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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보니 동물실험이 단순히 동물도 아픔을 느끼고 괴로워할 줄 아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불쌍해서’ 혹은 ‘안타까워서’ 실험을 반대한다고 믿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지나가다가 이에대해서 꼭 몇마디 덧붙이고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물론 동물실험 반대의 캐치프라이즈가 널리퍼지는 과정에서 특히 일반 대중들에게는 애묘가, 애견가 등 스타나 특정인에 의해 알려지거나 온정주의적인 동물실험 반대만이 부각되어서 그렇게만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게다가 그 중에 어느정도는 진실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것들이 일부 악의적인 동물실험 찬성론자들의 입장에서 가장 공격하기 쉬운 이유라는 점에서 그런 일방적인 오해는 약간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같네요. 겉만 보고 판단하지말고 좀 더 다른 입장에서 파고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결국 더 큰 인간의 생명을 위해서’ ‘건강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동물실험은 행해져야하며 이런 관점에서 볼때 그저 동물이 사랑스럽고 또한 ‘불쌍하고’ 가여워서 반대하는 건 지독한 이기주의이거나 무개념, 일의 경중을 판단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사실 얼핏보기엔 매우 타당해보이나 오해로부터 비롯되거나 일부 찬성론자들의 선동에 말려들어 나오는 의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동물실험의 반대는 그 피상적인 부분만은 놓고 이야기 하는 바가 아닙니다.
설명하기 복잡한 문제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인간 복제로 예를 들어볼까요? 인간 복제라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부정적인 이미지도 제법 있을겁니다. 인간의 존엄성 모독, 정체성 상실 등등.. 그런데 인간 복제의 예비단계인 동물 복제, 심지어는 식물세포의 복제조차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말이 안되지요. 아니 인간 존엄성이 문제시 되는데 왜 인간이 아닌걸 복제하는 것까지 반대하고 난리인걸까요? 답은 바로 그런 인간 외의 복제가 인간복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역사가 증명해주듯 시작은 언제나 전체의 일부로부터 시작합니다. 아주 작은것, 지극히 온당하고 타당해 보이는 행위지만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인정해버리는 순간 그것이 바로 그 ‘일부’ 이자 ‘시작’ 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과 일부는 결국 전체가 되버립니다.
말이 너무 어려워지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동물 실험’ 은 단순히 그 실험용 몰모트 동물이 ‘불쌍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저 동물이 불쌍해서 반대하는 분들도 많겠지요.) 동물 실험을 아무렇지 않게 허용하고 확대한다면 그것은 나아가 매우 비극적이고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이나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환자들의 구제나 인류의 건강이란 이유하에서 동물실험에 지속적인 반대와 인륜적인 입장에서의 지적, 그리고 비판적인 시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은 또다른 비극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몇몇 극찬성주의자들의 선동처럼 동물실험 반대론자들은 ‘환자들이 약이없고 치료를 못받아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외면하고 한낱 동물의 인권이나 운운하는 꽉막힌 멍청이들’ 이 아닙니다. 많은 오해와 선입견들과는 달리 지성있는 반대론자들은 동물실험을 완전히 없애자는 터무니없는 주장 따위는 전혀 하지않고 있습니다. 다만 가급적이면 자제하고 동물실험을 너무나 쉽게 일말의 죄책감없이 하게되는 사태를 막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런 사태는 나아가 먼 미래에 ‘인체실험’ 조차도 정당화하게 만드는 ‘시작’ 이자 ‘일부’ 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끔찍하고 지금으로썬 말도안된다고만 여겨지겠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복제가 이루어져서 인간이 자기 돈과 노력을 들여 자신의 건강을 위해 자신의 클론을 키워낼 수 있다고 칩시다. 그 인간은 그저 만들어 져서 먹고자고싸는 것만 할 수 있을뿐 아무것도 못하고 심지어 생각조차도 하등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육해서 우리 몸에 일어날 질병들을 이겨내기위한 생체실험의 도구로 씁니다. 과거 인간이 아닌 동물들로 했던 실험보다 몇배는 더 의학발전에 효과적이고 즉효적입니다. 각종 약물에 대한 반응실험, 새로 개발한 신약에 대한 테스트, 위험성 테스트, 중독 실험, 사망 실험, 해부.. 등등등.. 죄책감 같은 것은 없습니다. 왜? 그건 그저 하등한 동물이고 인류의 의학기술의 발전과 삶의 윤택을 위해 만들어내고 키워낸 동물들일 뿐이니까요. 보다 더 큰 인류 의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그것을 막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의 동물실험 극찬성주의자들의 의견과.. 동물이라는 단어가 복제인간 으로 바뀌었을뿐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심지어는 어느정도는 타당해 보이기까지 하지 않나요?
죄송합니다. 불쾌한 비약을 하게되어서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건 단순히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의 나래가 아닙니다.
이것만은 알아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해서 입니다.
동물실험 반대의 진의는 ‘동물이 불쌍해서’ 가 아니라 날로 각박해지고 자연과학 기술, 의학 기술 등에만 매달리고 있는 인류에게 진정한 의미의 ‘인간성’ 과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인간다움’ 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속적으로 자각시키는데에 있습니다.
적어도 저는 동물실험 반대를 그러한 견지에서 배웠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물실험 반대를 너무나 실리적인 입장과 실용적인 입장에서 판단하여 반대론자들을 ‘앞뒤 꽉막힌 멍청이’ 나 ‘과한 동물애호가’ 로만 쉽게쉽게 생각하기보다는 이런 점들을 한번만 더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 물론 그렇다고 찬성론자의 의견이 틀렸고 반대론자의 의견이 맞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반대론자이지만 동물실험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성론의 입장도 분명히 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론의 필요성 역시 그에 못지않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옳은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흑백논리가 아닌, 표면만을 보는 것이 아닌, 그런 생각을 문피즌들이 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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