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글을 정주행하고 추천글을 작성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 글의 제목을 처음 본 건 꽤나 이전의 일이였습니다.
추천글? 비평글? 을 보고 ‘아니 수양대군이 코끼리를 왜 만나?’ 하고 일단 넘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뭐 설명이 힐링 판타지처럼 쓰여있어서 그랬던 것도 있고....
굳이 대체역사에서 힐링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거든요.
그러다가 어제 선작 위 배너에 있는 걸 보고 뭔가에 홀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뭔소리냐면... 수양대군이 코끼리를 만났을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와 씨 세상에 이런게 있단 말야?? 뭐 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 진짜네. 쩐다...’ 아니였을까요? 물론 발단이 되는 프롤로그에도 언급되어 있긴 하지만 정사에서의 수양대군은 코끼리 만날 때에는 찌들은 아재였으니 그냥 ‘신기하네’정도로 넘어갔을수도 있겠습니다만, 여튼 이런걸 상상하기는 했고, 있을법 하다는 것도 알긴 하는데, 그게 실재로 존재하는 것을 볼 때의 그런 문화충격이랄까 뭐랄까.
개인적으로 대체역사라는 장르의 특징은 ‘시뮬레이션’ 과 ‘개변’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개변, 즉 ‘바뀐 무언가‘가 ’바뀌지 않은 무언가‘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의 흐름을 시뮬레이션하는 장르가 제가 생각하는 대체역사의 정의인 것이죠. 그런점에서 다들 한번쯤은 상상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꼭 ‘개변’이 ‘미래인(작중 인물들 시점에서)’ 혹은 ‘미래 지식’ 일 필요가 없지 않아? 하는 상상을요. ‘무언가’가 역사의 변곡점을 툭 건드려 주는 것을 통해 바뀌는 역사를 시뮬레이션한 대체역사를 말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지난한 일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복원성(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입니다만), 정확히 말하면 합리성이랄까... 지금 보면 우습긴 하지만 당시 사람들로서는 그 결정이 시대적으로, 혹은 가치관적으로 합리적이였고 그로 인해 선택된 것은 다른 모든 사회 체계나 사상,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하나가 살짝 바뀐다고 해서 그것이 전체의 변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대체역사소설은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해나갈 동인, 즉 ‘미래 지식’을 가진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헌데 그 점에서 이 소설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코끼리’죠. 이 소설의 변화의 동인은? ‘코끼리’입니다. “엥? 코끼리가 사회개혁을 한다고? 무슨 개소리냐!” 하고 말하실지 모르겠지만 진짜입니다. 정확히는 코끼리라는 ‘개변’이 ‘바뀌지 않은’ 조선의 인물들과 상호작용하여 역사가 바뀌어나갑니다. 여기서 중요한점은, 그게 미래인인 우리에게도 합리적이면서, 작중 인물들에게도 합리적인 것으로 그려져 나간다는 점입니다. 그 둘의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가 않은데 어찌저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그걸 만족시키는 점에서 ‘작가분의 내공이 평범한 무명소졸은 아니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뭔가 더 적고 싶은데 작품 특성상 ‘이걸 이렇게 연결시켰단 말야?’하고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전개가 일품인지라 이걸 까면 재미가 반감되기에 더이상 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위에 주절주절 적은 내용에 어느정도 공감하시는 분이시라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이라 자신있게 추천드릴 수 있겠습니다. 자, 조선의 엘레펑크에 세계에 같이 빠져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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