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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메두사
작성
04.10.23 04:35
조회
347

펌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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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몸 파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가 있다고,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 어린 시절엔 ‘청량리 588’같은 이름은 들어봤어도 각 행정구역마다 비슷한 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줄은 몰랐었고, 집과 학교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여관에서, 안마시술소에서, 심지어 다방에서 여자의 몸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당시 사회의 인식에선 '매춘'이란 극소수의 여성(남성이 아닌)과 관계된 문제였고, 그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그렇고 그런' 여성이며, '일반 여성'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만날 수도 없는 그런 대상들이었다. 그러나 대체 누가 '그런' 여자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 여자란 말인가. 나는 궁금했다. 내가 지금까지 알아온 친구들 중에 누가 '그런' 여자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 여자일까.

의아한 점들도 많았다. 남자들이 쓴 수많은 소설에서 빠지지 않고 '창녀'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메가폰을 잡은 수많은 영화들 -시골에서 상경해 공장을 전전했던 우리의 ‘누이’ <영자의 전성시대>부터 몸 포기각서를 쓰고 사창가로 끌려 온 여대생과 자신을 그렇게 만든 깡패와의 '예술적인' 사랑이야기 <나쁜 남자 >에 이르기까지- 에서 '창녀'가 명실상부한 남성들의 판타지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여성을 창녀/숙녀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거대한 성 산업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판타지로만 그려지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지독한 남성 중심 사회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사고파는 ‘성매매’는 너무나 많은 거짓과 왜곡된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성매매의 현실에 접근하려면 그러한 포장부터 벗겨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최근 모 시사 프로그램에서 25년간 한 남성을 감금하고 철물공장 노동을 시키며 학대를 일삼아 온 사장이 고발되자 사람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그 남성과 비슷한 처지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얼마나 분노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여성들을 상품처럼 취급하며 ‘아가씨 장사’를 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또한 많은 남성들이 여전히 그 여성들의 성을 사고 있다.

이제 윤락행위등방지법이라는 어리석은 법률이 폐기되고, 성매매방지법이 실행된다. 그러나 바뀐 법이 현실의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줄 것이라 기대하는 이는 별로 없다. 사실상 성 산업의 구조, 성매매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광범위하여, ‘방지’나 ‘근절’이란 말을 쓰기엔 괴리감이 크다. 섣불리 금지주의니 규제주의(공창)니 합법화니 거론하는 것은 성매매 현실에 접근하는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과연 성매매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을 누가 알고 있는가. 내가 지금까지 얻은 답은 첫 질문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겪은, 겪고 있는 여성들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단면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혹은 노후에 이르기까지 통으로,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게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성매매가 ‘살아 있는 사람’들이 겪는 문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으며, 세상이 여성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성매매 문제가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 몸에 대한 일상적 학대와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과, 청소년과 여성의 ‘노동권’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소녀의 일기장, 쪽방에서의 삶

“항상 소망한다. 업소생활의 마지막이 이곳이 되기를…”

“하느님, 내년 2월에 집에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로 숨진 다섯 소녀들 중 한 명의 일기장에 적힌 내용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창녀'가 죽으면 경찰이 와서 수사를 한다 해도 현장에 버젓이 놓여 있는 일기장조차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성의가 없었고, 모 방송사 관계자들은 “온 가족이 시청하는 저녁시간 대에 ‘그런 애들’ 뉴스를 다룰 수 있냐”며 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보도할까 말까 논의를 할 정도였다.

화재가 일어난 그 건물은 20분 만에 진화됐지만 쪽방에 갇혀 있던 다섯 소녀들의 몸은 까맣게 탄 주검이 되어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에는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중 한 소녀 임아무씨의 일기장이 유족들의 눈에 띄면서, 그로 인해 성매매 현실이 어떠한 것인지 드러났고 드디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사들이고 팔아먹는 문제가 ‘이슈’가 됐다.

나는 당시 그의 젖은 일기장을 읽어 보았었다. 거기엔 매일 들어오고 나간 돈이 십원 단위까지 기록돼 있었다. 임씨는 소개소에서 이곳에 올 때 1000만 원 이상 빚을 졌고, 매일 화대의 절반을 업주에게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침대, TV를 업주로부터 구입했고, 방세 70만 원, 식대 30만 원, 세탁비 10만 원 등이 매달 들어갔다. ‘가불’이라고 적힌 것은 임씨가 아예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는 것을 뜻했다. ‘아파 쉼' ‘병원에 감’ ‘꽁’(손님을 못 받음)이라는 글도 자주 적혀 있었는데 이런 경우 범칙금이 15만 원이었다.

