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 #세계대전 #재벌 #좀비물
한국인이 과거로 회귀를 하면 높은 확률로 임진왜란 내지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떨어진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작가와 독자가 국사시간에 배운 사실을 공유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이나 설정이 필요없고, 16등 중에 15등을 하더라도 일본만 이기면 된다는 국민 정서는 왜놈 또는 일제를 엿먹이며 손쉬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워낙 많은 작품들이 현대 한국인을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어느 정도 질린 상황. 그래서 누군가가 똘똘한 생각, 즉 시간선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다면 공간을 바꿔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국적은 조선인이되 미국이나 유럽, 러시아 등으로 이주하여 '큰 물'에서 성공을 거두는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시대가 온 것.
이 소설의 주인공, 강아서 역시 마찬가지. 업계 최고의 구조조정 컨설턴트였던 주인공은 갑자기 1912년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여객선 위의 조선인에게 빙의되고 만다.
뭐, 여기까지라면 나름대로 평범한 출발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본인이 과거로 이동하기 전에 "평범한 세계는 재미없으니 좀 막장스럽게 가자"고 해버렸다는 것.
그래서 시작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일단 그가 탑승한 여객선의 이름부터가 타이타닉이니까.
단지 그것뿐이면 심심할거라 생각했는지 좀비도 한 스푼 섞어넣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포칼립스물이 아니라 대체역사물이라는 본분을 지켜 좀비의 위험도가 '좀 거추장스럽고 무시하긴 힘든 역병+들짐승' 수준이라는 것.
전반적으로 보면 요즘 대유행중인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독특한 컨셉 두 개가 계속 눈길을 끈다.
첫째는 좀비가 있는 세상이라는 것. 배후의 암흑세력도 있는 듯 한데, 오컬트+히틀러라는 자연스러운 전개에 좀비를 끼얹으면? "좀비 아미"나 "벙커 오브 더 데드"의 재림이다! 세계대전 대체역사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공룡+로봇급의 치트키나 다름없는 소재.
둘째는 세상 흉악한 것은 다 영국이 만들었다는 제목이 암시하는 내용이다. 제국주의의 종주국이자 민트초코나 정어리 파이같은 흉악한 물건들이 태어난 나라. 주인공 역시 그에 걸맞게 살상용 철조망이나 DDT같은 물건들을 개발해내며 사업을 확장중이다. 싸구려 페이퍼백 서적이나 삼륜차같은 정상적인(?) 물건도 섞어서 팔고 있기는 하지만 폰지 사기나 화염방사기나 헤지펀드 공매도 내지는 (당연히) 핵무기 같은 흉악한 발명의 선구자가 되지는 않을까 기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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