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이 다소 정돈되지 않고 오락가락함에 양해를 구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며칠 상간에 두 개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모두 공격적이었죠.
한데, 이건 공격성을 떼고 보면 세대차이로 보여지더라구요.
8~90년대생은 꽤 빡빡하게 국어를 배웠고, 언어의 필요를 알고 자랐습니다.
그 이전 태생은 가정에 여유가 없으면 학업보다 생업에 더 치중해야 했고, 그 이후 태생은 언어영역은 돈이 되지 않고 비중이 크지 않기에 자연 뒤로 미뤄두는 공부가 되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가져오자면 제 생각은 맞춤법은 그래도 필요하고, 중요하며, 배울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한국어를 사용해서 메신저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하지만 둘은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서로 기분이 상하는 오해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일은 생각보다 매우 흔한 일입니다.
맞춤법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게 되면 뭐 저런 걸로 지적을 하고 그러나 하기 쉬운데, 국어는 세종대왕께서 발음을 기준으로 잘 만들어둔 데다가 한자 문화권에 속한 우리말은 같은 발음으로 여러 뜻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대로, 어린 사람들은 어린 대로 국어의 단어를 공부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수능 국어를 언어영역이라고 바꿔 부를까요.
영어는 그렇게 단어 하나 문법 하나 빡빡하게 외워가며 토익이니 텝스니 하지만 언어는 그저 대충 뜻만 짐작할 수 있으면 된다고 뭉갭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대다수는 헷갈리는 발음 몇 개, 함정을 파서 변별력을 키울만한 것 몇 개를 제외하면, 국어의 언어적 특성보다는 글에 집중합니다.
가르치는 이도 관심이 없고, 배우는 이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해서 국어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소설 플랫폼 아니랄까봐 독자와 작가로 나눠 입장 차이에 따른 이야기가 오가는 걸 보며 재미있었습니다.
제 눈엔 두 분 모두 꼰대로 보이기도 했으며, 두 분 모두 그럴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모두가 완벽한 국어 맞춤법을 구사하긴 어려운 일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실생활과 동떨어진 문법을 멋대로 바꿔 내놓기도 하며, 지방의 사투리를 무조건 교정하려 하며, 때론 잘못된 정보를 내놓아 혼선을 주기도 합니다.
학교의 선생들은 뭐가 다를까요?
아이들이 잘못 아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선생이 제대로 알지 못해서이기도 합니다.
지적하는 사람들도 그 지적 수준에 따라 본인이 알지 못하는 어법을 틀렸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그 근거로 국립국어원을 댈 뿐 말의 변천사를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그리고 이 기본이라고 말하는 것의 범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에겐 한글은 여섯살에 다 떼고 학교를 가는 정도의 난이도에 불과한 일입니다.
열 살이 되기 전 이미 책을 읽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중학생이 될 무렵엔 정감록을 읽고 이해할 정도의 어휘력을 갖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학교의 수업을 따라가기만도 벅찰 수 있습니다.
받아쓰기로 체벌을 받으며 늘 문제집을 보고 기출문제를 외워가며 익혀야 하는 영역일 수 있습니다.
구태여 구분하자면 전 제 기준에서 기본이라고 생각되는 영역을 틀리는 사람은 그 개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기대치를 낮춥니다.
일정 수준의 맞춤법을 구사하는 건 기본적인 일이고, 그럴 필요가 있는 공간과 아닌 공간을 구분하여 서로가 격식을 갖추지 않는 편한 관계라거나 의도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조금쯤은 무시하게 됩니다.
방송에서 수도 이름 맞추기 따위를 상식이라고 읊거나, 영어로 1월부터 12월까지의 스펠링 따위를 상식이라며 들이밉니다.
적어도 전 맞춤법은 그에 우선하는 상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자란 교육과정에서 주입된, 세뇌된 애국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엔 여러 사람이 있고, 전 꽤나 보수적인 타입이며, 인간관계에서 손해보길 바라지 않습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가 날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것을 탓하기만 하는 건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건 사회적인 운동이나 공감, 이해가 필요한 것이지 개인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건 결국 역지사지하면 똑같이 되돌아올 문제이니까요.
물론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습니다.
그건 제가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드니까요.
규칙이란 건 어기기는 쉬운 일이나 지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으면서도 생각하길, 사람은 어차피 생긴대로 삽니다.
기준점은 쉬이 변하지 않을 테고, 누군가는 여전히 모든 공간에서 맞춤법을 지적할 것이며, 누군가는 그걸 더러 프로불편러라 욕할 겁니다.
전 그 둘 중 어느 누구도 아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선 너무 쉽고 당연한 맞춤법을 단순히 타자의 실수가 아닌 몰라서 틀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걸 본다면, 상대의 지적 수준을 낮잡아보고 그에 맞는 응대를 할 것 같습니다.
선입견이 나쁘다라고만 하지, 그러한 선입견을 갖게 하는 이미지를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정론적인 이야기일 뿐, 본인에게 해가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또한 선입견이라 볼 수 있겠으나, 멋대로 오해하고 타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며 불필요한 공격성을 남발하거나 상대의 호의를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일련의 모든 오해 또한 글을 제대로 쓰고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며 여러 차례에 걸쳐 느꼈지만, 독자는 생각보다 더 전문적이고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똑똑하며, 작가가 떠올리지도 못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독자는 생각보다 더 무지하고 단순한 단어의 함의 따위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육의 평등을 인권의 하나로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적 수준의 보편적 평등이 그 삶의 질에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이 글을 쓰면서 참 조심스럽습니다.
전 경제력의 유무, 힘의 유무 등과 함께 지식의 유무 또한 일방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래서 생각합니다.
상대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상대의 무지를 탓하고 모욕하는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생은 곧 배움이라 했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모든 순간에서, 굳이 날을 세우고 벽을 쳐 밀어내기만 하는 것은 이 또한 다른 방식의 피해의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커리큘럼을 짜고 그에 맞춰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답답해 학원 등에서 배움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때론 쉽게 학원을 찾고, 수 개월 후에 자격증을 취득하건, 스스로 만족할만한 배움을 얻건 하는 이들이 부러웠습니다.
또 한편으론 쓸데없이 남이 만들어놓은 규격에 맞추는 짓이라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전 그 시간들이 부끄럽네요.
두서없이 나열된 글인 탓에 마무리도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사용하는 맞춤법에 틀린 것이 많다면, 일부의 사람들은 날 헐뜯고 비방하거나 내심 나를 낮춰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국어가 모든 순간 흠을 잡기 어렵다면, 그러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겨우 맞춤법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상대방이 나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못난 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설령 상대의 말에 악의가 담겨있더라도 그것을 비껴낼 수 있다면 결국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닐까요.
삶은 결국 내 인생이잖아요.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 중 어떤 한 부류에게 호의적일 수 있다는 것.
그 정도의 가치로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몰라도 돼! 보다는 알아서 손해볼 일은 없는 일.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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