죽기 직전 임씨가 진 빚은 1000만 원에 달했으니, 그런 계산으로는 임씨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빚을 다 갚을 수는 없었다. 성매매 현장활동가들은 빚을 모두 갚는다 하더라도 업주가 다시 다른 소개소로 팔아버리면 그만이라고 했다. 임씨의 일기엔 또다른 곳으로 쫓겨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00언니 싸대기 3대. XX언니 조건 1시간 반. 무섭다는 느낌보단 슬펐다. 돈! 돈이 뭔데.”

“미치겠다. 몸은 아프고 술까지 마시면 죽겠다. 이러다 쫓겨나는 건 아닌지.”

“모든 걸 잊고 죽고만 싶다. 인간에게 질려버리고 짜증이 난다. 남자! 남자! 남자가 싫어진다.”

“집에 가고 싶다” “00언니가 보고 싶다” “살려달라”는 외침이 무수히 적혀 있던 일기의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그가 죽기 며칠 전의 일기엔 자포자기한 심정이 담겨 있었다. “난 또 이길 거야. 아니 이겨야 돼. 그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이니까…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다. 난 지금 어차피 자유도 없고 집에 갈 수도 없다.”

성매매에 길들여지는 것, 업소에 주저앉게 되는 것, 포주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회는 우리 편 아니에요.”

손님이 갖고 있던 휴대폰으로 경찰에 구조요청해 간신히 빠져나온 29세의 여성을 만난 건 그로부터 몇 개월 후였다. 그는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거쳐 온 업소들로부터 줄줄이 고소를 당한 상태였다. 보통 그런 때 경찰은 도망 나온 여성을 ‘사기죄’로 포주들에게 넘겨주기 일쑤였다. 그러나 당시엔 언론에서 예의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정말 ‘요행히’ 성매매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서른도 안 된 나이에 다방, 나이트클럽, 룸살롱, 무허가 지역 등 전국적으로 안 가 본 곳이 없었는데, 이는 사실상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된 여성들 다수가 거치는 경로이기도 했다. “사창가, 다방, 술집, 룸살롱 다 비슷해요. 술 안 먹고 매춘하는 거랑 술 먹고 매춘하는 거랑 차이죠. 물론 집결지가 육체적으로 더 힘들어요. 손님 더 받아야 하니까. 하지만 다 마찬가지예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일하면서 7∼8명 받아야 돼요.”

그는 포주들이 감금하거나 외출을 못하게 한 건 아니지만 하루 이틀 나와 있으면 벌금을 엄청나게 물린다고 했다. 경찰, 검찰은 절대로 포주들의 편이라고 강조했는데, 포주와 중개업자들보다도 더 나쁘다고 했다. “포주들은 검찰 중에 모르는 사람 없다고 해요. 원주에 있을 땐 바로 위에 법원이 있었어요. 사창가가 법원을 끼고 있었다고요. 거기 처음 생길 때 법원에 여자들 상납했대요. 판사고 뭐고 전부 다 왔었대요. 그리고 이쪽 민원(포주들이 여자들을 고소하는 것)을 봐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업주들은 ‘상회회장’이란 이름을 갖고 있고 ‘사장님’이라 불린다. 알려진 바대로 유명한 지역유지도 있다.

“업주들이 아예 지역에 자율방범대를 설치해요.”

그러니 여자들은 도망을 갈 수가 없다.

“잡히게 되어 있어요. 사람 써서 잡히면 사람 쓴 것만큼 빚이 늘어나요. 더 험악한 곳으로 보낸다고 위협하고. 그리고 돈 한 푼 없는데 갈 곳이 있어야지요. 자포자기해서 다시 오는 거예요. 나도 정말 운이 안 따라주었음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가 보다’하고 계속 끌려 다니고 있을 거예요.”

성매매=‘가정폭력, 성적 학대, 사회적 낙인’

그렇다면 그는 처음에 어떻게 성매매 시장에 유입된 것일까. 나는 그에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했다.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위층 살던 오빠에게, 옆집 아저씨에게, 사촌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했다. 그리고 5학년 때 귀국한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력을 당했다. 이유 없이 맞았기 때문에 나중엔 잘못했다는 소리도 안 나왔고 그냥 맞나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참고 집 나갈 생각은 안 했지만, 고등학교에 보내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얘기에 결국 17세에 가출했다고 했다. 빵집, 주유소 등에서 일했지만 “먹고 자고 했으니 줄 게 없다”며 주인은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있는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던 그는 같이 일하던 언니의 소개로 술집에 들어갔고, 결국 2차를 나가게 됐다.

