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백천유
작품명 : 혈루무정
출판사 : 로크미디어
악마전기는 최근 제가 읽었던 무협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입니다. 신인작가 백천유는 처음의 글에 과감하게 주인공 자리에 악인을 배치하고 기성작품과 달리 끝까지 악의 길을 철저하게 걷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습니다. 작품 말기에 주인공의 아들인 팽불망을 소재로 한 불망전기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 그는 전작의 200년 후를 배경으로 정파의 협객인 창룡검객 공손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혈루무정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소설은 강호신진십대고수인 창룡검객 공손탁이 한 여자를 만나 파멸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 여자의 마지막 부탁(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을 들어주려하는 것이 초반부의 내용으로 나옵니다.
혈루무정은 일단 전작의 200년 후를 배경으로 내세움으로써 전작에 호감을 가진 다수의 독자들에게 일단 점수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또한 악마전기와 마찬가지로 구무협의 향취가 느껴지는 진중한 필체와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주인공을 내세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해주었습니다.
또한 200년 전의 사건들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는 것 또한 독자의 커다란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하나 걱정되는 것은 전작의 세계관으로부터 이어져 주인공의 행보보다 전작의 사건들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더 관심이 팔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각님의 십전제 3부작에 대한 인터넷의 반응이 특히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전작의 세계관을 대부분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암중세력에 대한 큰 기대가 없다는 것과 전작의 주인공의 흔적들이 혈루무정의 공손탁에게 영향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된다면 공손탁은 온전히 공손탁으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적화린의 분신처럼 생각되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죠. 물론 작가님의 필력이 그렇게까지 방치하게 두지는 않겠지만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백상님의 세계관을 상당수 오마쥬 했다고 했지만 백천유님이 창조한 세상은 큰 매력이 있었으며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혈루무정을 통해 너무 빨리 소모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듭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이 접하는 무공, 인물, 세력 모두 전작과 연결되고 있으며 강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미 200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심지어 제 생각에 분명 200년 전의 인물인 자가 버젓이 등장하기도 합니다.(물론 다른 소설에는 누천년에 걸쳐 음모만 줄창 꾸미는 세력도 나옵니다만)
글을 읽으며 또한 눈쌀이 찌푸려지는 것은 다수의 오타와 오기가 발견되기 때문인데, 이것은 요즘 판타지, 무협에서 안보이는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신경을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단점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혈루무정은 장점이 더 많은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주인공이 어떻게 강해지고 그녀의 부탁을 수행해냄으로써 완전히 그녀에게 벗어날 수 있을지, 그의 친구들과 그는 과연 혼란한 무림계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 기대합니다. 창룡검객 공손탁의 마음에 검이 어떤식으로 흐를지 기대하며 졸렬한 감상을 마칩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