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Lv.11 햇별
작성
08.03.11 18:46
조회
1,163

  문피아를 알게 된 지도 1년쯤 되었습니다만, 제가 넷상에 글 남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귀찮은 것도 있고...) 야금야금 글만 읽고 갔었습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다 해도 댓글도 안 남겼습니다. 딴에는 판타지에 입문한 지도 6, 7년이나 되어서 기준도 높아 웬만하면 제목이나 처음 몇 편만 보고 그만둡니다. 내용이 빤히 보이는 경우가 많아져서요. 게다가 저는 성격도 엄청 급합니다. 좀 재미있는 글을 찾았다 싶으면 연재 기다리다 감질맛나서 포기하기 일쑤라 1년이나 드나들었으면서 완결까지 본 작품 수도 의외로 적습니다. 연재 체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제가 문피아에 계속 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요? 수많은 작품 중에 제 가슴에 불을 지필 신선하고 흡입력 있는 보물을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다가 하나 발견하면 로또 1등에 당첨된 기분(당첨 안 되어봐서 정확히는 모릅니다)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기쁨이 샘솟는답니다. 아마 그 기분은 겪어보신 분만 아실 거예요. 이렇게 구미에 맞는 작품 찾기가 어렵다보니 저는 한번 빠지면 무척 열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몇 작품 있었는데 오늘 제가 자신 있게 추천해드리는 바보는탁월님의 ‘더쉐도우’는 요즘 제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놓아주질 않는군요. 게으름의 화신인 제가 문피아 와서 처음으로 글 밑에다 댓글을 달았을 정도로 말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추천까지 하고 있다니... 제가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더쉐도우’의 배경은 현대의 뉴욕입니다. 그래서인지 할리우드적인 장치들도 눈에 많이 뜨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도시에 갑자기 등장하는 다크 히어로와 그의 대적자들. 얼핏 식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글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선함입니다. 이 작품을 읽을 때 편견은 갖지 말아주세요. 같은 소재라도 영화와 소설은 엄연히 다른 매체입니다. 우리는 ‘킹콩’이나 ‘고질라’의 내용을 뻔히 알고 있지만, 소설로 재구성해 보라면 난감함을 느낄 것입니다. 영상의 도움 없이 ‘괴수의 출현’이라는 부분을 표현하기 어려울 뿐더러 말 못하는 괴수의 심리나 행동 등을 그럴 듯하고 개연성 있게 납득시켜야 하는데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일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더쉐도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주인공인 쉐도우는 말하는 법조차 잊은 자입니다. 기쁠 때도 [흐오오오], 슬플 때도 [흐오오오], 열받을 때도 [흐오오오]... 오죽했으면 처음에 저는 쉐도우는 명목상 주인공이고 혹시 그를 추적하는 형사 존이 실질적인 주인공이 아닌지 살짝 의심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괴수를 소재로 삼으면 엄연히 제목이나 중심 내용은 괴수에게 치우침에도 인간이 주인공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쉐도우가 [흐오오오]를 하면 괜히 심심해서 울부짖는 게 아니라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거죠. 조연들의 비중이 너무 커져서 독자가 궁금함과 식상함을 느껴 포기하려 할 때, 그 절묘한 타이밍에 작가님은 슬슬 떡밥을 던지십니다. 쉐도우의 정체와 과거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일 때도 있고, 쉐도우에 대한 비중을 조금씩 늘리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부터 쉐도우도 여느 작품의 주인공들 못지 않은 비중을 갖고 있더군요. 그렇다고 글을 끌고 나가는 요소가 쉐도우의 정체에 관한 것만은 아닙니다. 뭐가 해결된다 싶으면 새로운 뭔가가 터집니다. 개연성도 있어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생각 없이 술술 ‘윗글’을 눌러가다가 나중에는 숨을 죽이며 읽게 되었습니다. 초반부만 조금 넘기시면 흡입력이 장난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초반에 비해 후반 조회수가 낮은 이유가 초반부가 다소 식상한 감이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데요, 절대 용두사미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더쉐도우’는 초반보단 중반이, 중반보단 후반이 몰입감이 높습니다. 믿고 도전하세요.

