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 비문 위조 서체학으로도 확인
김병기 교수 교원대 세미나서 주장
고구려 광개토왕비문이 변조됐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서체학(글씨)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논문이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의 위조설은 주로 시각적인 관측과 문맥 흐름을 기초로 했던 것으로, 서체적 시각으로 광개토왕비문을 분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고대사학회는 지난 17일 국내는 물론 일본학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 77회 정기 학술 발표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전북대 김병기 교수, 원광대 고광의 교수, 전북대 도이 쿠니히코 객원교수 등이 참석, 각각 ‘광개토대왕비 변조 확인과 신묘년 기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書寫관련 내용검토’, ‘신라 촌락문서의 사료적 성격에 대한 검토’ 등의 주제를 발표했다.
이중 김 교수의 논문이 한·일 역사학계의 수십년 논쟁거리일 뿐 아니라 그 내용도 파격적인 것이 많아, 발표 논문중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붓글씨를 오래 쓴 사람은 이른바 위조된 글씨를 만나면 운필(運筆) 막힘현상을 경험한다”며 “광개토왕비문을 이런 방식으로 써본 결과, ‘신묘년’ 글자중 ‘渡’ ‘海’ ‘破’ 자가 위작된 것이 확실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대한 근거로 광개토왕 비문이 갖고 있는 서체의 독특성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모든 글자가 비슷해 보인다”며 “그러나 전문가적 입장에서 보면 크게 4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광개토왕비문의 특징으로 ▶점(점)을 제외한 모든 획인 직선으로 처리된 ‘隸體’(예체)이고 ▶따라서 모든 삐침도 직선에 가깝거나 중간 부분이 아래 방향으로 약간 휘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글자는 전체적으로 정사각형내재 세로가 약간 긴 장방형을 유지하려 했으며 ▶따라서 가로획은 수평, 세로획은 수직을 띄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원칙이 비문 모든 글자에 적용되고 있음에도 불구, 앞서 언급한 ‘渡’ ‘海’ ‘破’ 등 세 글자는 세로획이 휘어져 있는 등 자형, 선형, 필세가 다른 글자와 큰 차이가 나고 있다.
김 교수는 이에대해 “위조후 만들어진 글자는 ‘예체’(광개토왕비문의 고유 특징)이 아닌 하나같이 ‘해서체’(楷書體)를 하고 있다”며 “이는 위작 시점이 해서체가 유행하던 때와 시간적인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으로 “자형, 선형, 삐침 등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위조된 글자(渡·海·破)의 본래자는 ‘入’ ‘貢’ ‘于’ 등이 확실하다”며 “그래야 당시의 역사 상황을 무리없이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학계는 위조된 글자를 바탕으로 신묘년 기사의 일부를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ㅁㅁ와 신라를 깨부서어 (일본이) 신민으로 삼았다’(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入貢于百殘ㅁㅁ新羅, 以爲臣民)라고 해석해 왔다.
그러나 ‘入’ ‘貢’ ‘于’의 본래자로 해석하면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그래서 그 동안 내내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부터 백제와 ㅁㅁ와 신라에 대해서 조공을 하였다. 그래서 고구려는 왜를 신민으로 삼았다’(’(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破百殘ㅁㅁ新羅, 以爲臣民)가 된다고 김 교수를 밝혔다.
이밖에 그는 ‘속민’과 ‘신민’도 언급, “종래대로 해석하면 속민과 신민은 동의어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며 “속민은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인을 그리고 신민은 고구려가 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중부매일 [문화체육부 조혁연기자 : [email protected]]
* 제가 현재 자유연재란에 올리고있는 [다사왕비]는 위의 사실을 일부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 리징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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