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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1 푸른이삭2
작성
03.11.12 09:57
조회
374

카타리나 블룸은 평범한 여자였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명랑한 천성과 맛깔스런 음식 솜씨로 가정부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카타리나. 불행하였으나 비극적이지는 않았던 그녀의 삶이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소설 이야기다. <열차는 정시에 도착하였다> <아홉시 반의 당구> 등으로 전후 독일의 정신적 폐허를 위로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며 학대받는 사람 편에 서서 불안 너머의 구원을 추구했던 하인리히 뵐. 그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마저 이야기를 하겠다. '수녀'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착실한 카타리나. 그녀가 어느 축제에서 젊은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한다. 그는 군 시설물을 훼손하고 탈영한 수배자. 경찰은 범죄자를 숨겨준 그녀를 조사하였고 신문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본격적인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선정적이고 통속적인 기사로 악명 높은 신문사의 기자는 그녀를, 그녀의 생애를, 그녀의 가족을 '취재'라는 이름으로 가혹하게 다룬다. 가난한 살림에도 겨우겨우 유지해온 그녀의 삶을 마치 거의 다 맞춘 퍼즐 판을 뒤집어엎듯 송두리째 파괴시킨 것이다. 기자가 던지는 질문은 저속한 언어로 가득 찼고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범죄자와 통할 수밖에 없는' 시궁창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정리된다.

아버지 없이 편견 속에서 자란 카타리나, 알콜 중독에 바람까지 피우는 어머니를 둔 왜곡된 성품의 카타리나, 도둑질을 일삼는 동생을 둔 신경질적인 카타리나. 교회세도 내지 않으며 결혼까지 실패한 타락한 여자 카타리나.

잠깐, 사실인즉 김병현 선수 때문에 꺼낸 얘기다. 사태의 전말은 다들 보도를 접한 바와 같다.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대질 심문'이 곧 시작될 모양이다.

양 측 주장은 팽팽하다. '때리고 싶었으나 카메라만 부쉈다'는 김병현, 전치 4주의 진단서를 내미는 기자. 사전 양해도 없었으며 반말까지 했다는 김병현. 거칠게 행동하며 취재를 방해했다는 기자. 팽팽하다. 일단 그 '실체적 진실' 만큼은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이어지는 해당 신문사의 후속 기사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다른 신문사 기사들의 기이한 문구들이다. '동업자 의식'이라고 봐도 될 만큼 편향적일 뿐만 아니라 이번 참에 아예 김병현 선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식의 주장까지 난무한다. 특히 해당 신문사가 '사회 각계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쓴 기사를 보면 김병현 선수는 단순히 '욱하는 성질'이 있는 선수가 아니라 앞뒤를 못가리는 사회 부적응자다.

몇 가지 인용해보겠다.

"취재 거부로 폭력을 휘두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올 것"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송해룡 교수)

"스타는 사생활이 다소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인식해 더 이상 특권의식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할 것"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정진석 교수)

"기자를 폭행한 것은 원시적인 발상이며 처벌하고 재발 방지해야" (한국사진기자협회 성명서)

"스포츠맨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사과를 하지 않으면 솜방망이와 고무공을 보내겠다" (활빈당 단장 홍정식)

"폭력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운동의 기본은 근육의 힘을 빼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인데 김병현 선수는 익숙지 못한 행동을 보였다" (전국언론노조 신학림위원장)

자, 우리는 또 한 명의 카타리나 블룸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메이저리거 핵잠수함이 아니라 자질이 의심스럽고 비상식적이며 처신도 불량하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김병현. 아직 '실체적 진실'조차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 말의 폭력, 점잖게 타이르는 듯 하지만 당사자의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무지막지한 융단폭격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하인리히 뵐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통해 70년대 독일의 구조화된 폭력, 곧 수많은 일간지를 거느린 신문 재벌 악셀 슈프링거 소속의 선정적 대중지 '빌트'를 포함한 언론의 구조적 폭력을 문제삼고자 했다.

하인리히 뵐은, 반정부 테러 단체로 지목받은 바더-마인호프 그룹에게 숙박을 제공한 혐의로 '인간 이하의 파렴치한 동물'로 전락한 하노버 대학의 페터 브뤼크너 교수 사건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 뵐은 거대 언론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이며 편향적이며 감정적인 기사가 취재 대상과 독자에게 어떻게 악영향을 끼치는가를 소설로 고발하고자 했던 것이다.

