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아야사토 케이시
작품명 : B.A.D (Beyond Another Darkness)
출판사 : 대원(nt)
진창 속에 뒹구는 보석은 아름다운가?
중학생 땐가 고등학생 때 쯤에 펫 샵 오브 호러즈라는 물건을 보았습니다. 음침한 분위기의 애완동물 가게가 있고, 고객들은 욕망을 내세워 희귀동물을 삽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댓가를 받으며 불행한 결말을 맞습니다. 대강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는 애니메이션(만화도 있던가요?)이었는데 굉장히 인상이 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비소설 무 아시나요? 전 그 중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고양이라는 녀석이었는데, 글 속에 글에 가까운 단편이었죠. 고양이에 원한을 가진 의사는 몰모트로 고양이들을 계속 사용하고, 결국 고양이들이 아주 인상적인 방법으로 완전범죄를 저지르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B.A.D도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영능력에 대한 일을 해결해주는 사무소를 이용하는 마유즈미 사무소. 그 사무소에서 마유즈미를 도와 조수 일을 하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 그리고 반쯤 혹은 훼까닥 맛이 간 의뢰인들이 가져오는 기묘하고 잔인한 사건들.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음침하고 몽한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에피소드 마다 자극이 가득한 사건을 들고 기괴한 의뢰인들이 등장하여 뒤엉키고, 파국을 맞습니다. 이 파국을 맞는 과정을 농밀하고 직설적이게 묘사하고 있죠. 딱 보면 아, 얘네들 진짜 맛탱이 갔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사람에 따라선 바로 책에서 손을 놓고 싶어질 수도 있겠군요.
대강 분위기를 파악하실 수 있게 첫번째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의 스타트는 자궁이 폐건물에서 낙하하면서 시작합니다. 한 여자가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행발불명되고, 그 여자의 '살아있는' 장기들이 하나씩 자살하는 사건이죠.
자, 이정도만 말해도 대강 어떻게 돌아가는 소설인지 감이 잡히실 겁니다. 어두침침한 방에서 무면허 의사가 칼을 들이대는듯한 자극을 준다고 할까요? 분위기를 잘 조성하고, 그걸 이용해 적절한 자극을 주는데, 이게 또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계속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합니다. 이런 괴상한 내용에 14세이고 초콜릿만 입에 달고 사는 고딕 로리타 탐정을 끼워넣으면 B.A.D가 됩니다. 어두운 배경과 소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음침한 소설답게 이 꼬맹이는 남의 불행을 보며 즐기는 종류의 인간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에 녹아듭니다. 그리고 이야기와 섞여 어두우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되죠.
이 마유즈미라는 소녀는 의뢰인들이 벌이는 난장판을 지켜보며 미소짓습니다. 투신자살하는 인간을 꼭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14세 소녀라뇨?
그런데 얘는 신기하게 큰 혐오감이 주지 않습니다. 작가가 완급을 조절해서 마유즈미도 '인간'이라는걸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끔찍한 파극을 던져 독자들을 뒤흔들었다가 사무실로 돌아와 노닥대는 주인공과 마유즈미를 그려주곤 하는데, 이런 식으로 완급조설을 능숙해게 해서 지속된 긴장으로 지치지 않게 되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으면 누가 좋아서 그런 고문을 당하려고 하겠습니까? 절정만 계속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는 법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선 B.A.D는 읽기가 편한 소설입니다. 평소에 단편을 싫어하는 저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가 다 넘어가 있더군요. 소재에 큰 거부감 느끼지 않으신다면 없어진 페이지를 보고 깜짝 놀라실 정도로 읽기 편합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마유즈미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초콜릿을 보며, 전 이 글도 다크 초콜릿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쌉싸름하지만 그 쓴맛 때문에 달콤함이 더 강조된다고 할까요? 전체적으론 분명 검회색 모노 톤으로 칠해진 글입니다만, 그 가운데엔 아주 약간, 덧없는 애절함같은 감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글이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인만큼 이런 감정들은 더욱 튀게 되는데, 그게 B.A.D의 매력입니다. 분명 어두침침한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후에 혐오감이 남는게 아니라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초콜릿을 먹고 나면 입안에 달콤함과 씁쓸함이 남는것 처럼요.
전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아마 저 말고도 좋아하시는 분이 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밝고 따뜻한 이야기도 물론 좋고, 애절하고 슬픈 이야기도 나름대로 감동을 남깁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약간의 빛이라도 밝게 보이는 것처럼, 어두운 이야기에서 남는 잔잔한 여운을 전 굉장히 좋아합니다.
진창 속에서도 보석은 아름다운가? 전 진창 속에서 빛나는 보석이야말로 진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쓰고 보니 이게 추천인지 비방인지 구분이 안되네요. 추천입니다. 꼭 사세요. 두번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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