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치칙…
프라이팬에 흥건하게 부어놓은 식용유가 거듭된 가스불의 가열을 이기지 못할 찰나 허겁지겁 달걀 몇 개를 깨트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흰자와 노른자가 익어 들어간다. 처음에는 질서를 찾아가려는 듯한 백(白)과 황(黃)이었으나 어느 순간 서로 뒤엉키며 열기를 피해가기 바쁜 모습이다. 불이 너무 센 관계로 금새 탄내가 후각을 자극하면서 밀고 들어온다. 얼른 불을 줄이며 나무주걱을 꺼내들었다. 밑바닥부터 살살 긁어내렸다. 눈으로 보이는 윗부분은 아직도 채 익지 않은 반숙상태였지만 보이지 않는 아랫부분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으리라.
(사람 사는 것도 이와 같을까?)
달걀프라이를 뒤집으려다말고 또다시 엉뚱한 상상으로 머리 속의 형광등이 자극 받는다.
깜빡깜빡…
형광등은 느리고 희미하게 겨우겨우 반짝거려보려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저러나 요즘 따라 프라이가 왜 이리도 안 되는 것이지? 예전 같으면 나무주걱의 움직임을 따라 자연스레 뒤집어질 것들이 요즘은 프라이팬에 달싹 엉겨붙어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안하고 있다.
(젠장! 어쩐지 싼 게 비지떡이라고 이름도 없는 회사의 식용유를 사는 게 아니었어…)
프라이팬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런 증상이 벌어진 것은 식용유를 새로 산 다음부터 였으니까 말이다. 몇 백원 아끼려다가 프라이를 할 때마다 고생이 말이 아니다. 검은 프라이를 먹을 수는 없는지라 일단 가스불을 줄이고 숟가락으로 계란을 조각조각 찢어 뒤집었다. 그나마 이렇게 해야 익지 않은 윗조각을 살릴 수 있으리라. 밥 한끼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프라이팬은 인생이라는 큰 틀이요. 껍질을 깨고 나온 달걀의 알맹이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가스 불은, 으음… 하나 하나를 익혀주는 세상의 순리정도라고 해둘까? 나 원 참, 엉망이 된 계란프라이를 앞에 놓고 별 이상한 상상을 다하는군. 하지만 이왕지사 해본 상상 조금만 더해볼까. 그러면 이번에는 또 뭐가 남았을까? 아 소금은 인생의 중간 중간에 나타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쾌락이라고 하면 되겠고, 식용유는 그런 마음이 인생이라는 틀 속에서 자연스레 잘 굴러가도록 해주는 양심이나 예의라고 하면 맞으려나?
에이! 그러면 뭐해? 결국은 밑은 그을리듯 타버리고 윗부분은 반숙이 되어버렸는데… 이게 다 망할 놈의 식용유 때문이야. 며칠 후 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앞 동 아파트에 사는 어느 아주머니가 해주신 말씀인데 왜 진작에 그런 것을 몰랐는지 싶다.
"총각, 혹시 프라이팬에다가 라면 같은 것 끊여먹지 않았어? 뭐? 끓여먹었다고… 이런, 이런 밥도 볶아먹었어? 그러니까 그렇지. 이 프라이팬이라는 것은 말이야. 보기하고 다르게 꽤나 예민해서 다른 것을 자꾸 해 먹으면 계란프라이가 잘 안 된다고,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소용없어. 나 같은 경우는 그래서 계란프라이용 프라이팬과 아무 것이나 다할 수 있는 다용도 프라이팬 두 개를 따로 구분해놓고 쓰고있지. 혼자서도 쓱쓱 요리를 잘해먹는다는 총각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것은 모르고 있었구먼."
문제는 항상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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