뵐은 이렇게 말한다. "폭탄과 총에 의한 폭력만을 폭력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빌트 지의 기사는 폭력을 행한 것이 아닌가? 어떤 폭력? 천백만 애독자의 잠재적 공격성, 그들의 머리와 의식속에 조준된 폭력."

또한 이렇게 말한다. "선정적인 저널리즘은 언론 폭력을 야기한다. 이 구조적 폭력은 개인적 폭력보다 그 악영향이 덜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언론 보도는 한 개인에 대하여 전횡을 휘두를 수 있으며 폭군으로 등장할 수 있다."

언젠가 경기장에서 본 일이다. 경기에 앞서 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고 있었고 기자들이 스탠드에서 필드로 내려가 취재를 하고 있었다. 일찍 구경 나온 팬들은 스탠드 하단에 몰려 좋아하는 선수들 이름을 부르며 사진을 찍곤 했다.

그때 어느 기자가 꽤 유명한 선수를 불렀다. 마치 동네 애들 부르는 것처럼 이것저것 다 빼고 '**야, 이리 좀 와봐' 했다. 갑자기 호명을 당한 그 선수는 잠깐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곧 그 기자에게 달려갔다.

그 기자와 선수가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사이일 수도 있다. 정말 한 동네에서 자랐을 지도 모른다. '격의 없는' 호칭으로 취재원과 가까이 하려는 순수한 동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운동밖에 모르는 선수들을 애 다루듯이 하는 '관록의' 노회한 기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스탠드 하단에 몰려 있던 팬들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정작 그 선수보다 더 당황하고 어리둥절해 하던 표정들. 그리고 그 기자의 득의만면한 태도….

'뭐라구? 거절하겠다구, 거절할 게 따로 있지 취재를 거절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치겠다구, 헬스클럽에서 뛰다 나온 것도 취재거리냐며 항의하겠다구, 사진 안찍겠다구, 우리 측의 신분과 용건부터 밝히라구, 에잇 원시적인 감정과 비상식적인 태도에 특권의식까지 젖어 드디어 폭력적인 기질까지 드러내는 놈 같으니라구.'

요컨대 김병현 선수가 그렇게 '고분고분'하라는 주문이다. 왜 너만 그렇게 '삐딱선'을 타냐는 얘기다. 한마디로 '병현아, 이리 좀 와봐' 하면 군말 없이 뛰어오라는 얘기다. 이름을 부르면 일체의 예비 동작 없이 '침상 3열에 정열' 하라는 소리다.

도대체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간혹 있을 수도 있는 시비를 마치 '국민의 알 권리'와 그것을 대신하는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한 양 온갖 지면을 할애하는 신문사.

그리고 기계적인 균형감각에 매몰된 이른바 '전문가들'의 매우 편향적인 발언과 이 흐름에 '동업자 의식'으로 엄호하는 다른 신문의 기사들. 정말 폭력적이지 않은가. 아니 폭력 그 자체가 아닌가.

/정윤수 기자 ([email protected])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정윤수 논설위원은 문화비평지 계간 <리뷰>와 위성채널 스카이KBS의 축구 해설위원을 지냈습니다. 문화와 스포츠 분야에 걸쳐 기획·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

찌라시의 기자들이 보고 반성좀 하길

-----------------------------------

라디오 스포츠 프로그램에서도 지라시 기자들과 같은 시각이 보이더군요.

모 스포츠 해설위원인지 하는 사람이 김병현이 어쨌든 공인으로서 태도를 잘못가진것이다.

마음가짐이 잘못되었다 하는 식으로.......

들으면서도 너도 똑같은 찌라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하나 김병현 선수의 편에 서서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군요.

뉴스든 스포츠프로그램이든.....

김병현 선수는 공인이기 이전에 개인입니다.

공인이 된 사람이라면 그사람의 사생활을 마구 침해해도 된다는 찌라시들의 의식....

우리나라에서는 진정한 언론을 보기 어려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적어도 메이저라고 칭하는 언론에서는...


Comment ' 2

  • 작성자
    Lv.22 二拳不要
    작성일
    03.11.12 12:41
    No. 1

    정말 이번에 스포츠 찌라시들의 행태에는 분노만이 솟구치더군요.
    그런자들이 있으니 아직 우리나라 언론이 삼류인것 같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왜 우리나라 언론들을 회피하겠습니까.
    김병현 선수가 힘을 낼길 바랍니다.
    절대 스포츠 찌라시에 굴복하지 말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어린쥐
    작성일
    03.11.12 15:43
    No. 2

    음...찌라시가 뭔 뜻인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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