그는 끝내 업주로부터 돈은 한 푼도 못 받았지만, 이혼한 남자를 만나 동거를 하며 아이도 낳았고, 가게 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아이가 5세 되던 해 집까지 장만했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후배가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됐고, 그때부터 남편에게 매일 폭행을 당했다. 결국 이혼을 했고, 집으로 가려 했지만 받아주지 않자 다시 업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

충북 음성에 있는 한 다방에 간 이후, 쓰는 것은 없는데 계속해서 빚이 늘었다. “빚 까려고 5백만 원 받고 원주 희망촌(사창가)에 갔어요. 거기서 6개월 간 일해줬는데 그만두려고 하니까 9백만 원을 가져오라고 하는 거예요. 벌금과 이자를 합한 돈이래요. 난 돈을 만져본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너무 억울해서 뛰쳐나왔더니 업주가 경찰에 고소를 했어요.”

그는 검찰에 갔을 때의 기억에 몸서리를 쳤다. “사무계장이란 사람이 서류 떠들어 보더니 ‘결혼했구만. 어? 애도 낳았네? 그런 년이 할 짓이 없어서 이런 짓을 해?’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머리에 뭐밖에 안 들었어. 넌' 이렇게 모욕을 줬어요. 그런 면박을 당하는데 내 얘길 어떻게 하겠어요? 나와서 하루 종일 울었어요. 내 고통까지 알아달라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해요?”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과의 대면

2002년에 당시 '노예매춘'이라 일컬었던 유형의 성매매 현장에서 벗어난 ‘생존자’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1~4년이란 시간을 한 여관과 그 옆에 붙어 있는 가정집 골방 사이 공간에서 살아왔다. 그들이 집 밖을 나갔던 시간은 오로지 호객행위를 할 때뿐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채 낮에는 골방에서 잠을 자고, 밤에는 여관 거실 방으로 옮겨 손님이 부르는 방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4~10회 가량 반복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내가 그들이 있는 쉼터(해바라기 쉼자리)를 찾았을 때 당시 구출된 세 사람 중 한 명은 다른 시설로 몸을 옮긴 후였다. 그는 포주로부터 심하게 구타를 당해 몸에 성한 곳이 없는 상태였다고 하는데, 도망을 갔다가 잡혀왔기 때문이라 했다. 당시 30세였던 그는 구타로 인한 정신분열증세를 보였고, 쉼터에 오는 것을 다시 붙들려 가는 것으로 생각해 발작증세를 일으켰기 때문에 사람들도 많고 건물도 큰 부랑자 복지관에 수용한 것이었다.

쉼터에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은 당시 32세의 영미씨였다. 그는 28세부터 4년간 여관에 갇혀 있었던 장본인이었는데, 전형적인 성매매 후유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마루에 웅크려 앉은 채로 낯선 이의 방문에 두려운 눈길을 보내며, 인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는 영미씨에게 뭐라 말 한 마디를 걸기가 어려웠다. 병원에서는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자신의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섰다”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권했다고 했다. 쉼터의 조정혜 소장은 “여관에서의 삶이 사람을 오로지 성적 도구로만 기능하도록 만들고 인간으로서의 욕구나 의지를 죽여버린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미씨는 말을 못했다. 아니, 의사의 진단에 따라 정확하게 표현하면 “말하는 법을 잊었다.” 영미씨를 만난 지 이틀 째 되는 날 나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기를 기다려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그의 무표정한 입술에선 한두 마디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말만을 조합해서 보면, 영미씨는 “6년 전엽 집을 나왔고, 여관에 있기 전에 “다른 여관엽 있었다. 가족에게 “가고 싶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집을 나왔다는 게 가출했다는 의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영미씨는 계속 입을 우물거릴 뿐 제대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모습이었고 더 많은 질문을 할 순 없었다.

정신지체 여성, 반항하지 않는 상품

곳에서 만난 또 한 사람은 당시 26세였던 수현씨였는데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항문과 질 사이가 심하게 파손돼 있는 상태였는데, 손님이 질에 손을 집어넣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수현씨가 있는 병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만난 간호사는 몹시 어두운 표정으로 “수술은 했지만 예상보다 구멍이 크게 나 있어서 감염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그 표정을 보며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병실 문을 열었다.