  또한 캐릭터들도 훌륭합니다. 전형적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시선을 끕니다. 우선 쉐도우는 대사는 거의 없지만 독자인 저는 이미 쉐도우 위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연의 비중이 커져도 중심엔 항상 쉐도우가 존재합니다. 주절주절 말은 많지만 정작 개성이 없어서 조연들에게 밀리는 주인공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흐오오오]만으로도 절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쉐도우는 참 불가사의하고 매력적인 주인공입니다. 게다가 흡혈귀가 주인공이면서도 무슨 클랜이라거나 헌터라거나 귀공자처럼 야경을 굽어보는 음모가라거나 요녀 흡혈귀, 권력투쟁 따위는 안 나옵니다. 쉐도우가 워낙 독불장군이고 흡혈귀를 초월해서 더 그렇기도 하지만 흡혈귀들 자체도 다른 소설들과는 미묘하게 다릅니다. 쉐도우는 생긴 것답지 않게 정의의 사도에다가 지나가다 주워온 고양이를 예뻐하는 귀여운(“) 구석도 있답니다. 대사는 없어도 자신의 주관을 보여줘야 할 때는 어떻게든 어필해서 주인공임을 일깨웁니다. 죽은 괴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주인공인 겁니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매력덩어리라니까요, 우리 쉐도우 오빠는...(커험! 써놓고도 오빠는 좀...)

  그렇다고 이 글이 온통 주인공이 다 해먹는 줄거리냐, 그건 또 아닙니다. 똥배가 포인트지만 알고보면 뉴욕 최고의 경찰이며 딸사랑이 지극한 아버지인 존(판타지에선 주연급 치고 모성애나 부성애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잘 없는 편이죠. 시스콤은 흔하지만. 그런데 존은 나름의 아버지상을 잘 보여줍니다), 흉폭한 늑대인간이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순정파인 실버, 영원한 중학생이라는 별명답지 않게 엄연한 대학생인 제니, 애매한 성격에 (적에게는 포스, 아군에게는 다정) 은근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마녀(개인적으로 이런 캐릭터가 취향이라죠), 그리고 댓글 다시는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발려라. 사라져라. 죽어라.’를 외치시는 완벽한 악역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각자의 역할에 따라 살아 숨쉽니다. 작가님이 캐릭터 별로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하셔서 산만한 느낌도 없구요. 캐릭터 설명 때문에 장황하게 늘어지지도 않아요.

  혹시 너무 활극 중심일까 걱정하시나요? 저도 너무 전투씬 위주면 잘 안 봅니다. 전투씬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스토리 전개, 심리 묘사, 소소한 에피소드 등과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쉐도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음악. 선곡도 잘 하시는 편입니다. 어떨 때는 대사와 음악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전율하기도 합니다.

  신선한 것을 원하십니까? 분량 많은 작품을 원하십니까? 망설이지 마세요. 무지막지하게 눈 높은 제가 추천하는 작품이니 믿어보세요. 분명 이 작품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취향을 넘어서 일정 수준 이상을 달성한 작품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현대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더라도 일독해서 별로 손해보시진 않을 거예요.

  PS: 아하하, 말 많은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군요. 사설은 길지만 엄연한 추천인 것이에요. 추천은 연재분을 따라잡은 뒤부터 한다, 한다 했는데 이제야 하게 되네요. 좀처럼 ‘새글쓰기’를 누를 수가 없더군요. 작가님은 글을 쓰실 때 최선을 다하실 텐데 독자인 저도 이왕 추천을 할 거라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설픈 추천은 오히려 이미지를 깎아먹을 것 같아서 나름대로 오랜 시간 다듬은 결과가 이 추천입니다. 하지만 주책맞게 길어지기만 하고 제가 의도한 바가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아 조금은 속상하네요. 뭐, 더 붙들고 있어봤자 돌머리에서 돌가루가 나오지, 두부 부스러기가 나오겠습니까?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지적은 살살 해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좋은 하루 되시고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세요. 요즘 감기가 유행인 것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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