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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대대장, 너 이 새끼. 이리와 봐

작성자
Lv.39 파천러브
작성
05.02.02 20:46
조회
383

[오마이뉴스 안병기 기자]# 회상1

폭력은 스스로 포만감을 누릴 때까지 계속된다.

1978년 2월 6일, 난 스물 다섯이란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했다. 당시 내 몸무게 43kg. 이미 두 차례나 무종 판정을 받은 전력이 있었으므로 몸무게 45kg 이하인 내 체격조건은 소집면제를 받고 바로 예비군에 편입되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난 징병 담당 의사에게 제발 몸무게를 올려 적어 군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군대 안 가려고 며칠씩 밥을 굶고 징병검사 받으러 오는 놈들도 있는데 말야. 넌 어떻게 된 놈이 몸무게를 올려달라는 거야? 공부는 계속 안 할 거야?”

별꼴이 반쪽이라는 듯이 날 쳐다보는 의사에게 난 다시 한번 몸무게를 올려줄 것을 간청했다. 당시의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자 돌파구는 군 입대 밖에 없었다.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의 노랫말이 아니라도‘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아’ 있었다. 그만큼 현실은 막막했고 뿌리 깊은 좌절감으로 하여 내 청춘은 점점 좀이 슬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논산 훈련소를 거쳐 육군통신학교에서 암호병 주특기 교육을 받은 뒤 자대를 배치받았다. 경기도 금촌에 있는 한 기갑여단 사령부였다. 암호병은 군대의 한량이다. 보초나 불침번을 서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열외인 것이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대체 근무자 없이는 휴가 명령을 받아도 휴가를 갈 수 없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정기 휴가 가는 예하대대 암호병의 대체 근무자로 파견을 다니기도 하며 여단 사령부에서 그럭저럭 6개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암호병이 제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예하 포병대대로 아예 전출을 가게 되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랄까, 동백꽃과 동박새의 관계랄까. 무선으로 날아오는 모르스 부호를 받아 적어 그것을 암호병에게 전해줘야 하는 cw병과 암호병의 관계는 그만큼 밀접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온 이동규 상병은 cw병인 장 상병과 군대 동기였다. 그는 수송부에 근무했지만 틈만 나면 동기인 장 상병이 근무하는 박스카(Box car)에 놀러왔다. 누구와 대화를 나눈다든지 하는 일도 별로 없이 그저 조용히 앉아 책이나 들여다 볼 뿐이었다.

우리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파주지역은 비전방 비후방(非前方 非後方)이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아주 전방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방도 아닌 이런 어정쩡한 지역에서 구타가 더욱 심했던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부대는 구타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일상적이고 상습적인 구타가 간부들의 묵인 하에 이뤄지고 있었다. 집합이 없었던 날은 마음 놓고 잠자리에 들기가 불안할 정도였다. 말하자면 집합과 구타는 하루라도 찍지 않으면 안되는 일수 같은 것이었다.

당시 이동규 상병의 동기들은 소위 군기를 잡는 군번에 속했다. 그러나 졸병을 구타하는 집합 장소에 그가 모습을 드러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으로 나는 그가 사람 좋은 고참이라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어느 날 이 박스 카에 느닷없이 수송부 선임하사가 들이닥쳤다. 손에는 쇠파이프를 거머쥔 채였다. 선임하사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던 이 상병을 향해 쇠파이프를 마구 내리쳤다.

"야, 이 새끼야. 누가 근무 시간에 책 보랬어? 응?"

목이고 몸통이고 얼굴이고 가리지 않는 무지막지한 가격이었다. 마침내 이 상병의 얼굴 여기 저기가 헝겊처럼 찢겨져서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장 상병의 얼굴은 공포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마 내 얼굴 표정도 장 상병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상병의 상처가 아물기까지 두어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동규 상병은 6개월 교련혜택을 받아 전역했다.

“나는 추한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네” 라고 했던 인상파 화가 모네의 말이 떠오른다. 일생을 통해 단 한번도 추함에 의해 정서적 충격을 받지 못했다는 이 사람의 말을 난 도저히 긍정할 수 없었다.

군 생활 내내 난 인간이 가진 폭력성에 전율했다. 자기 몸의 조그만 안락을 위하여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치사함과 추함을 목격해야 했고 그 때마다 정서적 충격으로 휘청거렸다.

한겨울이면 "식기(食器)가 덜 닦였다"는 이유로 때리고, 출신지역이 전라도라고 해서, 혹은 경상도라고 해서 꼬투리 잡아 때리고, 사이좋게 회식을 하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졸병 놈들이 고참이랑 같이 놀려고 한다"고 트집잡아 '조진다'. 인간의 내부에 잠재된 폭력성은 얼마나 지독해야 스스로 포만감을 누리는 것인가. 이동규 상병은 이제 그날의 야만적인 폭력을 다 잊었을까. 용서했을까.

#회상2

눈 가리고 아웅하는 조경(造景) 작업, 뿌리 잘린 나무를 심다

  

▲ 오래돼서 기억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GOP 훈련 나가서 찍은 사진 같다.  

ⓒ2005 안병기

이듬해 봄 부대는 금곡에서 밤고지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부대 막사는 지었지만 나무 한그루 심어져 있지 않은 살풍경이 새로운 주둔지에 도착한 우리를 낯설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1군단장인 황영시 장군이 별안간 부대를 순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간이 코 앞에 닥쳤다. 차분하게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어 조경해 나가기엔 틀렸다.

중대원들은 뒷산에서 나무 줄기를 톱으로 잘라왔다. 그리고는 구덩이를 파고 밑둥이 잘린 나무들을 심었다. 단 시간내에 그럴 듯 한 조경을 한 것이다.

