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판무 소설들이 전보다 질이 떨어졌다는 글이 많이 보입니다. 전부 똑같이 획일화되서 이게 저거같고 저게 이거같다던가 또는 너무 일본풍이라는 지적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확실히 요즘 보이는 글의 대다수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본적 없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본것같은 기시감이 든다고 할까요? 어째선지 앞으로의 전개가 전부 눈에 훤히 보입니다. 소설이 지나치게 가벼워서 다음 내용을 빨리 읽고 싶다는 기대감이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고양감이 전혀 없어요. 어느날 갑자기 연중한다고 하더라도 약간 짜증만 날 뿐, 밥한끼 먹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고 볼만한 소설을 찾겠다고 끄적거리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죠.
당연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판무 소설로는 제대로된 주제의식이 있으면서도 시간가는줄 모르고 재밌게 볼 수 있는 글을 쓸수 없나? 하고 말이죠. 아마 판무 소설을 본 경력이 꽤 되는 분들은 고개를 저으실 겁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장르소설을 이끌었던 ‘드래곤 라자’ 라던가 ‘룬의 아이들’, ‘천마군림’ 같은 작품들은 훌륭하게 주제의식을 녹여내면서도 눈을 땔 수 없는 즐거움을 주었죠. 저도 ‘드래곤 라자’로 처음 판타지 소설을 접했습니다. 룬이 아이들 같은 경우는 보다가 너무 힘들어(제가 눈물이 많아요ㅎㅎ) 도중에 몇번이고 포기할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순전히 재밌기 때문에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무거우면 재미가 없다는 둥, 장르 소설에 무엇을 바라냐는 둥 그런 식의 변명은 이전 사례가 있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재미와 내용,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됬죠.
물론 모든 작가분들이 저정도의 글을 쓰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인건 압니다. 대게 장르소설 작가분들은 하루 쓴 글로 하루 생활을 영위하시니, 무엇보다 많은 독자를 끌어모으는데 주력하는게 당연하죠. 아무리 글의 질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생활을 위해 글 쓰는 작가에게 질이 낮다고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루에 한편씩 연재하길 원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만족하면서 글의 수준까지 신경쓰기에는 24시간이 너무 짧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해도 너무 가볍습니다.
확실히 먹고 살기 위해 오직 눈길 끄는 설정과 멋진 연출로 채워진 글도 잘못된건 아닙니다. 주제의식?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극적인 설정’ 과 ‘억지스러운 연출’ 로 도배된 글이 넘쳐난다는 겁니다.
상업성만을 중시해서 히트친 대표적인 작품은 ‘월야환담’이 있습니다. 꽤나 흔하게 볼법한 소재고 이것의 설정도 한국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미묘한 부분이 있지만, 분명 재밌었습니다. 그렇기에 미친듯이 히트를 쳤고요. 물론 작가님의 훌륭한 필력도 한몫 하셨겠지만, 그에 앞서 작가님이 머리를 쥐어싸매고 고민한 시간들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최근 혼이 비정상이신 그 분이 말했듯 “전체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보인다.” 라고 할까요? 그런데 요즘의 글들에서는 이런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상업성을 중시한 글이라곤 하더라도 먼저 대강 틀을 잡고 설정을 짠 다음, 독자들에게 잘 팔릴만한 장면을 모색해야지, 그냥 오로지 멋진 연출만 신경쓰고 좀 막혔다 싶으면 사이다로 들이부으니 한탄이 나올 수 밖에요. 탈고나 제대로 하는 건지 오타가 수두룩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게 불만이면 다른 소설을 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얼음과 불의 노래’ 같은 소설을 읽으라고요. 100원내고 보는 소설에 뭘 그리 바라는게 많냐고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저에겐 부당하다고 생각되더군요. 절이 불만이면 절을 떠나라는 식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가령 나라의 경제가 위험한 지경이 이르러 문제를 지적한 것을 가지고 나라를 떠나라고 말한다면 그 나라는 어찌 되겠습니까? 변화를 위한 시도나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처음부터 배재하고 펼치는 주장은 반동주의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식의 주장은 침몰하는 배를 고치려고 하지 않고 불만있으면 다른 배를 타라고 주장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점차 질이 낮아지고 불만이 쌓이면 시장 자체가 죽어버릴 것이 뻔한데 어찌 장르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습니까?
저는 재밌는 우리나라의 소설을 보고 싶은 거지 무작정 재밌는 소설만을 추구하는게 아닙니다. ‘반지의 제왕’이 아무리 재밌어도 어딘가 이질적인 반면 ‘드래곤 라자’는 중세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게 와닿죠. ‘영웅문’ 시리즈는 분명 재밌지만, ‘비뢰도’ 가 더 잘 읽힙니다. 이런 식으로 글의 질과는 별개로 자국민의 소설이 더 잘 와닿는 것은 같은 역사와 가치관을 공유한 공동체의 일원이기 더 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 글을 찾게되는 이유인 것이고요.
이만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장문의 글을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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