예상 외도 입원실에 누워 있던 수현씨는 나를 보자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너무 아팠는데 어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며 “계속 굶어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얘기 도중에 수현씨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부축을 해주었는데, 소변을 보는 것이 무척 괴로운 듯했고 화장지에선 피가 묻어 나왔다. 그런데도 수현씨의 목소리는 밝았다.

수현씨는 병원에서 ‘정신지체’로 보인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쉼터 측에선 포주가 이를 이용해 죽도록 일을 시킨 것 같다고 했다. 발견된 장부를 보면 수현씨가 여관에 있었던 기간은 1년이 채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2~3배 가량의 액수를 더 번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망을 가려고 하거나, 의지력이 완전히 꺾여 멍한 상태가 되어버린 사람에 비해 수현씨는 ‘반항하지 않으면서도 생기가 있는’ 상품이었던 것이다.

수현씨는 자신이 여관에서 겪은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고, 그만큼 여관 밖의 세상에 빨리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정신지체인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수현씨는 잠이 들기 전까지 흔쾌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중학교 때 고아원에 있다 가출했고 그 후로 노래방에도 갔었고 영등포(성매매 업소에 있었다는 의미)에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돈이나 빚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고, 여관으로 넘어오게 된 경위도 모르고 있었다.

쉼터에선 수현씨가 회복되는 대로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 했고, 그날 오후 영미씨의 부모를 찾았다는 소식이 경찰서로부터 전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쯤 뒤에, 영미씨의 언니로부터 내게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영미씨의 안부를 묻자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떻게 사람을 이 모양으로 만들 수가 있느냐”면서. 영미씨의 언니를 통해 영미씨의 6년 전의 모습에 대해 듣고 나서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영미씨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원래 성격이 무뚝뚝하고 말도 더듬는 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었다. 글자가 크게 적힌 배지를 그에게 선물로 주었을 때 글자를 가리키며 무어라 내게 질문을 하는 것으로 봐서, 영미씨가 글을 읽지 못하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영미씨의 언니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영미씨는 성격 쾌활하고 잘 웃고 멋 부리기도 좋아하는 20대 여성이었다. 어느 날 취업자리를 알아본다고 전단지를 보고는 나가서 그때부터 연락이 끊겼다 했다. 영미씨의 언니는 6년 후 180도 달라진 동생의 모습을 보고 “정말 내 동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고 했다.

가출청소년들 갈 곳은 티켓다방뿐

성매매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여성들은 많은 경우 청소년 시기에 성 산업에 유입된다. 속칭 ‘원조교제’와 ‘티켓다방’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성을 매매하는 일종의 제도라 할 수 있는데, 사회는 이들이 몇 년 만 지나면 성인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그들의 미래는 아랑곳없이 ‘청소년’시기만을 한정시켜 논하는 경향이 있다.

내겐 마침 티켓다방을 전전했던(도망 나와 쉼터에 머물고 있는) 네 명의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성매매 현장을 잘 알고 있는 경찰들도 한결같이 증언하는 바, “티켓다방 생활 2~3개월이면 빚이 500만 원 이상이 되고, 700만 원선을 넘으면 다른 유형의 업소나 집창 지역으로 팔린다”는 현실이 그들의 입을 통해 똑같이 진술됐다. 재워주고 먹여준다는 명목 하에 청소년들을 여관으로, 노래방으로, 1시간당 2만 원 값에 보내면서 2:3(주인)으로 나누고, 지각하면 1분에 1시간 일한 만큼을 빼고, 늦게 일어나면 벌금 2만 원, 하루 쉬면 25만 원을 매긴다. 아무리 일해도 빚이 늘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 없는 계산법이 전국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남자들 장난 아니에요. 너 왜 그렇게 뚱뚱하냐. 내가 물 좀 빼줄까? 이래요.”

그들은 무엇보다 때리는 남자들이 많다고 했다. 남자들은 다방 아가씨가 아프다고 해도 앉지도 못하게 한다고 했다. 2만 원 주고 데리고 노는데 1시간 동안 꼬박 자기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자들 너무 혐오스러워요. 악몽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에요.”

네 청소년들은 어쩌다가 다방으로 갔을까.