이윽고 1군단장 황영시 장군이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상황실 벙커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잔뜩 긴장한 대대장이 그 뒤를 따랐다. 벙커에 다다른 군단장이 뗏장을 가리켰다.

“저 뗏장 한 번 들어내봐.”

아무런 걸리적거림도 없이 뗏장은 금세 들렸다.

“대대장, 너 이 새끼. 이리와 봐. 너 인마, 중령이나 달고 아직 뗏장 쌓는 법도 몰라. 이렇게 쌓으면 장마철엔 다 쓸려 가버리지, 밑에 깔린 뗏장과 위에 얹힌 뗏장을 서로 엇갈리게 쌓아 서로 물고 있어야 안 떠내려 갈 거 아냐? 너, 이 새끼. 계급장 떼어버릴까.”

군단장의 지휘봉이 대대장의 단전께를 쿡쿡 찔러댔다. 극도로 긴장한 탓일까. 대대장의 얼굴은 흘러내린 땀으로 번들거렸다.

나쁜 일은 결코 혼자 오는 법이 없다. 헬기를 타려고 걸어가던 군단장이 길에 도열한 사병에게 옆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뽑아보라고 명령했다. 나무는 '쑥'하고 빠지며 밑둥이 잘려진 제 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너, 이 새끼. 정말 군복 벗고 싶나?"

대대장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핼쑥해졌다.

“한달 후에 내가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오늘 내가 한 지적사항 다 시정해 놔. 그때까지도 이 모양이면 그때는 넌 정말 끝장이야. 알았나?”

다행스럽게도 군단장의 추궁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군단장은 서둘러 헬기에 올랐다. 군단장의 등 뒤에다 대고 간부들이 경례를 붙였다. “충성”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게 들려왔다.

경례를 붙이기 위해 오른쪽 눈썹에 갖다 댄 오른손이 제 자리로 내려온 것은 헬기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였다. 상대가 받아주지도 앉는 인사를 올리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무참한 것인가.

나는 '내 안의 폭력'을 경계한다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어느덧 2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들이 마치 어제의 일인 것처럼 기억이 또렷하다. 이상한 일이지만 군대 시절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토록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부대 정문을 나서는 순간 어느새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어버린다. 신화가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과장과 거짓이 섞인다는 뜻이다.

난 군대 이야기가 한낱 ‘안주거리’로서만 회자되는 현상을 경계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군대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기능했으면 싶다. 난 때때로 군대 생활에서 익힌 폭력이 은연중 가족 혹은 나와 가까운 이들에게 폭력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는지 자신을 돌아본다. 외부에서 가하는 폭력도 문제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내 '안'에 잠재돼 있는 폭력적 경향일는지도 모른다.

/안병기 기자

http://news.naver.com/hotissue/popular_read.php?date=2005-02-02&section_id=000&office_id=047&article_id=0000057794&seq=4


Comment ' 8

  • 작성자
    담무
    작성일
    05.02.02 20:57
    No. 1

    ㅉㅉ..
    @@;
    군대라.. 무서운 곳이야..
    참..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6 梅花원조임
    작성일
    05.02.02 21:17
    No. 2

    군대 몇년 먼저간게 뭐 자랑이라고 저렇게 잘난척하는지?

    그게 자기가 잘나서 계급올라갓나? 다 때되면 상병가고 병장가고 하는데 뭐 그리 잘났다고 남을 괴롭히는지,

    정말 짜증남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용마
    작성일
    05.02.02 21:42
    No. 3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5.02.02 21:47
    No. 4

    전쟁 일나서 저런 넘들 다 뒈져버려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CReal
    작성일
    05.02.02 21:55
    No. 5

    뭐 기강이 해이해졌다거나 해서 기합을 주는건 이해를 하겠는데 군대다녀온 형들이랑 이야기해보면 온갖 꼬투리를 잡아서 구타를 하더군요
    하다못해 담배 못핀다고 했다가 맞았다는 소리까지 들어봤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삼류]무사
    작성일
    05.02.02 23:39
    No. 6

    원래 군대라곳이 그렇죠......
    전 경교대 나왔는데 첨엔 좋아라 했죠....
    야~~거기 훈련없다메 졸라 편하겠따.....훈육분대장들이 다 이러데요...
    저두 그런줄만 알았습니다....헌데....전 참고로 안양교도소로 갔습니다.
    딱 처음 한달 생활하고 든 생각은 ...머 이런 깡패소굴이 있나 하는...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일주일에 한번이상씩 동기들과 손 잡고서 화장실에서 울었습니다....군대란게 그런곳이더군요
    참고로 중,고딩때 쌈질도 하고 댕기고 선배들한테 이유없는 구타도 당해봤지만 그렇게 줄기차게 맞은적은 없었던듯....ㅋㅋㅋㅋ
    아마 그때 맞은걸로 고소했으면 몇 억 챙겼을겁니다..ㅋㅋㅋ
    근데 이상하죠....왜 졸라 두둘겨 맞은게 지금 생각하면 추억일까요.....
    희한하네~~~정말 알수없는 군대네요
    그래서 군대얘기만 나오면 2박3일은 안주없이 쏘주를 깔수 있다는....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임현
    작성일
    05.02.03 01:20
    No. 7

    오랜만에 좋은 글이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창해(蒼海)
    작성일
    05.02.03 19:01
    No. 8

    흠...
    전쟁을 겪은 세대와 겪지 않은 세대
    전쟁이란 지옥을 뚫고 나온 사람들의 성격이 또 그것이 군대라는 곳이라면 솔직히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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