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한담
작품명 : 월영문
출판사 : 로크미디어
월영이 전 중원을 장악했습니다. 아니 장악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군요, 월영문의 세계에서 드러나는 달의 그림자는, 군림하되 군림하지 않고, 지배하되 지배하지 않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왜냐하면 월영은 중원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그 많은 소설들에서 나왔던 무림맹의 한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월영문도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가문을 계승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인재들에게 월영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열려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면에서 월영은 오늘날의 UN에 가까운 모든문파의 글로벌 연합체입니다.
하지만 월영은 단일집단입니다. 무림맹이나 사도련 같은 맹과 연합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월영이 가지는 비밀은 그들만 알고 있어야 하며, 남들이 알면 친형제라도 살인멸구 해야하는 지엄한 법규가 있습니다. 월영은 그러한 권위를 넘보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수천의 중원 인재들에게 월영이 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지만, 또한 그들은 특별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각 월영분타에서 추천을 받은 인재이기 때문이죠. 유명가문의 인물이 아니어도 되나, 그 무재나 근골이 눈에 띄는 아이여야 하니, 맨 처음에 말한 모든 '인재'에게 열려 있다는 말을 모든 '사람'으로 곡해하시면 안됩니다.
주인공 학표는 착실하게 커나가는 인재입니다. 그의 실력은 먼치킨이 아니지만 그의 재능은 먼치킨입니다. 그리고 그의 성품 또한 보기드문 영웅의 기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지만, 절대로 어리숙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신필 김용의 '곽정'이 떠오릅니다. 다만 곽정은 어린나이의 고난에 의해서 어리숙함을 벗어났다 하면, 학표는 주어진 재치와 영특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다르겠지요. 그러나 그 잘난 재능에 교만하지 않고, 항상 처음을 잊지않고 근본을 돌아보는 마음이, 구무협 주인공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월영의 천하에서 학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월영의 문하로 들어가는 일이죠. 그리고 이것은 미리니름이라고 할 것도 없는 소설 시작부터 전제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남들과 똑같은 수련과 연공을 거쳐 월영의 이름을 받는다면, 그것은 소설적 플롯으로는 낙제점이겠죠.
학표는 군웅을 이끄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먼치킨은 혼자잘난 것이 아니라, 온 주변을 장악하여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을 구축 할 수 있는 사람이겠죠. 그리고 그는 모든 역경속에서도 동료와 함께 살아나가는 법을 체득합니다.
학표의 미래를 함께할 동료들은 어린나이부터 같이 수련을 합니다. 학표이상의 가슴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들어온 그들은 학표를 중심으로 한마음으로 똘똘 뭉칩니다. 그리고 그 뭉친 아이들은 주어진 수련조건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울려가며 헤쳐나갑니다.
글을 배워야, 무엇이든지 배우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길이다. 라는 학표의 말은 사회에서 뒹구는 저의 마음을 아프게 찔러옵니다. 과거부터 전해온 불변의 진리인가봅니다. 그에 따라서 고사리손을 지닌 아이들 또한 열심히 글을 쓰고 배웁니다.
노비출신으로 배움이 천한 만복은 어눌한 말투로 놀림을 받는 곰 같은 아이지만, 학표의 이끌림에 종이하나에 열심히 괴발개발 글을 써나갑니다. 그에 자극받은 덕재또한 옆에서 따라서 글을 쓰기 시작하죠, 그러나 곧 덕재에게 야단을 맞습니다.
"그 면지에 스무글자 이상은 써야지 크게 한자를 쓰면 어떡혀? 그 면지 하나가 얼만지 알어? 닭 한마리값인 걸 학표가 힘들게 구해온거란 말여!"
뒤를 돌아본 덕재, 그동안 망쳐서 구겨버린 종이가 수십장입니다. 그리고 덕재가 완성한 것은 지금 면지 하나에 크게 한자 쓴 글자 달랑 하나, 만복과 덕재가 면지 한장에 얼마하는지 알턱이 없지만, 학표가 어디서 구해오는지도 잘 모르니, 그 중요성이나 희귀성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면지를 구해다주는 학표가 고마워 한장에 수십자를 조심조심 써가면서 아껴 아껴 쓸 뿐입니다.
"니가 오늘 처먹은 닭이 몇마린지 알기나 혀?"
만복에게 야단을 맞는 덕재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리고 삼일이 지나자 그렇게 글을 쓰는 아이는 아홉으로 늘었습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통채로 홀라당 처먹지 말라 그랬지? 네가 무슨 양계장집 아들이냐? 툭 하면 홀라당 하게?"
삼일 전 자신의 모습은 잊은 모양인지, 소꿉친구 길보에게 큰소리 치는 덕재입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녀"
"일부러고 이부러고 간에 한 글자를 쓰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하란 말이야. 귀한 면지 낭비하지 말고,. 이그, 닭대가리 같은 새끼들..."
야단은 조원 전체에게 하지만, 은근히 부조장인 토비를 의식한 행동입니다. 속이 끓어오르는 토비는 조장인 학표를 보아 차마 화도 못내고, 슬그머니 망친 면지를 감춥니다.
정말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출생의 비밀, 영웅의 기상, 권선징악과, 가문의 적수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개차반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악역 조연까지, 살아 숨쉬는 느낌이 있는 캐릭터들이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귀엽고 곧 늠름하게 자라나게 될 동료까지, 학표가 월영의 세계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할지 자못 궁금한 일입니다.
1, 2권 분량내내 진행되는 열명의 조원들과의 수련생활은 아마 학표의 미래에 대한 기반일겁니다. 그리고 그 믿음직한 동료들 이상으로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부하들을 맞이하게 될 여러 복선들이 보이니 무료한 현대의 일상을 보내는 우리로서는, 학표의 다음 인생이 궁금해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조기종결되지 않은, 적절한 위트가 담겨있는 영웅의 일기를 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필력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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