지 않습니다. 여성 작가다 보니 심리묘사에 강점이 있어서 추격이나 전투 묘사에서는 텐션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입니다.
6.아나크레온 - 데이몬보다 괜찮아 졌다고 해서 읽었습니다만 그냥 평범한 판타지란 평밖엔 못 하겠군요. 데이몬을 읽진 못했는데 이 작품 보다 훨씬 못하다면 대체 데이몬은 어쨌다는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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