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장경
작품명 : 철산호
출판사 : 로크미디어
# 1
어쩌면 사람은 스스로가 추억이라 명명하는 단어 아래 일정한 선을 긋고 자신의 기억을 가두면서 자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는 무협의 재미를 고삐리 시절이던 90년대 중반무렵 보았던 그것들로 한정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통 재미도 없고 흥미도 떨어지고 읽으면 머리가 텅 비어가는 듯한 현상에 이제 그만 접을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지요.
그러함에도 몇몇 빛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과 그들이 쓴 작품이 있어 지갑을 털어 책을 구입하게끔 만드는데 그 몇몇 빛나는 작품중의 하나가 '철산호'입니다.
# 2
철산호(鐵山虎), 곽검영. 철산에 사는 호랑이. 단지 그녀-대산인의 손녀 단여원-의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에 덜컥 동창의 손아귀에서 그녀를 구했다가 어느새 녹림의 총표파자를 자청하게된 사내. 전(前) 귀호당 당주. 현재 아흔 아홉개의 칼 산, 백개의 불의 강을 건너야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도는 철자성의 성주.
이름보다 별호 '귀호'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사내 곽검영과 그의 곁에 봄날 벚꽃을 흩날리는 포근하고 따뜻한 바람처럼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대역죄인의 손녀라는 낙인이 찍힌 단여원과 결코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는 호랑이 귀신이 들린 사내에 대한 이야기.
# 3
귀호에게 이모와도 같았던 은 각주가 다녀간 후 귀호는 해타를 부릅니다.
『"해타야."
나는 해타를 불렀다.
해타가 다가왔다.
"강남은 봄이라는구나."
"그렇겠군요."
"봄노래 아는 거 있냐?"
"봄노래? 노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건 당주께서 알잖아요. 히히히."
해타가 태평소 주둥이로 머리를 긁적였다.
"봄노래라고 생각하고 들을 테니 아무 노래나 불러 봐."
"알겠습니다."
놈이 태평소를 닦았다.
귀 찢어져라 높은 가락······.
"봄이로세.!"』
봄의 기운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여름이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6월의 지금, 이 장면을 읽을때면······ 눈매가 늘어지고 말은 느릿할 것 같은 해타의 태평소 소리가 더위를 파고들어, 삶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이가 여기 있다고 온몸으로 생에 부딪쳐온 사나이가 여기 있노라고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음··· 그렇습니다. 사실 전 철산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해타를 제일 좋아합니다.
# 4
통천방 귀호당주가 아닌 철자성의 성주로 다시 통천방을 찾은 귀호에게 그 옛날 아니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을 예전의 수하들이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말을 합니다.
『"그때 일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반장을 하는 놈이 말했다.
"그때 일이라니?"
다른 놈이 물었다.
"유계하의 일전 기억나?"
"왜 기억을 못 해. 굉장했었지."
유계하는 소호와 연결되어 있었다. 안휘 일대의 주도권을 다투는 싸움이었으니 연일 피의 접전이 벌어졌었다.
"그때 당주께서는 반장이었지. 나는 조장이었고. 접전을 앞둔 순간 워낙 큰 싸움이라 간금양도 긴장이 되었는지 문득 당주에게 말했어. 반장으로서 반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말을 한마디 해라··· 당주께서 멋쩍어하며 말씀하셨는데 뭐라고 했을 것 같아?"
"우리는 귀호당이다. 귀호당이 왔다. 쳐라··· 했겠지."
"그때도 귀호당이라는 말이 있었던가? 어쨌든 아냐.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엉뚱하게도 막내를 데려오라는 거야. 방금 본 양원함 그녀석이었지. 그때 놈의 나이가 열여섯이나 되었나? 고참들도 긴장해 있는 판에 녀석이야··· 잔뜩얼어붙은 녀석을 곁에 세운 후 말했지. 이 녀석만은 우리가 지킨다······."
"흠. 당주다운 유치한 말씀을 하셨군."
한 놈이 히죽거렸다.
"맞아. 유치했지. 그런데 그 유치함이 싸움에 있어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지. 놀랍게도 그 치열한 싸움에서 우리 반원들 중 죽은 자는 아무도 없었어. 대여섯 명의 부상만 기록했을 뿐이지. 무엇 때움이었을 것 같아? 친구들이여, 유치함이 우리를 강하게 했노라. 양원함이라는 녀석을 축으로 쇳덩이처럼 똘똘 뭉쳐 달려갔기에 절대 깨지지 않는 무적진형이 형성된거야. 아, 아. 생각하니 그 시절이 정말 그립군."』
아! 그 유치함.
그러함에도 주먹을 불끈쥐었던 긴장감. 그리고 가슴 설레게 했던 그 느낌.
그리하여 저는 한 마디의 말을 내 뱉고야 말았지요.
"······ 이거거든!"
# 5
작년에 완결된 이 책은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바람은 이런 책들이 쇄를 거듭하여 찍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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