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피일 미루던 치과,
결국 일주일 전에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전 이야기를
왜 오늘 하냐고요?
어제 다녀온 게
'본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별의 별 검사를 다 받았지만,
다행히 이상은 없었습니다.
한 군데 빼고요.
'치아'.
꽤 안 좋다고,
꼭 가라고 검진 의사 선생님이 그랬지만...
저의 얇은 지갑과
치과에 대한 두려움이
지금까지 저를 붙들었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아내의 설득에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십 몇년만에 처음 간 치과.
엄청나게 많이 변했더군요.
첫 번째로 인상깊었던 건,
엑스레이였습니다.
치과에서 엑스레이?
이게 저의 첫 반응이었지요.
대박이더군요.
이를 벌리고 턱을 괴고 있으면
레이더 같이 생긴 엄청난 기계가
몇 바퀴씩 제 머리를 두르더니...
3차원으로 촬영한 걸
2차원인 엑스레이 사진에 펼쳐서 옮겨 담아
저와 의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2020년이 주는 무게감을
새삼스레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제가 나이에 비해,
잇몸이 많이 주저앉았대요.
그래서 스케일링으론 안 될 단계고,
앞으로 평생동안
잇몸치료를 규칙적으로 병행해야 한답니다.
...휴.
저는 이빨을 잘 닦기에,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하지만 이 놀라움은,
다가올 놀라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충치가 4개나 있대요.
그런데 새로 썩은 게 아니라,
어렸을 적에 '아말감'으로 때운 곳이
손상되거나 아예 떨어져 나가서
충치가 악화한 부위랍니다.
"그런데, 왜 이게 더 놀랍다고 말함?"
"잇몸 주저 앉은 게 더 심각한 거 아님?"
...이라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저도 그때까지는 잇몸 때문에
쇼크를 받은 상태였는데,
그게 '상담실'에서 뒤바뀌게 됩니다.
'상담실'
말이 상담실이지,
환자 겁박하면서
최고의 견적을 뽑는 곳이더군요.
다행히 잇몸치료와 스케일링은,
보험의 범주 안에 있어서
큰 비용이 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난생 처음듣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옵니다.
'인레이'
괜히 아는 척하려고
'아말감' 이야기 꺼냈다가
무시 섞인 눈총만 잔뜩 받았습니다.
동시에,
요즘 환자분들은 모두
인레이로 충치 치료를 한다며
엄청난 압박감을 받기도 했지요.
제가 어렸을 적엔,
'레진'이 정말 고급 치료였고
저 같은 서민은
'아말감'으로 충치를 치료받았거든요?
가격도 기억나요.
'아말감'은 개당 1만원,
'레진'은 개당 5만원.
그러나 이젠...
아말감은 아예 취급도 안 하고,
레진하고 인레이만 있답니다.
상담 의사가 말하기를...
"레진은 너무 쉽게 벗겨져서 내구성이 약하다"
"이빨은 평생 가는데 튼튼하게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식의,
화려하면서 공격적인 언변으로
저를 몰아 세웠습니다.
저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저항하겠습니까.
당연히 전문가의 말에
굴종했지요.
인레이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격동이 일어납니다.
하나에 30만원이라더군요.
총, 네 개니까...
삼 사 십이,
120만원이네요?
잠시만, 눈물 좀 닦고...
그때의 굴욕감이 다시 떠올라서요.
애초부터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는 척하며
레진을 고집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그저 '구두쇠'라는
무언의 힐난만 받으면 됐겠지요.
그러나, 인레이로 결정했다가
가격을 듣고 나서 레진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제 말을 듣던 상담 의사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모습,
제 자존심의 피해량과 정비례하더군요.
"여보, 그냥 인레이로 하자.
어차피, 이빨은 평생 쓸 거니까
할 때 제대로 치료하는 게 좋아요."
옆에서 듣던 아내,
못난 남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결국 상담에 개입하게 됩니다.
평소 같았다면, 저는
"아냐,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해. 아끼자고."
...라고 말하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저는
자존심에 매우 큰 상처를 입었기에,
"그, 그럴까...?"
...라고 말하며 바로
넙죽 아내의 제안을 받는
추태를 보이게 됩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아내에게 참 고맙네요.
저는 그때 이빨을 치료받으러 치과에 갔지만...
제가 그곳에서 치료받은 건 이빨이 아닌,
저의 자존감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있어 최고의 아내는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아내'임을
다시 한 번 복습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경험을 저로 하여금
다시 회상하게 만들어 준 계기,
어제의 충치 치료.
계속 이어나가려 했는데,
지금까지 쓴 글의 길이가 이미
엄청 길더라고요.
여기서 끊고,
다음에 이어가기로 결심합니다.
원래 글 솜씨가 없는 사람들이
간략하게 쓰지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 놓으며
읽는 사람만 지치게 하는데,
제 이야기네요.
여러분들의 치아,
건강한가요?
치아가 건강하지 않다면,
배려심 깊은 아내가 있나요?
'이빨이 건강하지 않다면
남편을 존중할 줄 아는 아내를 가져라.'
...오늘 이야기의 미친 결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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