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꼭 중세 인물들만 나오진 않습니다.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참 별걸로 다 죽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한 정치인은 시민들이 존중의 의미로 던진 망토에 깔려서 죽었고, 에피로스의 피로스 그 대단한 지휘관은 왠 아낙네가 던진 돌맹이에 머리를 제대로 맞아 죽었고,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대략 80년정도 살벌하게 벌어진 이탈리아 전쟁을 마침내 끝낸 앙리 2세는 마상창 시합을 벌이다 부서진 나무 마상창 조각이 눈을 꿰뚫어 죽었고. 너무 웃다가 의자가 뒤로 넘어가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는 사람들중 많은 사람들을 보면 감염과 괴사로 죽습니다. 리처드 1세, 흔히 사자심왕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이 잉글랜드의 왕은 석궁 화살에 맞은 상처가 괴사되어 죽었습니다. 오크니의 야를 시구르드는 적장의 목을 베서 말 안장에 걸어두었는데 말을 타고 돌아가던 도중 시체의 이빨이 다리를 긁고 그 상처가 감염 -> 괴사되어 죽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감염 -> 괴사 트리 타고 죽었죠. 현대에 들어서서 과거의 시체들을 발굴해낼 때 괴사의 흔적을 발견하는 경우도 제법 잦고요.
근데 소설보다가 괴사라는 단어를 본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온몸에 온갖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 이 사람이 상처나 출혈 때문에 죽지 않는다해도 상처가 감염되고 썩어가고 괴사되서 죽을겁니다. 아니면 죽기전에 괴사 된 부위들을 도려내서 평생불구로 살아가던가요. 물론 소설들에는 편한 변명이 있지요. 마법, 마나, 기, 그런 것들. 왠지 위대함이라는 것을 범접 불가능과 연루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정말 쉽게 꼴까닥하고 죽죠.
프랑스 왕 앙리 4세, 대단한 인물입니다. 프랑스 종교전쟁을 끝내고 프랑스를 사로잡고 피폐하게 갉아먹어가던 종교분쟁을 포용으로서 해결하려했고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프랑스에 다시금 풍요와 부유를 되돌려주었습니다. 프랑스는 유럽의 온갖 분쟁이란 분쟁에는 다 사로잡혔으니 제법 의미 깊은 평화였지요. 1337-1453년간의 길고도 살벌했던 백년전쟁, 1494-1559년간의 역시나 길고도 살벌했던 이탈리아 전쟁, 1562-1589년간의 더더욱 핏빛으로 물들었던 프랑스 종교 내전, 그리고 마침내 그 후에 찾아온 1589-1610의 평화.
이렇게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하고 대단한 능력과 포용력 역시 갖추었던 앙리 4세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암살자의 손에 그냥 죽습니다. 끝.
리차드 1세, 혹은 사자심왕 리차드. 이쪽은 대단한 인물이라 말하기엔 좀 논쟁이 많은 편이지만 용맹한 인물이라 말하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3차 십자군에서 온갖 용맹을 떨쳤고 그 후에는 프랑스의 필립 2세를 상대로 프랑스에서 수없이 전쟁을 벌였던 인물. 플랜태저넷 왕조가 거느리고 있던 프랑스의 막강한 영지들, 아끼뗀 공령, 앙주 백령, 노르망디 공령, 필립 2세의 군대는 이러한 막강한 영지들의 많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점령할 수 있었지만 사자심왕 리처드가 성지로부터 돌아온 이후로는 오히려 치명적인 패전을 여러차례 겪기까지 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사도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인물이였지요. 이런 인물이 과연 죽을 수나 있는걸까요?
죽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한 소년의 손에 의해서요. 반란을 일으킨 자작의 성을 공성하던 중 리처드는 갑옷을 걸치지 않고 공성진영을 시찰하러 나왔습니다. 한 소년은 그런 리처드를 겨냥해 석궁 방아쇠를 당겼고, 리처드는 어깨와 목 사이에 화살을 한대 맞았습니다. 화살은 곧 뽑혔지만 그 상처는 감염되고 괴사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리처드는 그냥 죽었습니다. 끝.
프리드리히 1세, 혹은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라고 더 잘 알려진 인물. 이 인물 역시 제법 대단합니다. 콤네노스 황조의 부흥기를 이끈 비잔틴 제국의 마누엘 대제와 함께 막상막하로 결투를 벌이며 이탈리아와 온 기독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했으며, 여러차례 상당한 우위를 거두어내기까지 했습니다. 마누엘 대제가 결국 죽고 비잔틴 제국이 혼란에 사로잡히자 희대의 패권다툼은 프리드리히 1세의 승리로 끝나는듯 싶었지요.
그러다 3차 십자군이 터졌습니다. 기사도의 상징이자 기독세계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는 대군을 이끌고 참전했습니다.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가 십자군에 참전하기 위해 10만 대군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 숫자 자체는 상당한 분쟁과 논쟁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가 일으킨 군대가 어마어마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1세와 필립 2세의 십자군 만으로도 살라흐 앗 딘은 상당히 고전했는데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 기독세계의 황제가 몸소 이끄는 대군이 성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모든 십자군중 가장 무시무시한 규모로 벌어졌던, 십자군중의 십자군인 3차 십자군이 기독교의 승리로서 끝났을지도 모르지요. 대체 이 위대하고도 막강한 황제와 신성로마제국의 십자군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던 것일까요?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가 군대와 함께 도강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10만 대군은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의 시체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끝.
그런 점에서 얼불노가 참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걍 한번 끄적여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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