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의성
작품명 : 스승무적
출판사 : 파피루스
이제껏 이런 주인공은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인생막장을 선보이는 과거 천하제일고수 서유경.
과거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려 한 마군과의 전투에서 온 몸의 맥이 가닥가닥 끊긴 그는 이후 엄청난 고통을 몸에 달고 무공을 잃은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내가 떠나가고 제자들도 그를 버리고 떠나가면서 그의 성격은 점차 괴팍스럽게 변하는데...
폐인처럼 살던 그는 어느날 죽음의 위협과 함께 무공을 일부 회복하게 되고, 때마침 그의 이름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무림맹의 무공사부 제의를 받으면서 그의 인생은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편과 술을 퍼마시며 인생막장을 준비하는 그가 과연 제자들을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까요?
그러한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희극적 사건을 이 소설은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스토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보지 않고도 이 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할 수 있지요.
"이 소설은 폐인과 같이 괴팍하게 살던 그가 제자들을 키우기 시작하며 이리저리 좌충우돌하게 되고 이 와중에 점차 잊었던 감정들을 되찾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와 믿음 그리고 유대감을 느껴가는 과정에서 점차 사람답게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진정 그런 이야기의 전개를 상상한다면 그건 크나큰 착각이 되어버립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좀더 엇나가, 변치않는 주인공과 그에 의해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는 네 제자를 통해 진정한 블랙유머를 보여주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인생막장에 막 나가는 주인공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포복절도할 웃음을 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변 시선에서 자유로이 행동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나름 매력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비도덕적이고 비생산적인 캐릭터도 주인공이 될 수 있구나'라며 놀라게 됩니다.
게다가 아편에 술에 여자까지 이것저것에 중독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도구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그의 고통과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에 대한 시선이 서서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 소설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재미를 만들어 나갑니다.
첫째는 주인공의 특이한 성격이지요. 미드 Dr.House에서 그러한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 또한 심한 고통 때문에 성격이 괴팍할 뿐더러 진통제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력과 재능과 결단력이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에 용케 병원에서 짤리지 않고 일을 하지요.
하지만 스승무적의 서유경은 한발 더 엇나가 있습니다. 그 또한 무공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스승으로서의 프로정신이 없습니다.
단지 고통을 잊기 위한 쾌락이 더 중요하기에 모든 것에 대충대충하려 듭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그의 행동을 무마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과거의 위명과 가끔씩 단발적이자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뛰어난 무공덕분이지요.
이때문에 그러한 특이한 성격이 서유경 캐릭터의 개성을 부각시켜키고 웃음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충분히 소설 안에 부여할 수 있었을 따뜻한 감성을 상당부분 포기해야 했고 비노력형 캐릭터이기에 스토리가 상당부분 제한적이 되었다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둘째로는 캐릭터에 대한 무관심에서 웃음을 줍니다.
소설에는 중요 캐릭터가 두명이 있는데 하나는 주인공 서유경이고, 다른 하나는 무존재감으로 웃기는 서유경의 셋째제자 ' '입니다. ' '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면서도 이름조차 밝히지 않지요.
이와같이 독특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맹신의의 등장 이후 그다지 치밀하다 느끼지 못할 사건 전개를 보여주고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사건이 평면적이라는 느낌이라 초기의 신선함이 약간 퇴색했습니다.
제자들 캐릭터가 각기 특징을 지니지만 기본 설정상의 독특한 개성에 비해 이를 부각시키고 흥미와 매력을 유발시킬만한 독창적 사건이나 전개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까웠습니다.
무공을 조금씩 회복하고 제자를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미래를 꾸며나가는 '시작'이 아니라, 과거에 풀지 않은 매듭이 찾아오고 이를 풀어내가는 '처리'가 스토리의 주를 이룬다는 것은 그냥 개인적인 취향상으로 아쉬운 점입니다. 과거에 최후까지 남아있던 다섯 제자 중에서 오의까지 훑어간 한 놈이 최대의 악당으로 등장할 것 같다는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대단히 유쾌한 소설이기 때문에 읽어서 큰 후회를 하지 않을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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