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진산
작품명 : 진산의 단편무협
출판사 : 파란
내가 읽은 세 편의 무협소설.
-참된 소설에 대한 감상과 해설-
저는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제가 어느 글에서인가 ‘인간의 숙명에 대한 서사인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대단히 유식한 사람이 ‘서사’라는 말은 사전에도 없는 말이라고 시비하고 인신공격을 해 와서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정도의 수준의분들은 이 글을 보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신문연재로 명성을 얻은 ‘ㅇ..'님의 ’천...‘의 경우 처음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스승이 모든 무예, 명문대파의 무예를 완벽하게 구사 할 수는 있으나 내공이 부족해서 2~3류 밖에 되지못했다고 말하고 나서 곧 그 딸과 유명을 받은 제자는 경쟁관계에 있는 문파의 상당한 인물들을 꺾어버리거나, 제자는 두 사람을 보자말자 바로 승부를 미리 알아버리고, 상대의 초식을 보자마자 한 수 아래인 자기편 사람에게 무슨 초식을 쓰면 분명 이길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그대로 되는 이야기(?)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것은 내용상, 소설상의 모순이며 오류이다. 라고 할 경우 설정이니까 문제없다고 얼굴을 붉히고 덤벼들 분도 이 글을 사양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평어로 감을 양해들하시기 바랍니다.
‘청산녹수(靑山綠水)’ 라는 소설과 진산님에 대한 감상, 그리고 해설.
청산녹수는 무협에서는 보기 드물게 무협지가 아닌 소설이다.
또한 무협에서는 천 권에 하나 있을까 말까하는 소설이면서도 드문 단편소설이다.
또 한 가지 분명히 밝힐 점은 ‘허수아비 ..’ 이라고 해 두고서도 글은 그 제목과 정반대의 글을 써서 1위에 오른 어떤 대단한 작가의 글과는 분명 다르게 그 제목이 내용을 함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 줄거리를 상상해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읽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그 내용을 줄여서 소개하자면 이렇다.
-당나라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던 처녀가 악인을 응징하던 중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죽음밖에 아무런 희망이 없게 된 그녀는 이별을 고하고 한 가닥 삶에 대한 미련에 몸을 싣고 동이의 땅으로 불로초(?)를 구해서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
신비스러운 동이의 땅.
그곳에서 그녀는 이름난, 그러나 그때는 아직 수련 중이던 화랑을 만나게 된다. 화랑은 우연히 발견했던 산삼의 자생지를 알려주게 되고 건강을 되찾게 된 그녀와 다시 비무를 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 푸른 산과 강을 보는 꿈을 꾸게 되고 그 뒤에 아들과 딸 쌍둥이를 얻게 되고 그들의 다른 이름이 바로 청산녹수이며 글의 제목이 된다.
행복한 가정, 명망 있는 장수와 대국(당나라)에서 처녀의 몸으로 동이로 와서 가정을 이룬, 뛰어난 무예를 지닌 여인, 왕비의 사랑까지도 독차지하게 된 그녀 모청운,
그러나 인생에는 굴곡이 있듯이 말 한 마디로 왕을 움직일 수 있는 신녀(神女)의 잠자리를 괴롭히는 한 자락의 꿈, 그것은 바로 신라의 땅에서 건너간 아이가 백제의 왕을 찔러 죽이게 되고 그로 인해서 백제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반대로 신라는 국력을 다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대충의 줄거리다.
물론 이어지는 이야기에 더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신녀의 꿈에 나타난 아이, 그 기운, 그것이 바로 이미 장군이 되어버린 과거의 화랑 황선의 집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 그 아이가 바로 황선과 모운청의 사이에서 태어난 ‘청산녹수, 중에서 청산이라는 오빠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날 왕궁을 떠나서 세속과 담을 쌓고 살던 소수신녀(素手神女)의 뜬금없는 방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황선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위해서라도 아들을 죽음의 길로 보내야한다.
그러나 맞서는 어미 모운청. 그로 인해서 시작되는 부부의 갈등,
결국 두 아이를 데리고 도피 길에 오르게 되는 모청운과 대륙에서부터 모든 것을 팽개치고 ‘아가씨’의 뒤를 따라온 충직스러운 하인 한사충의 죽음의 길이 시작된다.
결국 쌍둥이 중 누이인 녹수, 소설에서의 정식이름은 ‘희’라는 아이가 죽음을 자청하게 되고 눈물로 헤어지게 된다.
작가는 희가 죽음을 자청하기 한 참 전부터 희의 수명이 길지 않음을 밝힌다. 그것도 몇 번이나..........
그리고 결국 어미와 오라버니 창에게 도망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희는 백제 땅으로 건너가서 왕을 죽이고 죽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은 거리를 떠도는 이야기꾼들에 의해서 알려지게 되고 모청운과 창도 백제의 백성들 사이에 끼어서 희의 아름답고도 슬픈 희생,
임무를 다한 죽음의 전말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선의 18반 무예, 본국검법은 희에 의해 시작 되었고 무예도보통지가 이상하게도 중국의 ‘모씨’ 집안에서 전해져 오다가 조선후기에 겨우 되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작가가 스스로 쓴 終종. 後記후기를 옮기면 이렇다.
종 終. 후기 後記.
여지승람(與地勝覽)에 의하면, 황창랑이라는 신라의 일곱 살 소년이 백제왕 앞에서 검무를추다가 왕을 찔러죽이고 자신도 백제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는데, 신라사람이 이를 슬퍼하여 황창랑의 모습을 그린 가면을 쓰고 검무를 추는 풍속이 지금도 전해 온다고 하였다.