“이유는 뭐 뻔하잖아요. 아버지가 때리고… 집도 어려워서 어차피 내가 일을 해야 했어요.” “집에서 때리기도 하고 간섭하고… 학교에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선생님들도 엄하고 친한 친구도 없고.” “중학교 때 학교에서 잘렸어요.” “부모랑 안 친했어요. 집에 대해 얘기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들은 티켓다방으로부터 탈출해 나온 이후로도 집엔 절대 가지 않겠다 했다. 가출 후 일자리를 알아보려 했지만 식당 같은 데서도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이들은 주유소는 재워주지 않는데 다방은 “재워주니까” 간다고 했다. 처음엔 여관방에서 지내다 도저히 돈이 없어서 더 버틸 수 없을 때 갈 곳은 다방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티켓영업을 안 하지만, 나중엔 돈 때문에 안 할 수가 없게 된다고 했다. 가출하지 않은 학생들도 방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다방에 잔뜩 몰린다는데, 실상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왔다가 빚만 진다고 했다. “그래도 걔네 방학 끝나면 집에서 다방에 돈(딸이 빚진 돈) 갚아주고 데려가죠.”

데려가 주는 이 없는 청소년들, 그리고 가출청소년들은 빚을 얹은 채 소개업자 통해 다방에서 사창가로, 맥주양주집 등으로 팔려가기 십상이다.

“여러분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는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취업시) 나이제한 낮춰주면 우리도 쉬울 거예요. 일이 필요했어요.” “우리 같은 애들 재워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복지관 같은 데 말고, 간섭하지 않는 곳이요. 나 할 일만 하면 나를 예뻐해 주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어요.” “남자들은 오토맨(다방에서 여자들 배달하는 일)하고 웨이터 하죠. 짱께집은 건전한 일이에요. 나도 떳떳한 일 하고 싶어요. 미용실도 갈 수가 없거든요. (부모) 동의서 없이도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월간말 2004년 220호


Comment ' 9

  • 작성자
    Lv.12 녹수무정
    작성일
    04.10.23 05:21
    No. 1

    살길이 막막해서 일하는 여자와 미혼 또는
    아내가 없는 여자가 돈을 주고 관계를 했읍니다
    라는 가정입니다<<<< 윗글은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악덕 포주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강요된 매춘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검조(劍祖)
    작성일
    04.10.23 06:37
    No. 2

    정말...
    욕밖에안나오는 우리나라현실...
    솔직히...이런나라는...
    이런말하면안되지만...
    살기가 싫습니다..
    이주를하던가....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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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붉은이리
    작성일
    04.10.23 07:26
    No. 3

    헐.. 완전히 노예구만 ㅡㅡ;
    우리나라는 어두운 이면이 너무 많다...그리고 넓다 ㅡㅡ;;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81 창해(蒼海)
    작성일
    04.10.23 10:53
    No. 4

    성매매
    유독 우리나라만 심한건 아닙니다
    해외로 간다고 안보는 일 아닙니다
    그리고 음지로 숨을수록 저런 노예화, 착취는 더 심해질 겁니다
    단속이 끝이 아니라는 애기죠
    단속으로 끝날 일이 었다면 진작에 성매매는 없어졌겠죠
    사창가를 인정하자는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뭔가 바뀌어여 합니다
    그 질기고 긴 역사가 어여 끝났으면 좋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운동좀하자
    작성일
    04.10.23 12:07
    No. 5

    넘 불쌍합니다. =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메두사
    작성일
    04.10.23 13:44
    No. 6

    녹수무정님의 가정의 경우가 무얼 말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본문을 보면 모르시겟겠어요? 어떤 이유건 돈 때문에 시작된 매춘은 강요된 매춘으로 발전? 할 수 밖에 없다는 걸요.

    우리나라의 어두운 면이지만 우리나라 만의 어두운 면은 아니라는 생각해요.

    이번에 법에 실질적 효력을 불어 넣는 것이 근본적으로 뭔가 바뀌어가는 길목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50 검조(劍祖)
    작성일
    04.10.23 14:17
    No. 7

    하지만 그길목의 과정속에서 희생당하는사람들...
    이것은 대부분 소수의집권자들의 안이함때문에일어나는일들이죠...
    그래서 제가 집권자들을....상당히 재수없어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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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4 찌노
    작성일
    04.10.23 14:55
    No. 8

    이런사람이 있으면 저런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저분들은 안타깝게 된일이지만 정말원해서 하는사람도 있기마련입니다
    무조건 한단면만보고판단하는건 안좋죠
    그러니깐 나라에서 그런걸 관리를해야죠!!!
    젠장 정치하는새끼들..아우!! 이런말 하면안되지만..
    정치판 테러해줬음좋겠다 ㅡㅡ;;
    정말 참신하고 부패없는 정치인들의 관리되는 나라에서
    살고싶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하늘소ii
    작성일
    04.10.24 02:34
    No. 9

    위헌 판결 날꺼 같든데..
    한심하고 웃기지도않은 일들이 우리주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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