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설정이 참신하고 재밌습니다.
항성간 우주를 여행하는 문제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무수히 많은 SF의 소재와 주제들을 양산해 냈는데요, 이 소설에서는 독특한 물리법칙의 우주를 만듦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소설에서 우주(정확히 은하계는)는 중심부에 갈 수록 빛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그 말은 외곽으로 갈 수록 빨라진다는 얘깁니다. 현재 지구에서 측정가능한 빛의 속도, 상수는 영원불변한 것이 아닙니다!
빛의 속도는 모든 것을 바꿉니다. 단순히 항성간 여행이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컴퓨터의 연산속도, 정보의 전달 속도, 사고의 속도도 빛의 속도의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이 한계가 끝없이 높아진다는건, 무한성, 신성에 도달하는 길이 됩니다.
실제로 은하계의 최외곽부, 초월계에는 신선(powers의 번역인데..신선보다 그냥 ‘신’이라고 해도 될듯?)이라는 존재들이 가득합니다. 이들은 집단지성으로 초월화한 고대종족일 수도 있고 진화의 극에 달한 A.I일수도 있습니다. 하부의 우주에서 볼때는 신과 같이 전능한 존재로 보입니다. 하지만 신선들도 영원불멸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루살이 같은 존재입니다. 대개 10년 이상 관측 가능한 신선들은 없는데, 왜냐면 그 전에 하부 우주에 관심을 잃거나, 살해되거나, 흡수당하거나, 더 높은 우주로 떠나기 때문입니다. 하부 우주의 일년은 초월계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시간입니다. 갓 신선이 된 존재는 신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겠지만, 초월계에는 억겁의 시간을 잠들어 있는 상상불가의 존재들로 가득합니다...
하부 우주의 존재들은 초월계를 갈망합니다. 우리 지구가 속한 저속권의 위에 위치한 역외권(the beyond) 만 도달해도, 워프를 통한 항성간 여행이 가능해지고, 높은 수준의 A.I가 개발되며, 전 은하계를 연결한 네트워크(-용량의 문제로 pc통신 수준이지만..)가 존재합니다. 반중력과 반물질을 다루고, 에너지 광선을 쓰는 등 전형적인 스페이스 판타지의 세계입니다. 그런 역외권의 존재들에게도 초월계는 상상불가의 공간입니다. 가끔씩 신선들이 만들어 보내는 초월계의 장난감 같은 기기들은 마법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인류는 역외권에 도달해 있습니다. 노르웨이 계통의 식민 행성의 주민들이 저속권의 고립성(-항성간 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저속권 우주에서, 냉동수면과 세대간 우주선을 통해 하드한 여행이 가능합니다, 저속권 행성들은 대개 고립돼 있어, 발전을 거듭하다 멸망해 중세로 떨어지는 그런 일들이 흔하게 벌어집니다, 수십억의 문명 중 극소수 만이 저속권의 한계를 넘어 역외권으로 진출합니다..)을 넘어 역외권 은하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것이죠. 이에 만족하지 않은 인류는 확장을 거듭해 초월계의 접경지까지 왔습니다. ‘위’로 향할 수록, 기술 진보는 빨라지지만 그만큼 위험합니다. 단순히 외부의 위협이 무서운게 아니라, 빨라진 기술에 잡아먹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월계에 가까운 영역에서 노예로 설계된 A.I들이 설계 이상의 성능을 얻어 반란을 꾸미는 일은 굉장히 흔하게 일어납니다. 또한 초월계 접경의 수십억년 동안 쌓인 문명들의 잔해를 뒤적이는 일은 진보를 선물하지만 끔찍한 재앙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인류는 감히 초월계로 넘어간 한 고대종족의 유물을 뒤지다가 ‘재앙’을 깨웁니다. 이 재앙은 초기에는 천년에 한번꼴로 은하계에 등장한다는 2급 기형체(사악한 신선)로 파악되지만 사태가 진행되면서 은하계 전체를 뒤덮을 재앙이 되갑니다...
은하계의 SF적인 ‘마신’이 깨어나고 이것을 이기기 위해 모험하는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또한 음파를 통해 다중개체 지성을 가진 다인족의 생태와 사회, 특유의 우주관, 다양한 외계종족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면서 정말 열편을 써도될듯한 아이디어가 압축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매우 재밌게 봤습니다. 추천드립니다.
PS.
아주 우연히 이 소설을 읽기 전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는 과학서적을 봤는데 그 책이랑 밀접한 연관이 있는 소설이더군요..특이점이란 인류 문명이 가속화되는 지점으로 기술이 기술발전을 자극하는 어떠한 시점이랍니다. 과학 교양서인데, 과학책이라기보다 SF적 소재로 가득한 보고의 느낌입니다..A.I, 가상현실 등등에 관한 가능한 미래 기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 볼만합니다..이 책도 같이 보면 더 재밌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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