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밤중에 술 취한 상태에서 내키는대로 쓰는 것입니다.
만약 과거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취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인종차별의 극치를 달리던 시대를 배경으로 해봅시다. 그 시대에 어떤 사람이 흑인을 주인공으로 해 백인들을 통쾌하게 무찌르고, 신날하게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내용을 적었다고 해봅시다.
흑인들은 그렇다 치고 이런 소설을 보는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화가 나겠지요. 아마도. 그런데 이런 소설을 쓴 인물이 흑인일 경우와 백인일 경우의 차이는 어떨까요?
흑인이 그런 소설을 썼다면 자신의 처지를 위안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백인이 쓴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도이고 다른 백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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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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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에서 주인공은 인간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런 주인공은 보통 아무래도 인간편을 들게 되겠지요. 실제로 인간사회에서 살다보니 어지간해서는 인간측에 도움될 만한 행동을 하게 되기 마련이더랍니다.
또 다른 이야기인데 인간이 만약 인간 외의 종족의 땅을 정벌해 지배한다는 이야기로 간다면, 아마 소설 내용은 그 정벌이 원활히 이루어져 그것에 정당성이 있다고 꾸밀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주인공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화해해 종족간의 사이가 좋아진다는 전개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이런 전개도 어지간해 잘하지 않으면 부자연스러운 구역질나는 전개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반대로 인간 외 종족, 예를 들어 소위 말하는 마족이나 오크 등이 인간을 침공하면 소설에서는 무조건 악이라고 할 것입니다. 무턱대고 처음부터 매도부터 하겠지요.
누군가를 침략하고 죽이는 일이 잘하는 것이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아무래도 주체가 되면 그것을 '악'이라는 식으로 신랄하게 해야 할 묘사가 아무래도 무르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라는 것이죠.
요새 저는 그런 묘사 등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행위를 했을 때 행하는 주체가 인간이니까 좀 못나 보여도 뭔가 여지를 주듯이 무르게 표현한다던지, 추악한 괴물이니까 있는 거 없는 거 다 끄집어내며 짓밟고 보는 표현을 쓰는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공정치 않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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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소위 말하는 호인 내지는 선역인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속한 종족, 국가, 단체 등이 선역이라고…주인공이 잘만 설득하거나 구슬리면 선역이 될 수 있다고만 여지를 주는 것은 아니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순진하고 선량한 기사인데, 인간이란 종족이나 국가는 죄없는 엘프나 드워프 등을 짓밟고 그것을 모든 인간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인간인데 선량하니까, 다른 인간종족도 결국에는 성선설처럼 착하겠지 라는 식으로 가는 전개라면 정말 화가 날 거 같습니다.
인간이 먼저 오크 등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분노한 그들에게 밀려서 짓밟하고 멸족하는 경우도 분명 하려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들이 다른 이종족들을 핍박해 그들을 땅을 빼앗고 풍요를 누리다가, 역으로 세력이 뒤집혀서 그 땅과 풍요를 빼앗기고 짓밟히게 되었을 때 인간을 대변해 정의를 부르짖고 항의하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땅과 풍요를 인간이 되찾는 행위 자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거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올바르다거나 정당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는 것이죠.
서로 간의 추악한 생존경쟁으로서 다루기는 할지언정, 그러한 것들에 '정의'라며 올바르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절대'라는 말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안될 거 같다고까지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란 종족은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 다른 종족과 비교해 특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마지막에는 꼭 선역이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있는, 동정받아도 될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
같은 짓을 저질렀을 때 다른 이종족이라면, 예를 들어 오크라면 멸족할만한 대죄라도 인간이 저질렀다면 결국에는 멸망하지 않고 회개라도 했다는 것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인 거 같습니다.
인간도 성향마다 나눠지는 경향이 있다는 식의 의견도 있지만, 보통 소위 말하는 어둠의 진형 쪽으로 들어가는 인간은 일반적으로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아무것도 모르는 죄없는 양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둠의 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족들도 마찬가지. 오히려 무지한 양민들이기에 쉽게 분위기에 동조해서 광기에 물들어 다른 이종족들에게 한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종족 자체가 제 3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둠의 종족'이라고 불릴만한 존재여서는 안 되는 것인가? 인간이 멸망해서는 안되는가?
주인공이 인간이면 어떤 면에서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편의상 자기 종족을 편드는 일은 반쯤 어쩔 수 없는 일일테니. 정말 용서 안 되는 건 주인공이 인간도 아닌데 말도 안 되거나 어정쩡한 이유로 무턱대고 인간을 편애하며 감싸는 전개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완전히 무시하고 아무 편도 들지 않는 전개가 훨씬 나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저는 판타지 장르소설에서 과도한 인간편애적인 전개가 질린 모양이지요. 최근에 그런 소설을 보고 화가 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네, 결국은 주인공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판타지 장르 소설의 주인공이 인간편애적인 사고방식으로 정의를 표방해 주장하는 것과 그런 주인공을 옹호하는 거 같은 서술과 전개에 화가 난 것이겠지요.
소설에서 다툼이 있고, 차별이 있고, 불합리와 갈등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특히 전투비중이 많은 판타지 장르 소설에서는 필연적일 것입니다.
거기에 서술과 캐릭터, 이야기 전개는 온전히 작가 맘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조금은 인간종족 편애적인 서술이나 이야기 전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게 깊게 보면 결국 현실로 치자면 인종차별이거든요. 흑인, 백인, 황인 이렇게 나누고서 으르렁거리는거나 별반 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와 시대에 인종차별적인 서술묘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주인공의 정의감과 노력과 기대가 마지막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뭐 어떤가요? 물론 이런 걸 누구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거고,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시원스레 통쾌한 맛은 없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PS - 그리고 이런 글을 쓸 때 답한답시고 덧글에 작가 맘대로 쓰면 되지 않냐고, 달랑 그것만 쓰고 마시는 분들도 있는데 왠만하면 그러지 맙시다. 제발!
아무래도 생각은 하고 쓰는 것인지, 비이냥대려는데 마땅히 쓸 말이 없어서 눈 감고 아웅거리는 식으로 대충 쓰고 보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니 말입니다.
작가가 자기 마음 가는대로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겁니다. 혹여 자기 마음대로가 아닌, 어떠한 타인의 요구에 맞춰 글을 쓰다니…물론 그런 직종이 없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여기 문피아에 올리는 글, 그리고 그런 글을 쓰는 데 한해 말하는 작가란 누구 눈치 보고 글을 쓰는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도 안될 테고요. 기교나 서술방식은 조언받을 수 있을지언정, 전개하고픈 큰 줄기의 내용은 온전히 작가 자신의 것일 테니 말입니다.
때문에 작가 마음가는 데로 쓰면 된다는 것은 너무 포괄적이다 못해 쓸 필요조차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고, 심지어 논의에 맞지 않는 것을 넘어서 그 이상의 이야기 전개를 딱 끊어버리기까지 합니다.
솔직히 그런 성의 없는 답변으로 할 바에는 아예 답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짧더라도 진지하게 쓰거나, 답을 달지 않더라도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것이 더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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