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백야
작품명 : 태양의 전설 바람의 노래
출판사 : 시공사(드래곤북스)
태양의 전설 바람의 노래는, 뭍한 명작을 출판해낸 드래곤북스 안에서도 다섯 손가락안에 꼽힐만한 명작입니다.
아니, 명작이 될뻔 했습니다.
작가 백야는, 그 자신의 그간 축적된 노하우와 혼을 실은 듯이 글을 썼습니다. 태양의 전설 바람의 노래. 그 결과 이 공전절후 불후의 명작이 탄생했습니다.
아니, 탄생 할뻔 했습니다.
태양의 전설 바람의 노래(이하 태양전설바람노래로 줄입니다)는 조기완결되었습니다. 8권으로 끝맺어졌지만 전체의 얼개로 보면 절대 8권에 완결이 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못해도 10권, 길면 15권까지도 갈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작가 백야는 짧아도 2권, 길면 5~6권에 달하는 그 방대한 분량을 고작 5페이지 안에 함축시키고 이야기를 그렇게 끝맺습니다.
지금까지 태양전설바람노래를 10번 이상 완독했지만, 항상 마지막 8권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나면 화장실에서 큰 일 보고 밑도 안 딲고 나온 기분이 듭니다.
저는 여러 날 생각했습니다.
왜, 대체 왜 태양전설바람노래가 조기종결되었을까? 왜 이토록 훌륭한 글임에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시점이 자주 바뀐다.
태양전설바람노래는 1권부터 8권까지 총 3개부로 구성됩니다. 1권~2권까지가 1부, 3권~6권까지가 2부, 7권~8권까지가 3부입니다. 그 중 1, 2부에 해당하는 1권~6권까지는 시점이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갑니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주인공 장문탁이 사파의 기둥인 철혈맹의 이인자 총사의 위치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쫓고 있고, 과거의 시점에선 장문탁과 남궁천인, 채소천 등 훗날 천하를 움직이게 될 몇몇 인물들이 어린 시절 조우하고 함께 행동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그려냅니다.
문제는, 다수의 독자들은 이 과거의 이야기에 큰 흥미를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시점에서 주인공 장문탁과 그의 동료들은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독자라도 주인공의 고난과 역경을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고난과 역경이 일시에 그치지 않고 무려 6권에 걸쳐서 반복된다면 말입니다.
가뜩이나 재미없고 흥미도 떨어지는 주인공의 과거사. 그런데 그 과거사가 굴욕과 오욕으로 점철된 것들이라면?? 누구라도 그것을 보고 싶어하진 않을 것입니다.
둘째, 세계관이 현재 주류와 부합하지 않는다.
장르문학에서 주인공의 강함은 불변의 명제입니다. 하얀늑대들에서 주인공 카셀이 입담이 아니라 칼로서 고절한 경지에 올랐더라면 전 하얀늑대들이 최소한 그 정도로 흥행에 참패하지는 않았을거라 봅니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수많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을 푸는 하나의 형태로 장르문학을 읽습니다. 자신이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법과 도덕, 윤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거리낌없이 살인을 자행하며 천하를 횡행하는 것. 그것을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권왕무적과 같은 소설이 잘 팔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태양전설바람노래는 그러한 공식에서 빗껴나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 장문탁은 무사가 아닌 문사입니다. 그는 책사에 가깝죠. 그 자신이 앞서 무력을 선보이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실제로 8권에 이르는 본문 속에서 장문탁이 직접 신위를 떨친 적은 딱 2번 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전부 수하들에게 맡기고 그 자신은 물러나 있죠.
이 점에서 일단 독자들은 갈증을 느낍니다.
그리고 태양전설바람노래는 기존의 무협소설과는 궤를 달리 합니다. 이 책의 세계관에서 무인의 강함은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반면 조직의 중요성이 대두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무의 절대자로 추앙받는 검신이나 권신과 같은 이들도 각각 정무련과 철혈맹이라는 단체의 포위공격 아래 패퇴하고, 정무련의 련주이자 천하제일인이라는 사곤양 역시 고수들의 포위공격으로 덧없이 죽어갑니다.
즉, 제 아무리 강한 무인일지라 하더라도 다수의 차륜전을 감당해낼 수 없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바탕에 깔아두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위의 말은 다른 장르소설에서도 통용되는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어지간한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놀라운 신위를 보이기 마련이고 독자들은 은연중 그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설 속 주인공은 상식이 통하지 않고 범인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태양전설바람노래에서는 주인공 장문탁뿐 만 아니라 고절한 무공의 소유자들 모두를 그렇게 상식 안에 묶어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두 번째 이윱니다.
셋째, 로맨스가 없다?
모름지기 영웅호색이라. 멋진 주인공의 곁에는 그를 사모하고 그를 위해 목숨마저 등한시할 수 있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넘쳐야 하는 법입니다. 끝에 가서 일부일처를 택하던 속칭 하렘물을 만들던, 모름지기 주인공의 곁에는 그런 여인들이 있어야 하는 법이고 마찬가지로 주인공 역시 어느 한 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눠야 하는 법이죠.
그런 면에서 태양전설바람노래는 철저하게 독자의 바람을 외면합니다. 8권의 야이기 속에서 장문탁의 곁에는 전부 3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조비연, 채소천, 진소유. 조비연은 장문탁이 유년시절 모셨던 표국의 국주이자 연인이었으며, 채소천은 그의 유년 시절 그의 곁에서 함께 행동했던 지기였고, 마지막으로 진소유는 철혈맹에서 그를 모시는 수하이자 그를 사모하는 여인입니다.
조비연과는 사랑했고 사랑을 나눴지만 끝에 가서 조비연은 장문탁의 적에게 강간을 당하고 실종되었으며, 채소천은 그를 좋아했지만 조비연에 대한 장문탁의 사랑으로 인해 포기했으며, 진소유도 그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지만 장문탁은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겁니다.
제가 든 세 가지의 원인은 모두 장르문학계의 세태와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봅니다. 결국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흐름을, 세태를 쫓지 못한다면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태양전설바람노래가 제대로 된 완결을 맞았다면, 쟁선계, 군림천하 등과 더불어 한국무협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아쉽습니다.
Comment '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