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키토아야/한성례
작품명 : 1ℓ의 눈물
출판사 : 이덴슬리벨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목을 볼때 최루성의 그저 그런 소설인줄 알았습니다. 1ℓ의 눈물이라니 너무 시적인 표현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가 현실이었고 그 1ℓ의 눈물이 한심한 눈물이 아니었죠. 한 소녀의 일생이 전부 흘러 내린 눈물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불치병을 보면 화가 납니다. 너무 진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리더군요. 그리고 나 자신이 한심해졌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소녀의 소원은 서점에 가기,달리기를 할 수 있는 것 등 아주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놓칠까봐 달리고, 지각할 까봐 달리고 놀러다니며 걸어다닐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누군가의 소원이라곤 생각하지 않고 말이죠.
이 소녀의 짧은 생을 보고 있자니 너무 가여워서 눈물이 나오려 하는군요. 이 소녀가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까지 1ℓ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되어야 하냐고 원망도 했겠죠. 그래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던 저 소녀를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YB의 노래 '너를 보내고'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삶의 작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하고'란 구절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작은 문턱조차 넘지 못해 힘겨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어 가는 동안 열심히 살지 않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났고 다른 이유로도 화가 났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며 자기를 위로하곤 합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지 않냐고 말입니다. 글을 읽어가면서 알게 모르게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나으니 힘을내자 이런 마음을 갇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소녀에게 죄를 범하는 것 같아 미안할 뿐입니다.
글 안에서도 어느 몰상식한 부모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더군요. 우리는 이렇게 무신경하게 아픈 사람에게 비수를 박는 말을 알게 모르게 많이 합니다. 이 글을 낸 아야도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힘을 내라고 한 것이겠지만 그저 값싼 동정을 보내길 바라진 않았겠죠. 하지만 읽고 있자니 동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녀와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고 비교를 하게 되는 건 말입니다.
위선이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이 소녀나 이 소녀와 같은 사람에게 해 줄수 있는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 그리고 열심히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저 값싼 동정을 보내지 말고 말입니다. 정말 별것 아닌 것을 누려보려고 했지만 누리지 못한 이 소녀는 지금 하늘에서 소원대로 지내고 있을지 아니면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 꿈꾸던 대로 달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열심히 살았던 모습 덕에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덧) 그러고 보니 일본에는 이런 강한 사람이 많군요.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씨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의 오히라 미쓰요씨도 그렇고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전에 두 사람의 책을 읽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번에도 이 아야씨의 도움을 받았군요.
덧2) 조금 말하려고 하던 것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첨부합니다. 동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동정으로 그치기만 해선 곤란하다는 거죠. 그저 동정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값싼 동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돈 10원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건 값싼 동정이 아니죠. 그저 불쌍히 여기기만 할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않고 배려도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값싼 동정이라 한 것입니다. 오해를 살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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