조선조 정조 때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武藝圖潽通志)에서는 황창랑의 검술로부터 본국검(本國劍)이라는 신라의 검술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 본국검법의 술법은 실전되어 오래도록 전하지 않았다가, 중국의 모원의(茅元儀)라고 하는 사람이 쓴 무비지(武備志)라는 책에서 그 검보를 찾아내어 무예도보통지에 마침내 다시 실리게 된 것인데, 이와 관련해 무예도보통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조선이 자기 나라의 검보를 창안한 것이었을 터인데 어째서 스스로 전하지 못하고 스스로 익히지 아니하여 중국의 모원의에 의해서 전하고 익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할 일이요,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감상 및 해설.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을 밝힐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 가지는 이야기하고 싶다.
-유니크한 단일효과를 노리는 것이 단편의 가장 큰 목적이자 미덕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글은 단편에 담기에는 조금은 버거운 이야기가 아닐까한다.
-또한 서술구조에 대해서 나는 이것은 조금은 하고 머리를 갸웃거린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내가 몇 년 동안 읽은 글들 중에서 발견한 소설중의 소설이다.
- 유감스럽게도 나는 좌백님의 글을 구하다 지치고 말았다. 이 글을 읽는분들 중에 좌백님의 ‘혈기린 외전’을 갖고 계신분은 좀 빌려주시기를 바란다.
-이재일님의 글은 끝을 보지 못해서 내가 발견한 소설에서 제외 시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중이다 중단되어버린 두 편의 소설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소개하고 싶다. 바로 다로님의 ‘칠등만세’라는 소설과 장익님의 ‘풍진기’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설을.......
작가의 첫 마디는 도망치는 일행, 그 중에서도 희아의 입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아름다운, 그러나 슬픈 운명을 타고 태어난 아이, 뛰어난 오성을 타고 태어났으나 어미의 부상의 후유증으로 요절할 운명을 타고 태어난 아이,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단언하자면 소설기법상의 복선이면서도 우리 인간의 숙명을,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인생관의 한 자락을 열어 보이면서 나와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묘한(?) 대의에 사로잡혀서 사랑도, 자식에 대한 아비로서의 책무도 외면해버리는 장군이자 아비이며 남편인 황선,
우리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서 이런 장면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예를 들자면 국가의 명령에 의해 거짓된 전장에서 가치 없이 죽어간 ‘아프간’ 이나 ‘이라크’에서의 미군들의 희생이 생각되기도 했다.
즉, 우리가 믿는 혹은 믿어왔던 기존의 관념들이 얼마나 모순과 허구에 찬 것인지를 작가는 말없이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원명이라는 스님, 젊은 시절에는 황선의 벗이자 무예의 경쟁자였던 그 스님은 단 한 번의 겨룸도 없이 무위를 드러내면서도 구도자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뻑하면 무예실력을 뽐내는 소림사의 방장과는 다르게(자칭 무협소설이라는 쓰레기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임)
그는 승려, 구도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한 마디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모운청 일행에게 길을 열어준다.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백제의 거리에서 어느 날인가부터 어린아이가 검무를 보이게 되었고 군중이 놀람과 환호를 보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소식이 왕궁까지 전해져서 왕의 귀에까지 들렸고, 결국 왕 앞에까지 나간 그 아이, 일곱 살짜리의 칼에 왕이 죽었고 국운이 기울게 되었다는 역사를,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착상의 뿌리요 이야기의 얼개가 된 것이다. 그리고 도보통지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상상하기를 바란다.
참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작가 진산님은 왜 하필이면 그 이야기를 신녀라는 무당여인을 통해서 끌어갈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나는 여기에서 작가가 준비된 작가라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대신도 있고 장수들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조금의 상상력과 보통의 역사적 지식과 생각의 능력을 지닌 독자들은 금방 알았을 것이다.
같은 왕 아래에서 섬기고 있는 대신이나 장수들이 어찌 감히 명망 있는 장군과 적이 되기를 원하겠는가? 그리고 또 장군들이나 대신들이 그러한 천기를 토하게 될 경우 독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이며 그들이 그토록 모진 결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심리묘사와 복선들을 깔아야 할 것이며 이야기는 얼마나 복밥해지고 말 것인가?
그러나 신녀, 어느 정도는 음험하고 술수와 모략에 능하게 인식되어진 신녀라면 간단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그 무녀의 이름을 소수신녀라고 정하고 많은 한자들 중에서 그 글자들을 선택한 작가의 깊은 헤아림에 어찌 어찌해서 유쾌, 통쾌, 상쾌하면 좋은 소설이라는 개 풀 뜯어먹는 이론에 고무되어 고개를 빳빳이 치켜세우고 있는 작가연하는 사람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리라.
그리고 사족 한 마디 보태자면 작가들은 침묵하고 있는데 오히려 나서서 설정이니 무조건 용서가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이들이여 당신은 작가인가? 독자인가?
또한 설정이라는 말 한 마디로 무조건 통과된다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그 어떤 고명한 학자님의 새로운 이론인가?
슬픈 운명의 아이. 희가 걸어간 그 길, 그리고 자식을 죽음의 길로 보내고 떠나간 어미 모운청과 오라비 창의 길은 어떤 길일까?
문득 생각나는 변신과 이방인, 그리고 어린 왕자여!
진산님의 창에 어리는 별빛들이여! 복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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